간사한 목사, 근사한 목사
간사한 목사, 근사한 목사
설교 후 목사는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한다. 누군가 다가와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기분이 들뜨고 좋아한다. 목사의 마음속에는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나에게 영광’이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는 간사하다. 간사함은 외식과 한 통속이고 잘못된 욕망에 쉽게 사로 잡혀 사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거나 기도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마6장)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에도 외식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하고 경건한 사람인가를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이 외식이다. 외식은 모든 것이 잘못되어있다. 왜냐하면 자신은 경건한 사람으로 포장함으로 경건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사람에게 보이려 함으로 하나님께 보이지 않으려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사도 간사한 존재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탐심은 부정할 수 없는 타락한 죄인들의 속성이다. 어느누구도 탐욕을 막을 수는 없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했던 말처럼 욕망이란 ‘새가 우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생각은 막을 수 없지만 생각이 습관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막의 은자로 알려진 안토니우스도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팔고 사막으로 들어갔지만 세상의 완전한 유혹은 피할 수 없었다.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욕망을 외식으로 숨기는 데 있다. 자신은 목사이니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거나 죄를 짓지 않는는다고 생각한다거나 일반 교인들보다 더 거룩한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그것이 간사함이다.
근사한 목사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목사도 사랑을 받아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고, 은혜를 받아야하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일반 교인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하더라도 해도 그 차이는 미미하다. 자신의 부족을 솔직하게 인정하되 단호하고 결단력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은혜가 그 가운데 임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에게 있는 약점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목사가 자신의 허물을 숨기다고 해서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지 목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근사함이란 솔직 담백함에서 묻어 나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간사한 목사가 되지 말고, 근사한 목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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