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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 폴 트립 /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샤마임 2019.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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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폴 트립 /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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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몰] 고난

베이직 교회, 조정민 목사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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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신장 기능이 65% 이상 망가진 이후, 저자는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했다. 여섯 번의 수술을 해야 했고, 이전과 전혀 다른 역경에 봉착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누군가는 이것이 믿음 없는 이야기라 말할지 모르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세도 삶을 회상하며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모세는 기도를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라고 간구한다. 삶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부와 물질, 건강이 한 순간 훅~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이란 하루도, 아니 지금 이 순간 일분일초도 생존할 수 없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다.

 

저자인 폴 트립은 이미 유명한 작기이며, 강사이다. 현재 한글로 번역된 책만 해도 <관계가 주는 기쁨>, <6가지 사랑의 약속>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 등 열권이 넘는다.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가능하다. 2014년 10월 19일, 몸이 불편이 가벼운 마음으로 의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완전히 전복되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삶이 자신이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인생이 시작된다. 저자는 엉망진창이 된 삶을 끌어안고 깊은 독자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고난이란 무엇인가?

 

“물리적인 고난은 인간의 자율성과 자기만족이 헛된 망상임을 일깨운다.”(26쪽) 그렇다! 고난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인가이다. 건강한 젊은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패를 경험하고 삶의 무게를 지고 가야하는 중년이 되면 삶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고난은 일찍 성숙의 세계로 이끈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르게 직면하지 않는 이들은 삶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선물인지 깨닫지 못한다. ‘물리적인 고통은 우리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다는 현실’(26쪽)을 알려 준다. 우리가 갖는 자율성, 고난 앞에서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저자는 몸의 연약함으로 인해 이전에 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라 여겼던 것 중에 단지 나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난은 타인의 아픔을 공유한다. 타인의 약함을 무능과 게으름으로 비판했던 자신을 본다. 이제 자신이 그들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낯설고 무력해 보이는 자신과의 싸움을 동반한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신과의 싸움도 필요하지만 타인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고난을 당해보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편협하게 보았는지 알지 못한다. 고난은 곧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라는 획일적 공식을 많은 사람들이 대입한다. 심지어 고난을 당하는 자신까지도. 저자는 ‘그릇된 신학’의 문제를 짚어 넘어간다. 고난당하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싫어하시고,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 염려한다. 그뿐 아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의 화살을 날린다.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통은 곧 ‘하나님 없음’이 된다.

 

고난이 오래가면 감사보다 불평이 늘어나고, 하나님께 헌신해야할 이유를 점점 찾기 힘들어진다.(171쪽) 고난이 깊어갈 때 삶의 이유뿐 아니라 도덕적 상태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면 깊은 절망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시기는 또 다른 영적전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려움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초라해 보이고, 우리와 너머 멀리 계시고, 무능하며,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것처럼 보인다.(84쪽)

 

타인의 시선은 고통에 더 큰 무게를 더한다. 제자들은 길을 걸으면 날 때부터 소경된 이를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저렇게 되었는가. 부모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죄 때문인가. 주님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선언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하여’(요 9:3)라고 말씀하신다. 이천 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은 타인들이 고통을 안아주기보다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위의 관점에서 본다는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채찍을 맞는 이들이다. 무엇하나 제대로 된 인생들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을 사용하셨고, 그들의 연약함과 무능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셨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을 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분은 단 한 가지 고난이 아니라 모든 고난을 다 겪으셨고, 인생의 한 시기뿐 아니라 사는 내내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괴로워하며 부르짖는 고통을 너무나 잘 아신다. 태어날 때부터 죽으실 때까지 모든 고난을 몸소 겪으셨기 때문이다.”(60쪽)

 

그렇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아픔을 아신다. 하나님이신 그 분은 친히 영광의 자리에서 일어나 덤덤히 신음하는 인간의 삶의 자리에 앉으셨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종종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평안하다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말일까? 저자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64쪽)고 고백한다. 몸의 아픔은 마음의 고통으로 확장된다. 몸의 싸움은 곧 마음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에 깊이 관여하신다’(65쪽)는 것이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난을 살아가야하는 이들에게 무엇일 필요할까? 먼저 ‘고난이 이상하거나 놀라운 경험이 아니라’(185쪽)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난을 당하면 나 외의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 즐거운 것 같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면 그들에게도 아픔과 고통이 있다. 고난은 평범한 것이며,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면 고난을 쉽게 발견한다. 성경은 고통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이 인간의 실존으로 표현한다.

 

“성경은 인간의 현실적 고통을 다룬다. 질병, 강간, 연약함, 살인, 부패한 정권, 인종차별, 기근, 가정 폭력, 불의, 전쟁, 고문, 배신, 가난, 죽음 따위를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현실의 고통으로 묘사한다.”(59쪽)

 

가장 먼저 할 일은 고난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난은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인식할 때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설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2. 고난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고난의 시기에 주의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고난을 너무 크게 보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눈에 가까이 옮겨오면 모든 것을 가리고 만다. 이처럼 고난에 너무 깊이 몰두하면 고난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압도해 버린다. 결국 하나님을 왜소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고난이 너무도 크게 보여서 마음의 눈을 지배하고 생각을 통제하게 되면 주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이 왜소해 보인다. 하나님이 너무 위대해 보여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경이로운 능력과 임재의 위로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관점과 생각이 눈앞의 어려움에 묶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게 된다.”(83쪽)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난 가운데 있다면 고난에 몰입하지 않아야 한다. 고난의 이유와 고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고난이 자신의 생각과 삶을 좀 먹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묵상하라.

 

고난에 몰입하지 않으려면 다른 생각 무엇을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블레이즈 파스칼은 인간들이 최종 심판을 잊지 위해 현재의 쓸모없는 쾌락에 몰두한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고난을 잊기 위해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도 있다. 이건 굉장히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폴 트립은 말한다.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묵상하라고 조언한다.

 

“망각과 그로 인해 두려움을 물리치려면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보살피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86쪽)

 

정말 맞는 말이 아닌가? 우리의 생각은 빈 잔과 같다.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을 가득 채울 때 다른 것이 채우지 못하는 법이다. 시편 기자는 주야로 율법(토라)을 묵상할 때 큰 기쁨이 있다고 고백한다.

 

4.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다. 그러나 믿음은 사용되어야할 수단이기도 한다. 의인으로 믿음으로 산다. 우리가 믿어야할 대상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고난 받는 이들에게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떡을 달라는 자에게 돌을 주지 않으신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며, 성령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히 4:16)가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분이 우리를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위하신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알려 주셨다. 그분은 히브리서에서도 자신을 우리의 옹호자라고 내세우셨다. 하나님이 십자가 위해서 우리의 죗값을 남김없이 감당하셨기 때문에 가장 암울한 갈등이나 가장 힘든 시련 중에도 우리는 심판이 아닌 긍휼을 얻을 수 있다.”(149쪽)

 

5. 믿음이 지체들에게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은 홀로 부르시지 않고 ‘함께’ 부르신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소외당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욱 움츠려들고 소심해 진다. 그런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성도를 공동체로 부르셨다. 십자가의 은혜로 모든 신자들은 교회를 이루고 지체가 된다. 성경은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라’ ‘서로 도우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힘들다면 손을 내밀어 도움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은혜의 사람들이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하심으로써 보이지 않는 은혜를 보이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얼굴과 손과 목소리가 되고, 그분의 사랑과 신실하심과 임재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증거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만 맡겨 놓지 않으시고, 공동체를 통해 풍성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259쪽)

 

나가면서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고난은 삶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고난은 통해 ‘나의 것’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것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지 것이 지혜라고 말한다. 사람은 원래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존재로 창조 되었다’(219쪽) 인간의 무능성과 연약함이 아니다.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참으로 ‘고난은 인간이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전령’(258쪽)임에 분명하다.

 

고난이 깊다는 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철저히 무능한 존재로 떨어질 때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는 내일을 계획하고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은 불투명하고 모호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망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는 내일이 아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 있는 지체를 위해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예비하셨고, 섭리를 통해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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