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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가의 기도/ 이블린 언더힐 쓰고 엮음 / 박천규 옮김 / 비아출판사

샤마임 201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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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가의 기도

이블린 언더힐 쓰고 엮음 / 박천규 옮김 / 비아출판사

 

이블린 언던힐의 <영성가의 기도>

일반 개신교인들에게 저자인 이블린 언더힐이란 이름은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저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선가 멀리서 들리는 환청처럼 낯설고 모호한 이름이었다. 아마 성공회라는 교단에 속한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가톨릭적 영성에 근접해 있는 언더힐의 독특한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세 가톨릭이 상징과 보이는 종교였다는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과 이후의 개신교는 말씀과 들리는 종교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분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며 쟁취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톨릭과 정교회에 대한 암묵적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혁명적 개혁이 아닌 분립이나 지금처럼 적의적 감정은 훨씬 적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러한 적의적 감정은 가톨릭과 성공회에 가진 수많은 장점은 평가절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2년이 넘도록 초대교회 교부들의 문헌들로부터 시작해 중세의 중요한 신학자와 신비주의 서적들을 읽고 서평해 오면서 느낀 것은 종교개혁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중세 교회와 아무 상관도 없는 독립된 운동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리적인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가끔 발견되기는 하지만 정말 많은 부분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과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체험하려는 신비주의적 영성입니다.

 

단아하고 작은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단적인 예로 토마스의 아 켐피스의 저작으로 알려진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책이 전적으로 ‘옳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개신교가 가진 역동성과 실천적 신앙을 축소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책을 읽을 때마다 한국의 개신교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7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과 함께 ‘성장’이라는 환원주의의 늪에 빠져 복음의 신비와 경건한 삶의 영역이 물화(物化)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고, 세상 속에서 복음의 비밀을 간직한 삶을 살아가기보다 성공과 성장이란 잣대로 모든 것을 판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숫자가 영성의 깊이가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고, 담임목사의 학위가 교회의 자부심인 것처럼 여길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왜곡은 매일 하나님을 묵상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희미해진 탓입니다.

 

여기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표지에 적힌 이블린 언더힐이 직접 쓰기도 했지만 초대교회부터 전해 내려온 기도문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이블린 언더힐은 여성이면서 성공회 평신도이자 신학자입니다. 1875년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1941년 숨을 거두기까지 평생을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불가지론자였습니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학과 식물학을 전공 했지만 신앙은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권의 책을 쓰며 지냈습니다. 법과 관련된 농담을 모은 책도 있지만 세 편의 소설도 썼던 경험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필력(筆力)도 탁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점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8-9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저는 저 자신의 무신론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어부가 던진 그물이 천천히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주님께서 조금씩 다가오신 것이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 안에 있던 절반의 ‘나’는 주님을 바라면서도 또 다른 ‘나’는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거칠게 저항했습니다.”

 

찰스 윌리엄스 모은 언더힐의 편지의 일부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저도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미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렇게 산 다면 ‘나’라는 존재는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휘몰아쳐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고, 주님께 두 손 들고 나아왔습니다. 더블린 언더힐도 결국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1907년 소도원에 머물며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교회에 헌신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1921년 그녀는 성공회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중세 교회가 지녔던 가톨릭 영성을 개신교회에 소개하는 가교의 역할을 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신학을 강의했고, 성공회 사제들을 가르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글로 남기기를 즐겨했던 그녀는 400편이 넘는 글을 썼으며, 39권이나 되는 저작물을 남겼습니다. 현재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멜릭 벨쇼우가 엮은 <사순절 묵상>(비아)과 크리스토퍼 웨버가 엮은 <대림절 묵상(비아), <실천적 신비주의>(은성), <사도 바울의 영성과 신비주의>(누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주의>(누멘) 등 열 권 정도가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도문이 아닙니다. 3세기부터 20세기의 기도문 중에서 언더힐의 신비주의적 경향에 따라 선별된 기도문들입니다. 자신이 직접 쓴 기도문도 적지 않습니다. 어거스틴( Augustinus, 354-430)을 사랑했던 그녀는 종종 어거스틴의 <고백록(Confessiones)>의 일부분을 기도문으로 가져옵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소서

주님, 당신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소서.

당신 닿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언제나 좀먹고 사라지는 것에서 벗어나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찾으려 합니다.

아버지, 이 갈망에 사로잡혀 있기에

우리는 영원을 찾아 계속 헤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만나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밝히 보이시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이 책은 언더힐이 기도문을 모아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용도는 특별했습니다. 방대한 독서를 통해 얻은 교회 전통 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기도문을 모아 그것들을 기도회를 인도할 때 활용한 것입니다. 언더힐의 친구였던 마거리 크로퍼는 언더힐이 직접 모은 기도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도 모임 시간에 기도문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오스트리아 출신 가톨릭 신학자였던 폰 휘겔은 그녀에게 영성 지도를 합니다. 그로 인해 언더힐은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폰 휘겔은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을 가르쳤고, 삶과 영성이 분리되지 않는 통합적 신앙을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러한 폰 휘겔의 가르침 덕분에 언더힐은 삶과 신앙을 균형 있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학과 성경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칼뱅이 말하는 바 진정한 앎은 경건한 삶을 통해 재현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믿는 이의 참된 빛이시며

의인의 영원한 영광이십니다.

당신 빛은 저물지 않고 그 광채는 무한합니다.

우리 마음에 밝고 고요한 진리의 빛을 비추소서.

우리가 당신의 영원에 들어가게 하소서.

밤이 지나고 나면,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보이십니다.

그렇게 당신께서는 영원하고 복된 오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전례 기도

 

어거스틴의 회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세례를 주었던 암브로시우스의 기도문입니다. 간결하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언더힐이 특별힌 선별한 기도문들이 발췌되어 있습니다. 언더힐을 아는 학자들과 기도를 발견하고 출판한 로빈 위글리-카에 의하면 언더힐을 이 기도문을 자신이 직접 기도하고 지도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거나, 성경 묵상을 지도하는 분, 또는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참고하면 좋을 내용이 가득합니다. ‘사용한다’는 실용적 의미의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기도문 자체를 묵상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이 책의 기도문을 읽고 묵상한다면 매일의 삶이 얼마나 경건해질까 생각해 봅니다. 웨슬리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윌리엄 로의 기도문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마음에 당신을 모시길 원합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영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속한 종교와 공동체와 믿음의

핵심이 되게 하소서.

-윌리엄 로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존 베일리의 기도문을 매일 조금씩 필사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기도문을 읽는 것만으로 부족해 손을 움직여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언더힐이 수집하고 기록한 기도문 역시 필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도문에 담긴 경건한 마음이 또박또박 쓰인 글을 통해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흔적이 되어 남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피상적이고 조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산 샘물처럼 맑고 신선함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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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추천하는 책]

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의 기도>

존 베일리의 <매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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