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 존 D. 커리드 /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구약의 여호와, 고대 근동의 신들과 논쟁하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이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등의 영화들은 신들의 전쟁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전쟁이 아니라 논쟁일까? 이제 신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고대 근동의 신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저자인 존 D. 커리드(John D. Currid)는 먼저 교수이다. 그는 현재 미국 리폼드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샬롯 캠퍼스(RTS Charlotte)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밸런틴 장로교회 원로 목사이기도 하다. 그는 적지 않은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먼저 그는 성경학자이다. 구약의 여러 성경을 주석했다. ‘Genesis Vol’(2015) ‘Deuteronomy’(2006) ‘Leviticus’(2005) 등이 있다. 고고학 관련 책으로는 고대 이집트를 다룬 ‘An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1997)와 ‘Doing Archaeology in the Land of the Bible: A Basic Guide’(1999) 등이 있다. 이 책은 존 D. 커리드책으로서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며 유일한 책이며, 가장 커리드 다운 책이다. 고고학 전공인 탓에 그의 주석들은 대체로 고대 근동의 신화와 역사적 배경들을 비교하며 주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집트 지역의 발굴 작업에 직접 관여하고 참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현장 전문가이기도 하다. 신학과 목회를 넘어 고고학 현장 전문가의 생각이 피력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전쟁이 아닌 논쟁 이야기를 들어 보자.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추천사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김회권 교수는 이 책이 ‘구약성경의 종교를 고대 근동의 종교의 아류로 보거나 고대 근동 종교의 파생 종교로 보는 종교사학자들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변증 저작’으로 소개한다. 고대 근동의 신화와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공통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류호준 교수는 ‘신들에 대항하여(Against god)’가 구약이 가지는 ‘논쟁 신학’의 특징을 대변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에른스트 트뢸취로 대변되는 종교사학파의 견해를 살펴보자. 종교사학파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구약은 고대 근동의 신화의 일부이며, 주변 국가들의 신화들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받은 것’으로 규정하다. 이러한 관점은 유일신 사상을 가진 구약 이스라엘 신관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주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주장이다. 이 책은 종교사학파의 다원적 신관을 부정하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했던 이스라엘의 고대 신관을 구약 성경이 그대로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책 속에서 살펴보자.
1장과 2장에서는 논쟁의 서막이자 전제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고대 근동 연구의 간략한 역사와 논쟁의 논지들을 설명하다. 3장부터 11장까지는 고대 근동의 신화와 성경의 내용들을 비교분석하면서 구약 성경의 독특성을 변증 한다. 1798년 나폴레옹은 학자와 건축가 학자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향한다. 그곳에서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이라는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고, 이것이 이집트 발굴의 중요한 시작점을 제시한다. 1922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 왕릉은 세기적 발견이자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이집트 신들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한 예로 아몬 주신전의 부마스티스 문에 부조된 이야기는 기원전 10세기 시삭 왕이 유다 왕 이스라엘을 침공한 내용이다. 이것은 왕상 14장과 대하 12장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한다. 또 하나는 에밀 보타와 헨리 라야드 경의 아시리아 지역의 발굴이다. 이곳에서는 아시리아의 북이스라엘 멸망과 고대 신화 속 홍수 이야기 등은 성경의 이야기들과 비슷했다. 결국 이러한 발굴들은 고대 세계를 구약 성경에만 의존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료에 근거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성경의 절대성을 무너뜨린다.
논쟁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한 저자는 2장에서 논쟁 핵심인 ‘강한 손’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구름을 타는 자’ ‘뱀의 대결’ ‘기근’ 등의 의미들을 설명한다. 고대 근동 신화와 비슷한 이런 이야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빌려온 것일까? 아니면 스며있는 것일까? 저자는 구약 성경이 당시 고대 근동의 신화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당시 사용하던 표현들을 그대로 차용했지만 이방 신화들을 ‘반박’(48쪽)했다고 주장한다. 3장에서는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를 비교하며 구약 성경이 어떻게 ‘반박’했는가를 밝힌다. 고대 근동의 신화들은 모두 다신론적이지만 히브리 인들의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63쪽)이다. 창조되는 신화의 신들과 다르게 구약의 여호와는 ‘급진적 일신론’(64쪽)이다. 궁극적으로 고대 근동 신화들은 다신론적이며, 허물과 약점이 가득한 신들이며, 때로는 잔인하고 포악하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유일신이며,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3장 창조 기사의 결론을 직접 들어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창세기 1-2장은 일신론을 철저하고 열렬하게 지지한다. 이 문헌은 다른 신들이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명백한 논쟁으로 그것들에 대항한다.”(73쪽)
그렇다. 비교를 넘어 결론은 ‘대항(Against)’한다. 4장에서 이어지는 노아 홍수 이야기도 창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홍수 이야기는 고대 근동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전설과 신화 속에서 발견된다. 중국, 일본, 동남아 여러 지역과 남미의 인디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수메르 홍수 이야기는 이스라엘에 가깝기도 하고 내용도 상당히 비슷하다. 아트라하시스의 홍수 이야기는 바벨로니아의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로 통합된다. 여기서도 창세기 홍수 이야기는 홍수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가 완전히 다르다. 홍수를 무서워하는 이방신들과 달리 구약의 하나님은 모든 사건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직접 홍수를 내리고, 노아와 그 가족을 구하며, 방주의 문을 직접 닫으며, 물을 불어나게 하고 줄어들게 한다. 참으로 ‘야웨는 세상을 지배’(99쪽)하시는 분이다 어찌 그런 여호와가 신화 속의 신들과 같을 수 있을까? 논쟁의 결말은 명징하다. 완전한 KO승이다. 고대 근동 신화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시편 기자들은 종종 ‘가나안 신화를 사용해서 바빌로니아 왕을 조롱한다.’(224쪽)
나가면서 몇 가지만 정리해보자. 먼저, 이 책은 구약 성경이 히브리인들의 경전으로만 존재하지 않았고, 반(Anti) 신화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의 여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신이며, 유일하신 신이시다. 또한 고대 근동의 신화들은 비교하면 할수록 구약이 독보적 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구약의 여호와는 군계일학이다. 그렇다고 고대 근동 신화를 굳이 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양한 관점의 신화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틀이다. 고대 근동 신화들이 보여주는 신들은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반신화적 관점에서 신약을 바라본 르네 지라르를 해석한 정일권의 <예수는 반 신화다>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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