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전문우 / 누림북스
이 책은 집 나간 아내도 돌아오게 한다.
어제 왔다. ‘딩동’ ‘누구세요?’ ‘택뱁니다.’ 그렇게 도착한 책은 포장지가 뜯기는 순간 아내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만 하루가 가기 전 아내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리고 지금은 양산 남부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와 삼천 원 동치미용 무를 잘라 김장을 하고 있다. 말이 김장이지 배추 한 포기도 아니다. 무엇을 넣어야 할 줄 몰라 나에게 묻지만 나의 대답은 늘 ‘편하게 해’이다. 편하게,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난 잘 먹으니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난 오후부터 이 책을 임대하여 잠깐 책을 읽고 있다. 고작 세 시간 즈음에 다 읽고 말았다.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블랙홀에 빠져들 듯 정신없이 읽고 말았다. 훑어 읽기가 아닌 정독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흡입력 있는 책은 처음이다. 전에 셜록 홈스 시리즈에 빠져 그렇게 읽을 적이 있지만,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음에도 알 수 없는 뭔가가 나를 끌어당긴다. 읽는 모든 독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아내는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았다. 십 년을 넘게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홀로 그렇게 지내왔다. 여자 홀몸으로 살아온 세월이 십 년 하고도 몇 년을 더 넘겼으니 그 살아온 삶의 굴국을 어쩌다 알 수 있으랴. 그런데 올봄 나와 결혼을 하면서 사역을 내려놓게 되었고, 그 후로 심한 우울증세를 겪었다. 저자는 우울과 우울증은 다르다고 한다. 우울이 가끔씩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손님이라면, 우울감은 하루 24시간 겪어야 하는 고통 그 자체이다.
“우울증은 슬프고 괴로운 감정 탓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도 ‘극도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의 우물 상태이다.”(40쪽)
불과 30초마다 우울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도 있다. 아내는 책 중간에 첨부된 ‘우울증 셀프 체크리스트’를(44쪽) 읽더니 ‘거의 다 해당되네.’라며 으스레를 떤다. 난 아내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그동안 살아 있으나 죽은 듯한 삶을 살았다. 버려지고 소외된 체 살아왔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고, 아이들에게 유언도 남겼다. 자신이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유언이다. 결혼 후 아내와 나는 가끔씩 의견 충돌이 생겼다. 이전에는 서로가 왕이었지만 결혼 후, 한 지붕 아래 두 명의 칸이 공존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에 순종적인 아내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단호하다. 학원에서 오랫동안 일한 덕에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할지를 잘 안다. 아이들로 하여금 동기를 유발하여 공부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방임에 가까워 많이 허용적인 나에게 아내의 관심은 나와 달랐다. 두 가정이 만나다 보니 이것저것 조율해야 할 의견도 많았다. 물질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탓인지 언성 높이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집 안 문제로 마음이 갈리고, 사역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아내를 짓눌렀다. 아마도 수술 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사라져 가는 탓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나의 투정까지 겹치니 아내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다. 이 책의 처음 몇 장은 독서 에세이 형식으로 떠내려간다. 정말 평이한 문장과 설득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에세이 형식을 벗어나 치밀한 정신의학적 담론을 언급한다. 특히 정신 병원이 치료가 아니라 환자들을 의사들의 실험 연구용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들은 섬뜩하게 만들었다. 전에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로젠한 박사의 가짜 환자 이야기는 진정한 정신 치료라는 것이 존재나 할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아내에게 물었다.
“읽고 나니 어때요?”
“평이한 것 같은 데 읽을수록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
그렇다면 평이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마음을 치료하는 묘약이다. 어떤 책은 강열하고 지독하게 몰입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맛이 떨어진다.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젊은 시절의 불장난 같은. 그러나 어떤 책은 평범한듯하면서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울렁거림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책이다. 남성의 고향이 여성이라면, 독자의 고향은 책이다. 읽을수록 영혼의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책, 바로 이 책이다.
책이 과연 우울증을 치료할까? 다만 아내와 나의 특별한 케이스일까? 호기심에 ‘우울증’과 ‘독서’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곳저곳에서 우울증의 비약물 치료의 대표적 예로 ‘독서와 걷기’를 추천한다. 걷기는 햇빛을 쬠으로 멜라토닌을 발생시켜 기분을 전환해 주고, 독서는 전두엽을 활성하고 한 곳에 몰입하게 하여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테베의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고 불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위한 약상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아주 오래전부터 책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유해주는 힘이 있었다.”(22쪽)
그냥 편하게 읽었을 뿐인데 아내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한다. 책이라고 같은 책은 아닌 것 같다. 우울증 책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책이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의 무게는 좀 더 가벼워진다. 매장마다 중요한 책에서 가져온 이야기와 문장으로 채워진 글들은 마음을 다독여 주면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냥 편하게 읽지만 읽고 나면 이것저것 공짜로 얻어간 느낌이 든다.
왜 이리 마음이 편하지? 마지막 장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받은 느낌이다. 내용도 좋았지만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책을 다시 펼쳐 살펴보았다. 사진이었다. 해바라기, 낙엽, 한적한 시골길, 우체통, 들꽃....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하다. 그랬다. 이 책은 글도 좋지만, 사진도 좋다. 그런데 이 많은 사진은 다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저자 자신의 찍은 사진일까? 어쨌든 책이 좋다. 집 나간 아내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내가 집 나간 남편들이여 이 책을 선물해 보라. 가정은 화목해지고, 삶을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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