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장 3절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의 신학적 의미와 주제별 해석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διὸ γνωρίζω ὑμῖν ὅτι οὐδεὶς ἐν Πνεύματι Θεοῦ λαλῶν λέγει ΑΝΑΘΕΜΑ ΙΗΣΟΥΣ, καὶ οὐδεὶς δύναται εἰπεῖν ΚΥΡΙΟΣ ΙΗΣΟΥΣ, εἰ μὴ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1. 원어적 분석
- 저주하다(ἀνάθεμα): 헬라어로 '아나테마'는 종교적 저주나 심판의 의미를 지니며, 구약의 "헤렘"(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 개념과 유사합니다. 이 단어는 어떤 대상이 영원한 멸망 상태에 놓이게 되는 심각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욕설을 넘어선 종교적 단죄와 분리의 의미를 가집니다.
- 주(κύριος): '키리오스'는 주권적 통치자를 의미하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 사용됩니다. 헬라어 구약 번역본(70인역)에서 여호와(יהוה)가 '키리오스'로 번역된 점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신앙 고백임을 강조합니다.
- 성령(πνεῦμα ἅγιον): '프뉴마 하기온'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뜻하며,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신약 전반에 걸쳐 성령은 예수님의 사역을 증언하고 신앙 공동체를 인도하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2. 저주와 그 배경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바울이 예수를 저주하는 말을 언급한 이유는 당시 교회가 처한 문화적, 종교적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헬라 세계에서는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며 예수를 신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이교적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이러한 이교적 문화에 노출되면서 신앙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적 은사를 남용하거나 왜곡하는 성도들 중 일부는 은사를 통해 자신이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저주하는 행위는 이러한 영적 혼란 속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통한 올바른 신앙 고백과 이교적 사상에 물든 왜곡된 행위를 분명히 구별합니다.
여기서 '예수를 저주할 자'라는 표현은 이상한 번역으로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예수는 저주를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유대인을 비롯한 이방인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성령과 올바른 신앙 고백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성령의 사역이 신앙 고백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를 주시라"는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우주 만물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속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깊은 영적 고백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성령이 없이는 누구도 참된 신앙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고, 그분을 주로 믿고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참된 신앙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즉 예수님은 저주를 받아 죽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죽었다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율법적으로는 분명히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표면적인 이해로 끝나지 않고 그 이면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 들인다는 의미입니다.
4. 성령의 역사와 교회 공동체 내 질서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 사이에서 경쟁과 분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자신이 가진 은사를 과시하며, 타인의 신앙을 판단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령의 역사와 은사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각 은사를 통해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연합하도록 인도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화평을 이루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참된 신앙의 기준은 은사의 외적 과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과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선언하며,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공동체가 참된 질서와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5. 신앙 고백의 중요성과 현대적 적용
오늘날 교회에서도 바울의 가르침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적 의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세상의 가치와 철학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세우도록 도우십니다.
현대 사회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팽배하여,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 흔들리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더욱 의존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성령은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에 따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성령의 역사는 성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력하도록 이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은 개인적 신앙을 넘어서, 교회의 연합과 사명 수행의 기초가 됩니다.
6. 신학적 의미와 구속사적 연결
바울이 강조한 "예수는 주시라"는 고백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이사야서 53장은 고난받는 메시아가 인류의 죄를 대속할 것을 예언하며, 시편 2편에서는 메시아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가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가르칩니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이러한 구속사의 진리를 깨닫게 하며,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통한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는 중요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성령의 사역이 신앙 고백에서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참된 신앙을 갖도록 촉구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저주하는 행위가 성령의 역사와 완전히 반대됨을 경고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신앙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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