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1:1-7
복음의 종, 복음의 부르심 (롬 1:1-7)
사도 바울은 편지의 첫 문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 그리고 복음의 본질을 한꺼번에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라는 이 한 구절에는 그의 삶의 방향과 존재의 근거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둘로스(δοῦλος)'는 단순한 일꾼이나 봉사자가 아닌, 주인에게 완전히 속한 자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둘로스'라 고백하면서, 자발적인 복종과 전적인 소속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의 사역자란 누구보다 철저히 그리스도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는 표현에서 '부르심'은 '클레토스(κλητός)'로, 외적 초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소명과 선택을 나타냅니다. 이 부르심은 개인의 열정이나 자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경륜 속에서 계획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의 목적은 복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택정함'은 '아포리조(ἀφορίζω)', 즉 '구별하다, 떼어놓다'라는 뜻으로, 레위기 20장 26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거룩한 구별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이제 율법을 위해 구별된 바리새인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구별된 복음의 바리새인이 된 것입니다.
약속된 복음과 그 중심, 예수 그리스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단순한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구약을 통해 예언되고 약속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 복음은 '미리 약속되었다'는 점에서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구속사적 성취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아들'이라 부르며, 이 복음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3절과 4절은 복음의 핵심 내용, 곧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3절)라는 말은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육신'은 헬라어로 '사르크스(σάρξ)'이며, 단순한 육체라기보다는 연약한 인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연약함 속에 감추어진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4절). '성결의 영'은 '프뉴마 하기오쉬네스(πνεῦμα ἁγιωσύνης)'로, 단순한 성령의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그분의 부활은 그 신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고, 이를 통해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공적으로 선언된 것입니다.
사명의 부르심과 성도의 정체성
5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도직의 목적을 밝힙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5절). 사도직은 그저 직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은' 부르심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반복하여 강조하며(롬 11:13), 이 부르심의 목적은 '믿어 순종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믿어 순종하게 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신앙의 동의가 아니라, 삶 전체로 드러나는 복음에 대한 전인격적 반응을 요구합니다.
이어지는 6절과 7절에서 바울은 이 편지를 받는 로마의 성도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청중이 아닙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6절). 여기서도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표현이 반복되며, 성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 그리고 거룩함의 목적을 포함합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7절). '사랑하심을 받고'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은, 복음의 은혜가 개인의 신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성도(ἅγιοι)'는 단순히 윤리적인 의미의 도덕적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구별된 자', 곧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인사하며, 복음의 핵심이 결국 은혜(χάρις)와 평강(εἰρήνη)에 있음을 덧붙입니다. 복음은 은혜로 시작하여 평강으로 마무리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는 바울 자신에게도, 로마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결론
바울의 서두는 그 자체로 복음의 요약이자 선포입니다. 그는 자신을 종이라 부르고, 복음을 위해 부르심 받은 자로 정의하며, 이 복음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약속의 성취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단지 전해져야 할 소식이 아니라, 사람을 부르시고 변화시키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부르시고, 구별하시며, 순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며, 단순한 정보가 아닌 생명을 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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