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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신비 창세기 37:12-28

샤마임 201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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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신비[각주:1]

창세기 37:12-28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어떤 권사님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믿음이 약한 어떤 분은 하나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실하시고 믿음으로 살아가셨던 권사님을 어떻게 교통사고로 데려갈 수 있단 말인가? 매우 낙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비록 죽음의 이르지 않았기에 여기에 앉아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을 위해 성실하게 살았지만 오히려 사업은 부도가 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실하게 착하게 살아온 대가입니다. 만약 평범하게 적당하게 살았다면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믿은 것이 오히려 가정을 힘들게 했고, 삶을 고통의 수렁으로 믿어 넣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일이 없습니까? 예수를 믿고 난 뒤 여러분의 가정은 평안하십니까? 교회를 다니고 난 뒤 여러분의 사업장은 안녕하십니까?

 

이럴 때 우릴 누굴 의지해야 합니까? 이럴 때 우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도무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을 것 같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계속 교회를 다녀야 합니까? 그만 다녀야 합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오늘 성경 속에서 답을 찾아봅시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다고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꿈을 버려야 한다.


저는 얼마 전 신문에서 100억에 가까운 복권에 당첨된 십대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통장에서 불과 320만 원 정도 밖에 들어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복권에 당첨된 후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습니다.(고래사냥 노래) 그러다 친구들과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의 돈을 빼앗기 위해 온갖 달콤한 이야기를 하며 달라붙었습니다. 순진했던 그녀는 그들에게 돈도 뺏기고, 마음도 뺏기고, 몸도 뺏기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직 통장에 300만 원 정도가 있지만 거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무 순진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큰돈이 생겨, 오히려 내게 해가 되었다.”

어떻습니까?


잠 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를 수 있는 지혜가 없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은 바로 이때 쓰는 사자성어입니다. 요셉은 너무 어린 나이에 과분한 꿈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꿈을 준 것입니다. 그는 교만했고, 어리석었고, 미숙했습니다. 그는 꿈을 간직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단련시키려 하셨습니다.


시 105장 19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형들이 양떼를 먹이러 세겜에 있을 때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기록합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의 거리는 약 80킬로미터입니다. 빠른 장정의 걸음으로도 꼬박 이틀이 걸립니다. 요셉은 싫다는 소리 한 마디도 없이 세겜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형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단으로 갔는데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약 32킬로미터입니다. 삼일에 걸친 대장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셉은 거의 죽임을 당하게 되고 아버지와 22년 동안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보냈습니다. 이것이 야곱과 하나님의 차이입니다.

 

요셉은 순종했습니다. 성실했습니다.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무너졌고, 좌절했습니다. 우리는 줄곧 요셉이 너~무 완벽해서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아닙니다. 요셉도 사람이고, 두려움이 많은 십대의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형들에 애굽에 내려가 곡식을 살 때 요셉이 형들을 알아보고 간첩으로 몰아세웁니다. 그 때 형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요셉은 그냥 죽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을 보면서 애걸했습니다. “형들, 제발 살려줘, 제발, 나 좀 살려줘!” 그렇게 부르짖고 소리 지른 것입니다. 어떤 영어 성경은 애걸을 영혼의 고통이라 표현했습니다. 요셉은 두려워했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신 다음 요셉을 처참할 정도로 바닥에 내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비전을 예수에게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꿈이 너무 위대하기에, 그 꿈이 너무 고귀하기에 채색 옷을 입고, 적당한 의로움과 착실함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옳은 소리하고, 바른 소리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떠나가고 미워합니다. 세상을 더욱 그를 싫어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기에 요셉의 마음은 너무 옹졸했고 치졸했습니다. 물론 그는 성실했습니다. 그는 정직했고, 효심도 지극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무도 변화 시킬 수 없었습니다. 마치 이집트 왕자로 살았던 의로운 모세가 유대인을 위해 살인을 하면서도 오히려 미움을 받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을 품기에 요셉의 마음은 너무 좁았습니다. 하나님을 요셉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꿈의 크기만큼 요셉의 그릇을 키우시기 위해 고난의 학교에 요셉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셉의 고난을 보며 기억해야할 첫 번째 교훈은 꿈을 담을 만한 그릇의 크기가 먼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욥 23장 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 

두 번째 교훈을 들어 봅시다. 그것은 하나님만 바라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요셉의 구덩이에 던져질 때 르우벤이 와서 요셉을 구하려 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는 요셉을 손대지 말고 구덩이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요셉을 다시 꺼내 아버지 야곱에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르우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한 것일까요? 잘못한 것일까요? 잘한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다시 유다가 나서서 요셉의 죽음을 막습니다. 역시 잘한 일입니다. 아무리 잔인한 사람들이라도 착한 부분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정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그 어떤 도움도, 그 어떤 권세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하기로 하시면 끝입니다.

 

하나님이 손대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 하실 때까지 참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신앙의 사람이라구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입니다. 창세기 40:14을 보십시오. 술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다음 나가면 나를 풀어 달라고 청원합니다. 아무 죄가 없으니 바로에게 말해서 꺼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안 됩니다.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우린 이런 망각을 의도적 망각이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됐다’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꼼짝도 못합니다. 우리는 실존적 절망 속에서도 절대 희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의 도움은 지푸라기와 같은 아침 이슬보다 못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루가 지나면 지고마는 꽃의 영광 같은 것입니다.

 

3. 

꿈은 우연 속에서 필연을 만들어 낸다.


요셉의 구덩이에서 애걸하며 죽어가는 가운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이스마엘 사람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낙타 위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야곱도 모르고, 형들도 모르고, 요셉은 더더욱 모릅니다. 애굽의 꿈이 실현되는 기적의 장소라는 것을. 애굽에서 요셉은 많은 고난과 오해를 받습니다. 결국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장소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도한 곳이 어딘가요? 홍해 앞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곳으로 인도합니까? 애굽의 군대들이 뒤에서 추격합니다. 앞은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을 ‘절망의 장소’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적과 은혜의 장소’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절망이고, 좌절이고, 슬픔이고, 눈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꿈은 이루어집니다.

 

 

 

  1. 반석교회 주일오후 설교, 2013년 7월 28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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