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락(籠絡)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농락(籠絡)에 대한 단상
籠 : 대그릇, 삼태기 즉 용기를 뜻하고,
絡 : 헌 솜, 누이지 아니한 삼, 명주를 뜻 한다. 뜻이 이러한대 농락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의미는 글자와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사전을 검색하면 이렇다.
[명사] 새장과 고삐라는 뜻으로, 남을 교묘한 꾀로 휘잡아서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함.
어원을 찾아보면 현재의 단어가 가진 뜻이 드러난다. 한자로 농籠은 대나무와 하늘을 나는 용이란 단어가 합해진 합성어다.
죽(竹) + 용(龍) = 농(籠)
풀이하면 하늘을 나는 용이라도 대나무 그릇에 담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후에는 농자가 들어가 비슷한 단어들을 만들어 냈다. 조롱이 대표적 단어다.
絡자는 솜을 말하는데 연결된다는 뜻이다. 구슬도 꿰매야 보배란 말이 있듯, 실오라기도 서로 연결되어야 천이 되고, 쓸 만한 물건이 된다. 연락, 맥락 등의 단어들에 나타난다.
농과 락은 전혀 다른 의미지만 두 글자가 합해져 부정적 의미로 발전한다. 대상물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주무르는 것이 된 것이다. 농락을 능동태와 수동태의 동사로 바꾸기도 한다. 능동태로 바꾸면, ‘농락하다’가 되고, 수동태는 ‘농락당하다’이다. 염상섭의 이심의 문장이다.
하여간 주의를 하란 말이야. 이번만 하더라도 감옥까지 가게 한 것은 그놈의 농락이니.
한승원의 해일의 문장이다.
그는 최봉일과 구양수의 손바닥 위에서 한 마리의 벌레처럼 농락을 당하다가 놓여난 것만 같이 분하고 억울했다.
수단이 된 인간은 타자로서만 존재한다. ‘나와 너’의 존재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이다. 수단으로서의 존재는 무(無)다. 수단이 되는 순간 인격이 아닌 물건이 된다.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서로가 서로를 농락할 뿐이다. ‘나’의 ‘너’는 없고, 오로지 ‘그것’만 있게 된다. 그것만의 세계는 ‘나’가 사라지고, ‘나’도 ‘그것’이 되어 인간의 종말이 일어난다. ‘나’가 ‘너’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그것’이 되고, 그것과 그것은 분절(分節)을 넘어 단절(斷切)이 일어난다. 단절을 다시 ‘절망(切望)’을 낳고, ‘절망’은 다시 ‘무(無)’가 된다. 일찍이 에릭프롬이 간파한 것처럼 소유는 ‘너’를 ‘그것’으로 치한시킴으로 ‘나’를 ‘그것’으로 만들고, ‘나’와 ‘너’의 관계는 기계적이고 수단화되어 관계의 종말을 가져온다.
존재(存在)가 존재하려면, 서로를 농락하는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가 ‘너’ 진정한 ‘너’로 대할 때 ‘나’도 ‘그것’에서 ‘나’ 회복(回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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