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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28-38 예루살렘 입성

샤마임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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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를 넘은 왕의 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인류 구속사의 정점으로 향하는 출발점입니다. 겉으로는 환호와 찬양이 넘치는 축제처럼 보이지만, 그 길은 고난의 길이며, 가시로 덮인 십자가를 향한 순종의 길입니다. 누가복음 19장 28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이 입성이 단순한 행진이 아닌, 인류의 죄를 대신 지는 메시아의 자기 비움과 섬김의 여정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특히 이 장면 속에 내재된 '가시'의 상징성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죄와 그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나귀, 가시의 여정을 예고하다 (눅 19:28-31)

예수님께서 감람산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메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라"(눅 19:30). 이 명령은 단순한 나귀 한 마리를 끌어오는 행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스가랴서 9장 9절의 성취이며,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언적 사건입니다.

나귀는 히브리 문화에서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그 겸손함 뒤에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고난의 여정, 곧 가시로 덮인 십자가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18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는 죄의 결과이며 인간 고통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나귀 탄 입성은 곧 이 죄와 고통을 대신 지는 순례의 시작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가시 'קוֹץ'(코츠)는 찌르는 고통, 절망,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가시의 길을 택하심으로, 인간의 죄와 저주를 친히 짊어지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길 위에 깔린 옷, 찬양 속에 드리운 그림자 (눅 19:32-36)

제자들은 말씀하신 대로 나귀를 데려오고,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예수님을 태웁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눅 19:35-36). 이는 구약 시대 왕을 맞이할 때 행하던 환영의 의식이자, 자신을 낮추고 복종하겠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외적인 환영 속에는 곧 닥쳐올 배신과 거절의 기운이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길에 깔린 옷은 임시적인 환대였으며, 겉으로 드러난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국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그 끝엔 가시 면류관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조차 벗겨지고 조롱당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은 왕을 찬양하며 환영했지만, 참된 메시아의 의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시를 피한 영광의 왕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가시를 뚫고 구원의 길을 여시는 고난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장면은 또한 구속사적 차원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수풀에 걸린 숫양을 떠올리게 합니다(창 22:13). 그 양의 뿔이 가시에 걸려 있었듯, 예수님은 인류의 죄라는 가시에 붙잡혀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이는 단지 상징이 아니라, 실제 구원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메시아적 성취입니다.

찬양과 외침, 그러나 곧 침묵과 조롱으로 (눅 19:37-38)

감람산 내리막길에 다다르자 제자들과 무리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 19:38). 이는 시편 118편의 인용이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며칠 후 같은 입술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요 19:6)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이 극적인 반전은 가시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보여줍니다. 환호와 배신, 찬양과 조롱은 인간의 이중성과 죄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죄성을 안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히브리 문학은 대조와 반복을 통해 중심 메시지를 부각시키는데, 이 장면은 바로 그러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으로 시작하지만, 끝은 침묵과 조롱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이 모순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은 조롱의 도구였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의 상징을 구원의 면류관으로 바꾸셨습니다. 가시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19장 28절부터 38절까지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겉보기에는 영광스러운 입성이지만, 실상은 가시로 덮인 고난의 길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로 오셨고, 백성들의 찬양 속에서도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셨습니다. 겉옷을 길에 펴며 환영하던 이들은 곧 그분을 버릴 자들이었고, 가시 면류관은 이미 그분의 머리 위에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장면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예수님은 그 중심에서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입성의 순간을 단순한 절기로 기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그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붙들고 더욱 깊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시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그 가시를 넘은 주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생명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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