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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24절

샤마임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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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시작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깊은 신비를 곡식 한 알의 비유로 풀어낸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이 구절은 단순한 자연의 원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역과 성도의 제자도를 설명하는 핵심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죽음과 헌신, 그 뒤에 오는 생명과 열매의 법칙을 보여주는 깊은 상징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생명의 역설로 이루어집니다 (요 12:24 상반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은 유대인들의 6월절, 즉 유월절을 앞둔 때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점, 곧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의 장면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하고 자유를 얻은 구속의 절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 어린양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곡식의 한 알로 자신을 비유하셨습니다. 이 곡식은 생명의 가능성을 담고 있으나,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입니다. 이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알’이라는 표현은 외롭고 고립된 존재, 아직 자기중심적인 자아의 생명 상태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지 않으면,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으면 구속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곧 자신의 죽음이 열매 맺는 생명의 출발점이 됨을 선언하는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흙 속으로 들어가는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죽음이며, 순종과 헌신의 극치입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질 때 그 껍질이 썩고 깨지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새 생명이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부활의 시작이 됩니다.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열매가 맺힙니다 (요 12:24 하반절)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죽으면’이라는 표현은 단지 자연적인 사망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아포쥐네’는 자기 생명에 대한 철저한 포기와 소멸을 내포합니다. 씨앗의 죽음은 가능성의 종말이 아니라, 가능성의 현실화입니다. 죽음을 통해 하나였던 존재가 다수가 되며, 생명이 확장되고 증식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하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사건임을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 곧 교회입니다.

 

구속사란 이처럼 ‘죽음을 통해 생명이 피어나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역설입니다. 세상은 죽음을 패배로 보지만,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 생명의 문을 여십니다. 이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구속사의 질서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열매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열매는 ‘죽음’을 통과한 후에만 맺힙니다. 자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 앞에 내려놓는 훈련,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하고 인내하고 헌신하는 삶, 이름 없이 사라져 가는 광야의 시간들… 이 모든 죽음 같은 순간들을 통과해야 우리는 마침내 ‘많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입니다.

 

제자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는 길입니다 (요 12:25-26 보충적 연관 본문)

요한복음 12장 24절은 단독 구절로도 강력한 의미를 갖지만, 그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밀알의 비유를 제자도의 삶으로 확장하는 연결 고리입니다. 제자도란 ‘죽음’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지혜요,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시각에서는 자기를 미워하고 내려놓는 것이 곧 영생을 소유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요 12:26).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이 상징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매우 실제적인 원리입니다. 서로 높아지려 할 때 공동체는 갈등하지만, 각자 자기를 부인하고 섬길 때 공동체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는 ‘죽는 자를 통해 사는 자들이 세워지는 곳’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밀알이 되는 사람들을 통해 자랍니다.

 

결론

요한복음 12장 24절은 단순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속사의 핵심 원리를 담은 강력한 선언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그 사건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경륜이요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우리 또한 이 밀알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땅에 떨어뜨려 죽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구속의 시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주 안에서 죽는 삶이 되어, 많은 영혼의 열매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밀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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