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漫談] 책은 읽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독서漫談] 책은 읽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책을 정말 좋은 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를 책이 가끔 있다. 이 책, 폴 트립의 <지금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읽었을 때 익숙한 주제이지만 풀어가는 과정은 산뜻했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뜻대로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룬 책이다. 서평을 나중에 쓰기로 밀린 원고를 썼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집었지만 역시 써지지 않았다.
지금 몇 가지만 골라 써보면 이렇다. 먼저 이 책은 제목이 정말 맘에 든다. 원제는 'A Quest for More: Living for Something Bigger than You'이다. 원제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지만 저자의 의도를 잘 살린 제목이 되었다. 원제가 난해해 번역하면서 제목을 어떻게 했을까? 고민을 적지 않게 했을 책이다. 저자인 폴 트립을 찾아 검색하니 익숙한 책 권이 보인다. <목회, 위험한 소명>이나 <돈과 섹스>등은 제목을 알지만 저자를 몰랐다. 책을 읽다 보면 강열한 느낌을 준 저자가 아니면 곧잘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 책들은 좋았는데 왜 망각의 늪에 던져 버렸는지 모르겠다. 글을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시 책은 글로 풀어내지 못한 체 책장 한구석에 잊혀 갔다. 그러다 오늘 다시 내 손에 잡힌 것이다. 사실 잊힌 것은 아니다. 늘 제목을 보았다.
책이라 반드시 읽으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샀다는 의의가 있고, 제목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제목을 보며 늘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도록 이끌었다. 언젠가는 서평을 쓸 책이라 잘 보이는 곳에 둔 탓이다.
방 한 곳에 벽을 야금야금 정복해는 나가는 책들이 산더미다. 처음 양산으로 이사 왔을 때 몇 백 권 되지 않아 불편한 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골에서 가져온 책과 사모은 책들로 인해 벽은 수많은 텍스트에 점령 당하고 있다. 책상, 침대, 남겨진 벽을 정복해 나간다. 책을 살줄 알아도 팔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 한몫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 책을 몇 권 팔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생살이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 그것이 나뿐인가. 아내도 책을 도무지 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책을 사면 언제나 나의 사인을 받는다. 읽을 책을 파라고 하면 '당신의 사인이 들어간 책을 어찌 파느냐?'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그렇지 내 사인이 있었지.
책을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와 나는 책이 방안에 가득 차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때로는 쌓아둔 책들이 무너져 방바닥이 책 바닥이 되기도 한다. 약간의 당혹감이 밀려오면서 도무지 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련한 부부다.
글을 쓰다 막힐 때가 있다. 그러면 쌓인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모양, 두께, 표지 디자인, 칼라 등등. 제목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 쓰고 있는 글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뜻밖의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뮤즈는 글이 아닌 책 자체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은 제목은 정말 좋은데 내용이 허한 것도 있다. 그런 책은 그냥 제목만 볼 수 있도록 놔둔다. 어떤 책은 제목은 시원찮은데 내용이 정말 좋다. 그런 책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가까이 둔다. 어떤 책은 제목도 내용도 좋다. 그런 책은 추천도서에 올려놓는다. 개인적으로 필립 얀시와 헨리 나우웬의 책은 대부분 강력 추천 도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유진 피터슨과 C. S. 루이스다. 지금은 덜하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번역된 루이스의 책들은 대부분 읽었다.
쓰고 싶은 글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다. 일단 제목만 읽자. 책은 반드시 읽으라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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