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나의 눈부신 친구 / 엘레나 페란테
[독서일기]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으며
2017년 1월 18일
삼일째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한길사)를 읽고 있다. 읽은 지가 삼일째되는 것이지 실제로는 어제 150쪽 정도 읽고, 오늘 333쪽까지 읽었으니 이틀째가 옳다. 무지막지한 시간을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는데 시간을 보내고 일반 책이라면 벌써 두 권은 읽었을 시간이다. 역시 난 소설에는 젬병이다. 어쨌든 수많은 찬사처럼 이 책은 탁월한 책이다. 사람의 심리를 어찌 이리도 적나라하게 까발리면서 심장을 후벼파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도 대단하고, 번역한 김지우도 대단하다. 어쩌면 번역자인 김지우에게 더 많은 공을 돌리고 싶다. 글이 술술 읽힌다. 번역자는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 번뇌에 휩싸인다. 나 같은 활자중독자는 직독을 선호하고 일반 독자들은 의역을 선호한다. 소설인 경우는 의역이 더 맞다.
저자인 엘레나 페란테는 가명이란다.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며, 나폴리를 떠나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리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알지도 못하는 작가에게 어떻게 의외를 할 것이며, 그의 책을 내 준단 말인가? 그럼에도 저자 소개는 일종의 저자에 대한 배려이기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출판사의 문학적 작당으로 보인다. 이것도 괜찮다. 일반 내용 자체가 탁월하지 않은가. 이쁜 여자는 무엇을 해도 다 용서되듯, 소설은 내용이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래서 나도 얼토당토 않은 용서를 해 보련다. 독자에게 그럴 의무도 특권도 없지만 말이다.
소설은 읽어도 밑줄을 거의 긋지 않은데 이 소설은 밑줄이 부담스러울만큼 많다.
"릴라는 흔적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그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20
"릴라가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32
"사실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일을 했지만 확신에 차서 해낸 일은 거의 없었다." 35
"움직이는 모든 육체와 그 육체를 구성하는 골결, 그것들을 사로잡은 광기에 대해서 혐오감이 느껴졌다." 114
그러니까 내가 밑줄을 그는 부분들은 문장 자체가 좋기보다 전후 문맥 속에서 넣기 힘든 기발한 생각들이다. 읽어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런 문장은 어떻게 써 넣은 거야? 감탄하다보면 어느새 밑줄이 한가득이다. 나도 모르게 뭍줄을 긋고 있다.
"그녀의 입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문장들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괴로웠다.' 132
한 문장 안에 말하기 힘든 심리적 갈등 상태를 풀어 낸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밑줄을 다른 노트에 옮긴다면 노트 한 권은 거뜬히 채울 것이다. 사색과 현실을 넘나들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이 넘친다. 푸르투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첫 권 반쪽을 읽다 접었다. 너무 깊이 생각에서 생각으로 이어진다. 너무 지루해 지쳐 버렸다. 그런에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사색이 순간에도 빛이 넘쳐나고 박진감이 넘친다. 저자의 심리묘사가 디테일하면서도 다이나믹하다. 저자는 진정한 프로 작가다. 그래서 이 책이 이토록 사랑 받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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