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새벽에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는다.
독서일기 2013년 11월 13일
새벽의 독서
책을 번갈아 읽는 재미도 작지 않다. 새벽과 오전, 오후와 밤에 읽는 책이 다르다. 급하게 읽어야할 필요가 없을 때 다른 책을 번갈아가며 읽는다. 새벽은 고요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다. 소리내어 읽거나 책장을 넘기는 것도 조심해야한다. 아무도 간섭 받지 않고 깊이 사색에 잠길 때다. 쉽게 읽히는 책을 읽기에 새벽은 너무 소중하다. 철학책이나 신학서적 내지는 고전은 새벽에 읽는 것이 좋다. 밀폐된 공간에서 절대고독을 즐기며 읽는다. 광적 독서를 즐겼던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의 책 <독서의 역사>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을 빌려와 고백했다.
"나는 어디서든 행복을 추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그마한 책과 함께하는 좁은 구석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슬프게도 이 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가지고있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에 위의 문장은 없다. 번역상의 누락인지 아니면 다른 책에 기록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은말한 독서가 지닌 탁월한 행복을 켐피스는 알았던 것이다. 새벽에 읽는 독서의 맛이 바로 이런 것이다.
며칠 전부터 새벽에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는다. 읽는다기보다는 공부다. 독서를 통한 간접적 공부가 아니다. 책이 교과서가 되어 한 장 한 장 읽어가면 글쓰기를 배운다. 모르는 내용은 없다. 독서광들은 이미 모든 책이 거기서 거기라는 허망한 내용의 짜집기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읽는다. 왜일까? 다 아는 내용은 모른다는 말이다. 마치 자건거 타는 법은 알아도 탈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게 아니라면 밥에 비유해도 된다. 날마다 동일하게 먹는 밥, 그러나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밥은 생존과 밀접하게 결부된다. 독서도 이와 같다. 다 알아도 읽어야 산다. 문장강화의 내용은 어떤가.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다시 읽고 시키는대로 써본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출판된지 50년이 훌쩍 지나버린 유물이다. 글쓰기 교본의 기본은 가장 최근의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문법과 단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반세기를 짧지 않다. 약간의 현대어로 교정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낯설은 단어와 묵은 표현이 불편하게 뒤섞여 있다.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런데도 대가답게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가르침이 돋보인다. 저자가 지금 살아있어 현대어로 다시 저술한다면 좋겠다 싶다. 이 책도 아직도 문장을 배우는 이들에게 최고의 책 중 하나다.
내친김에 저자의 문장을 몇개 가져와 보자.
"문장이란 언어의 기록이다.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언어, 즉 말을 빼놓고는 글을 쓸 수가 없다."(17쪽)
"말은 청각에 이해시키는 점, 글은 시각에 이해시키는 점이 다르다. 말은 그 자리, 그 시간에서 사라지지만 글은 공간적으로 널리, 시간적으로 얼마든지 오래 남을 수 있는 것도 다르다."(19쪽)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용품이다."(33쪽)
"이 글을 보면 한마디의 형용마다 한 가지 동물의 모양, 성질이 눈에 보이듯 선뜻선뜻 나타난다. 수탉은 수탉, 족제비면 족제비다운 제일 적합한 말을 골라 형용했기 때문이다."(89쪽)
글쓰기는 결국 본성에 천착하여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본성을 꿰뚫는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독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좋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불과 2-3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깊이 사색할 수 있다.
새벽에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는다. 밑빠진 물독처럼 하루하루 부질없어 보이는 독서를 거르지 않는다. 새벽 고요한 시간 홀로 깨어 독서맛을 즐긴다. 누가 이 맛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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