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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여행을 권하다

샤마임 201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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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권하다

독서일기 / 2013년 10월 30일 종교개혁일에

 

월요일 저녁쯤은 도착할 것 같던 책이 화요일도 받아보지 못했다. 언제 오려나. 기다림이 사모함이 된다. 알라딘에서 오는 택배는 한 쪽 팔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갖고 오신다. 몸이 불편해 늦어지는가 싶어 기다렸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큼지막한 책박스가 책상에 놓여 있다. 어찌나 반가운지 안아주고 싶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저 정해진 의식을 치른다. 폰을 꺼내들고 카메라 앱을 실행한다. 박스와 내부 책 모습을 찍는다. 다음은 책상에 한권한권 쌓아올려 단체사진을 찍는다.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책 첫 장 내지 둘째 장에 사인을 한다. 그럼 책을 꺼내볼 차례가 된다.

 






문장강화 / 이태준 / 창비

장미의 이름 하 / 움베르토 에코 / 열린책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

C. S. 루이스 / 알리스터 맥그라스 / 복있는 사람

천국과 지옥의 이혼 / C. S. 루이스/ 홍성사

기독교적 숙고 / C. S. 루이스/ 홍성사

당신에게, 여행 / 최갑수 / 꿈의지도

하루키의 여행법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부산은 넓다 / 유승훈 / 글항아리


삶은 여정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방랑하는 존재로 삶의 의미를 정의 한다. 여행을 안주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 던지는 행위다. 여행이란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이별이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떠나 감 잡을 수도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간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여행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준다. 습관화된 삶은 시간을 통해 길들여 진다. 의식적으로 사색하지 않는 이상 생각의 틈이나 통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도 상황에 적응되어 필요한 것만 사용한다. 습관에 배여 하루하루가 고착되어 기계처럼 움직인다. 심지어 눈을 감고도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몇 시에 계란 장사가 지나가는 지도 감으로 알아챈다. 이것뿐이랴 생각까지 고착화되어 동일한 생각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간다. 상황이 정신까지 지배한다.


여행은 이러한 고착으로부터 일탈하여 생소함 그 자체가 된다. 길도 가는 곳마다 생각해야 하고, 걷는 걸음수도 어색하다. 화장실은 어디 있는지, 생활용품을 사는 곳이 어디인지 조차 알기 쉽지 않다.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바람에 몸에 무리가 온다. 사람은 보는 대로 만들어 진다. 그동안 익숙한 것에서 이별하여 낯설 것들과의 대면을 통해 새로운 정신이 주입되고 사유의 폭과 방향도 재설정 된다. 여행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여행에세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이점에서다. 고착된 삶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불과 몇 만원으로 생사를 걸고 다녀온 정글과 이글이글한 이탈리아 파스타를 먹지 않고도 로마를 여행할 수 있다. 독서가 주는 가장 큰 혜택 중의 하나다. 여행에세이는 값이 싸지만 비싼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물론 직접 다녀온 사람에 비할 수는 없으리라.


독서도 여행에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어떤 책은 재미없는 여행 같고, 어떤 책은 환상의 세계와 같다. 어떤 책은 뒷동산을 가볍게 오른 것과 같고, 어떤 책은 에레베스트를 다녀온 체험을 주기도 한다. 독서는 일종의 정신적 여행이다. 에레베스트를 오르기 위해서는 평지를 잘 걷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천히, 그리고 걷는 기술을 익혀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가벼운 뒷동산을 쉬지 않고 올라야 한다. 그 다음은 수백 미터의 산에 도전하고,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도 오르고 킬리만자로도 오를 수 있게 된다.


독서는 등산과 같아서 처음에는 그저 읽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 조금씩 어려운 책으로 바꾸어가며 읽는 속도나 사유의 방법과 폭을 넓히면 된다. 초기에는 수십 페이지도 읽기가 버겁지만 익숙해지면 수백페이지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 다양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산도 저마다의 특생과 길이 다르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소설도 있고, 시도 있고, 에세이와 철학과 논문도 있다. 소설에도 멜로와 전기, 추리 소설 등 다양하다. 한 가지 분야에 집착하면 생각과 읽기 습관이 고착되어 다른 분야는 손도 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구입한 책은 필요에 따라 구한 책들이다. 그러면서 통섭적 독서를 위해 다양한 분야를 선택했다.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옴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하]를 구입했다. 수주일 전에 서면 알라딘 서점에서 상권밖에 구입하지 못해 이번 참에 구입했다. 루이스의 책은 돈이 되는 대로 구입하고 있다. 정확하지 않지만 이번 책이 아마도 12번째 책이 되는 것 같다. 일반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은 아직 구입하지 못하고 홍성사와 신학관련 서적을 먼저 구입하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워낙 정평이 나 있는 작가이기에 두 말 없이 구입했다. 그의 책은 2002년 예담에서 번역 출간된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카잔차키스의 책들 보면 기독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최후의 유혹]과 더불어 기행문이 많다.


나머지 세권은 여행 관련 서적이다. 하루키의 책은 이름값을 하리라 생각해서 구입한 것이고 나머지 두 권인 신간이다. 특히 [부산은 넓다]는 지금까지 부산을 소개한 책 중 가장 탁월하고 학문적 가치가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책이다. 대부분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부산에 대한 공부를 더하려는 욕심 때문에 구입했다.

 

가을이다. 관광 철이라 이름도 모를 수많은 익명의 관광객들이 산과 들로 몰려다닌다. 피상적 관광에 피곤한 일상이 안타깝다. 좀 더 사물에게 천착하면 좋겠다. 깊이 시간에 침전되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각성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오히려 피곤한 관광보다 자숙하며 사유할 수 있는 독서여행을 권해 본다. 유럽도, 아프리카도, 남미도, 미국도, 심지어 동토의 땅도 커피숍 구석에서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니 말이다. 어떤가. 이번 참에 책을 들고 세계여행 떠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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