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강해
로마서 1장 강해
1. 개요
1장은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문안합니다. 특이하게 시작부터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후 자신이 로마에 방문 할 계획을 설명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로 아래 있음을 말합니다.
1-7절 문안과 복음에 대한 설명
종으로서의 바울
-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종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종이 아니라 예수의 종(Παῦλος δοῦ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입니다. 종이란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수동적이라는 것과 제한적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가진 사도적 정신의 중요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수동적이라는 의미는 바울은 자신의 계획과 뜻에 의해 마음대로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인이신 예수의 명령을 따라 움직인다는 뜻에서 수동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의미는 제한적입니다. 제한적인 얽매어 있다는 뜻도 있지만 통제를 받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예수의 종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지만 악이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제한적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도 수동적이며 제한적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음
바울은 자신을 사도(ἀπόστολος)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사도는 ἀπόστολος로서 명사입니다. 즉 직분을 뜻합니다. 신약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이 있지만 가장 우선시되는 직분은 사도(ἀπόστολος)입니다. 그런데 사도직은 자신의 자의나 누군가의 선출이 아닌 하나님께 ㅂ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합니다.
복음에 대하여(2-4절)
- 로마서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 로마서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은 자신의 소개를 마친 후 곧장 복음으로 나아갑니다. 헬라어 문장은 2절에 ‘복음’이 없으면 1절 후반부의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을 꾸미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2-4절까지의 복음에 대한 설명은 1절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꾸미고 있습니다.
복음은 약속된 것입니다(2절)
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예정된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작정을 통해 일어난 예정된 사건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복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율법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율법은 복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복음이 없으면 율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그 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아들은 대리인이며 상속자입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계명은 전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메시아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2편에서는 아들을 시온의 왕으로 삼으시고 세상을 통치를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아들은 다윗의 혈통입니다.
마태복음 예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 왕이자, 이스라엘의 왕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 선언하십니다. 다윗의 후손은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왕이란 뜻입니다.
그 아들은 부활했습니다.
부활의 사건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하나로 묶여져 있고, 진정한 복음은 속죄와 새로운 탄생을 예수 안에서 이루었음을 선포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의 복음의 결론은 ‘주 예수 그리스도(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역사적 시공 속에 살아계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리스도가 되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음까지 정복한 진정한 생명이심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사망에 대한 정복이 부활이며, 부활을 통해 예수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시간에 대한 종속이자 지배당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5절)
-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 복음의 핵심은 바로 ‘그로 말미암아’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곧 예수입니다. 바울의 모든 사역과 행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지도, 덜하지도 않고 예수와 함께 살아가려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6절)
- 로마서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로마교회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는 다른 나라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정복된 나라는 이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왕으로 섬긴 사단을 버리고 예수를 왕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축복(7절)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합니다. 은혜와 평강(χάρις καὶ εἰρήνη)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들은 평강이 임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8-15절 로마에 갈 계획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 로마서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에 아직 가보지 않은 바울에게 있어서 로마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을 복음의 확장성에 있습니다. 오순절 사건을 통해 수많은 순례자들이 복음을 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들어가 다시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이들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확장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 로마서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아들의 복음은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으로서 제시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위해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안에서 서로 하나이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지체들입니다.
로마에 갈 계획
- 로마서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 로마서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 로마서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 로마서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몇 번을 갈 계획을 세웠지만 번번히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렇게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라는 단서를 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령한 은사
문자적으로하면 '영적인 선물'(χάρισμα - πνευματικὸν)입니다. 무슨 특이한 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복음이나 그와 관련된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 또는 '영적인 축복'(더글라스 무)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영적 선물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어떤 은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12절에서 '피차 안위함'을 얻는다는 표현과 잘 어울립니다. 로마교회가 바르게 세워져 가는 모습을 보며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죠.
내가 빚진 자라
-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로마서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빚진 자로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빚진 자가 아니라 대상이 헬라인과 야만인과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일종의 복음 전달의 의무이자 충성에서 발로한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로마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많이 시들해졌지만 이전에는 로마서를 '재복음화'라고 표현하곤 했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에 다시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다시 복음 전하는 것은 '남의 터'를 닦는 것이라는 바울식 표현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나는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
-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16-17절은 로마서 중의 로마서라 불러도 될 만큼 중요한 구절입니다. 바울은 먼저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당시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헬라철학의 지배 하에 있던 로마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육체의 부활을 열등한 종교로 치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은 복음의 핵심인 부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차정식은 '복음의 핵심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정체를 부인하는 데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하나님의 의'는 종교개혁의 시초가 된 구절이며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며, 믿음은 그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의도하신 것입니다.
18-32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복음에 대한 설명을 끝낸 바울은 온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설명한 후 복음의 필요성을 역설해 나갑니다.17절의 '하나님의 의'가 3:21에서 '하나님의 한 의'로 다시 소개됨으로 온 인류가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설명해 나갑니다. 18-32은 그 서두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
-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진노의 이유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은 복음을 막는 자들입니다. 18절은 이방인을 듯하는 듯하지만 유심히 읽어보면 유대인을 향한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먼저 이방인들에게 불의라는 표현은 어색합니다. 또한 경건도 신적인 것입니다. 온 인류를 향한 것이지만 상당히 '유대적'이라고 주장한 더글라스 무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결국 불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치 않는 삶입니다.
- 로마서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
특별계시가 아닌 자연 계시로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명백한 계시에 대한 부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속'은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마음들
-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생각이 허망하여진 것을 동일시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은 곧 마음의 어두워짐으로 이어집니다. '허망' 마타이오스는 '헛된' '텅빈'의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삶은 무의미함을 강조합니다.
- 로마서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인간의 무지는 스스로 지혜있다 여기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지혜롭게 되기 위하여 저질렀던 그 죄가 모든 인류를 지배합니다. 인간이 가진 지혜는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빠져 듭니다. 어리석다는 에모란테는 소금이 맛을 잃다 모란테와 어근이 동일하며 기능을 상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리석음은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하려는 바울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 로마서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상숭배에 대한 전형적인 특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꿉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암시합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뜻하며, 창조주를 피조물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우상 에이콘은 구약의 첼렘 데무스의 이미지, 모양, 형상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버려진 마음들
- 로마서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저주는 강제적 징벌로 시작되지 않고 방치로 시작됩니다. 가장 무서운 벌이며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심으로 그들의 죄악을 발전시킵니다. 타락은 영적 퇴행이며, 창조의 법칙에 위배된다. 바울은 '서로 욕되게' 한다고 표현한다.
- 로마서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4절을 추가 설명 또는 이유를 소개한다. 진리-거짓 것, 하나님-피조물을 경배. 악인들은 참된 것을 거짓것으로 바꾸고, 창조의 원리를 창조의 거역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 로마서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4절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세밀하게 그린다. 욕심에 버려둔다. 이번에 동성애를 지적한다. 욕심은 절제되지 못한 마음이다. 절제는 곧 그들이 마음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때 절제하는 것이다. 생각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돌이킬 수 없는 악이다.
- 로마서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는 동성애가 유행했다. 심지어 도덕적으로 사상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이들도 동성애를 즐겼다. 동성애는 당시 매우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동성애에 분명히 '악'이라고 선언한다.
- 로마서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싫어하다 '도키마조'는 테스트하다 시험하다 시험하여 증명하다는 뜻이다. 제임스 던은 이 구절을 '인간들이 하나님을 생각해보고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에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제임스 던, WBC로마서)이로 풀이한다. 합당한 해석이다. 인간은 그냥 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전혀 불필요한 존재로 '결론' 낸 것이다. 그들은 결국 합당하지 못한-적합하지 못한 상태(불량품)로 전락 한다.
- 로마서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그들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로 가득 찬다. 시기와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이며 창조의 목적과 역행한다. 탐욕 플레오넥시아는 문자적으로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말한다. 교만은 수동적으로 불만이며 적극적으론 선을 넘어선 탐욕으로 나타난다.
- 로마서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로마서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배약은 언약을 배신하는 것이다. 배신은 신실하지 못한 것이다. 즉 믿음 없음을 말한다. 그는 배신을 밥 먹듯이 한다. 무자비는 사랑과 동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과 반대다.
- 로마서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을 법정에 기소하는 형태를 취한다. 하나님의 법정일 것이다. 악이 무지인 동시에 의도적인 것은 그들이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형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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