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7-25 주님을 따르는 삶
마태복음 4:17-25 주님을 따르는 삶
4:17-25
1. 본문 읽기
- 마태복음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 마태복음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마태복음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마태복음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 마태복음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다 -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 마태복음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마태복음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강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전에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내용입니다.(3:2)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증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심으로 돌이켜야할 때가 된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마음과 생각과 더불어 행위까지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인격적 변화가 없다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긴박성을 말합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지체합니다. 미루고 또 미룹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왔기 때문에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려 합니다.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서 제자들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찾아 다니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관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실체입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십니다. 우연히 그곳에 거니신 것이 아니라 자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형제를 만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예수님의 등장은 갑작스럽지만 예수님은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갈릴리 해변은 제자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뜻밖의 장소나 사역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기독교는 현실적 종교입니다. 몽상이나 환상의 어느 무엇이 아닙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 오가는 길목, 행하는 습관적 행위의 장소에서 소명이 일어납니다.
“내가.. 되게 하리라.”
소명은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되는 것이며,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소명은 주님께서 알아서 하며 우리는 피동적 존재로 전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되게’ 속에는 삶의 본질의 바뀌는 것이며, 존재의 의미가 새롭게 되는 과정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빚으신 것처럼 주님은 택하신 자들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빚어 가십니다. 그러나 빚어 감은 ‘나를 따라오라’는 명령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본질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본질과 방식은 같이 일어나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심적 회심은 삶의 돌이킴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되게'라는 말은 변화를 말합니다. 비록 하나님은 현실적 삶에서 우리를 부르시지만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름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시고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소명은 삶의 우선순위를 변화시킵니다.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 기존의 선정 기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먼저 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않고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신자들의 원형(原型)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부르심으로 소명을 이루게 하시지만, 제자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 없이 제자 되지 못하고, 수고 없이 거룩하지 못합니다.
소명의 궁극적 목적과 방식은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표이고, 방식입니다. 삶이 모호하고, 길을 잃을 때 우린 항상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두루 다니사”
예수님은 한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온 갈릴리’를 반복적으로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세 가지 양태를 지닙니다. ‘가르치시며’(디다스콘) ‘전파하시며’(케륏손) ‘고치시니’(데라퓨온). 가르침은 교훈을 뜻하며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대화를 포함합니다. 이에 비해 전파는 일방적이며 강력한 권위를 가진 불변의 진리를 뜻합니다. 고치시는 것은 처음 상태로의 회복이며 돌이킴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탕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길을 잃었고, 걸어갈 힘도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오도록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소명을 이루어 가는 소명 자들입니다. 대가를 지불하며 예수님을 따라 함께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시는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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