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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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
역사는 역사일뿐이다.
설교란 무엇일까? 조각모으기 퍼즐 맞추기는 아닐까?
주님께서 정말 날 위해 죽으셨다면?
주님께서 정말 날 위해 고난 받으셨다면?
넌 그럴 수 있어?
주님께서 정말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면
넌 그럴 수 있어?
부활,
칙칙한 언어, 죽은지 오래된 사어처럼 아무도 모르는 비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고고학자들이 떨어져 나간 돌판들과 갑골문자들을 주섬주섬 챙겨 이곳 저곳 끼워 맞추어보는 퍼즐 맞추기 뭐 그런 것처럼 신앙생활을 생각하지는 않을까?
박물관에 세워 놓은 뼈만 앙상한 공룡의 잔재처럼 뭐 그런 것처럼 신앙생활을 생각하지는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오래된 팝송을 부르는 것처럼 신앙도 추억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다 떨어진 투구와 창고에서 꺼내온 녹슨 칼을 집어들고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는 아닐까?
죽은지 오래된, 말라버린 피를 보며 이곳이 우리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야 라고 하면, 갈보리 언덕에서 뽑아온 십자가를 모셔놓고 날마다 그 죽음만을 묵상하며 마치 고상한 신앙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손을 빌어준 빌라도를 원망하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지는 않을까?
마치 그것이 절대적이고 전통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여튼 부활의 아침, 그런 것들은 버려져야만 하는 무의미한 쓰레기들임을 알고는 있겠지.
하기야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한단 말일가?
말도 안되지.
이제 칙칙하고 케케묵은 언어를 버리자.
힘있고 역동적인 창조적 언어를 사용하자.
부패한 우리 안에 어떻게 생명의 언어를 불어 넣을까? 고민이야 되겠지만 오직 단 하나의 방법은
바람을 크게 내쉬며 말씀하신대로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는....
부활로 인해 사장된 일상이 비범한 일상이 되리라.
부활은 새로운 언어를 요구한다.
부활은 새로운 생각을 요구한다.
부활은 새로운 결단을 요구한다.
부활은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부활은 증명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 안에 부활신앙이 있다면 부활이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 여러가지 어려움과 반대에 부딪혀 힘들어 했다.
시무룩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내가 상복을 입고 울고 있지 않는가?
"아니 여보, 왜 상복을 입고있어요? 누가 죽었소?"
"네, 하나님이 죽었어요"
"하나님이 죽었다고?"
"그래요, 만약 하나님이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근심에 쌓여 시무룩해 질 수 있겠소?"
그랬다.
하나님께서 죽은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삶이 없다.
그러니 예수님의 부활을 누가 믿겠는가?
우리 안에 부활의 삶이 없다면 누가 주님의 부활을 증명한단 말인가?
2011년 4월 19일 화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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