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 마이클 플로스트, 앨런 허쉬 / 김선일 옮김 / SFC/ 2015년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마이클 플로스트, 앨런 허쉬 / 김선일 옮김 / SFC/ 2015년
믿음은 불가피하게 모험을 요구한다. 모험 없는 믿음은 가짜다. 그리스도인은 타락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생존(生存)만이 전부가 아니다. 저마다 생존방식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르게 요구 받는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며,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거류자이며 모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방식을 소유한다.
“하나님에 관한 더 깊은 지식과 경험에 들어서는 일은 분명 무한한 미지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서는 모험과 같다.”는 앨런 허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믿음이 모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이 모든 이미지는 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운명이다. 교회의 머리시며,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신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모험의 원형(原形)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의 생존방식과 삶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모험을 논하기 전에 먼저 신화 연구의 전문가인 조셉 캠벨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캠벨은 여러 나라의 신화들을 연구하면서 공통분모를 발견한다. 그는 이것을 ‘원질신화’(mono-myth)라고 부른다. 열두 단계는 이렇다.
1.평범한 세계. 2.모험을 요구받다. 3.요구를 거절하다. 4.조언자를 만나다. 5.첫 문턱을 넘어서다. 6.시험들. 동맹들. 적들. 7.접근. 8.시련. 9.보상. 10.돌아오는 길. 11.부활하는 영웅. 12.영약을 가지고 돌아온다.
좀 더 요약하면 부름-여행-귀향의 세 단계를 걸친다. 부름과 귀향은 원래의 세계다. 신화의 세계는 단지 신화일 뿐일까? 아닌 것 같다.
“사실 신화의 구조를 식별하면서 조셉 캠벨은 모든 위대한 이야기들이 드러내는 인간의 심리적 열망을 포착한 것이다. 이것은 구원을 소원하는 것으로, 뭔가 더 위대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악에게 승리하는 건의 일부가 되는 일과 같은 것이다.”(172쪽)
신화 본질은 여행을 통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예수의 구원사역과 전적으로 닮아있고, 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 즉 캠벨의 신화 구조는 ‘영웅의 여정과 바울의 이야기, 모세를 부르신 일,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소명, 또는 열두 제자 이야기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병행되는 구절들이 있다’(173쪽) 것이다.
믿음은 모험을 불가피하게 요구하고, 모험은 곧 선교다. 교회는 나그네이며, 여행자이다. 곧 되돌아갈 고향이 있다. 그러나 아직 갈 수 없다 소명을 이루지 못했다. 소명을 곧 모험이다. 믿음의 삶은 모험하는 것이며,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이 땅에서 안주하려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모험을 거부한 왕국을 향하여 거침없는 저주를 퍼부었던 이유는 믿음이 가진 모험이란 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전복적인 왕국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을 타파하며, 영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완악한 마음들을 깨뜨리고, 정의를 주입한다. 낯선 땅의 순례자들과 같은 우리를 위대한 여정으로 부르셨다. 즉 위대한 모험가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
출애굽은 거짓된 하나님의 나라인 애굽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세의 모험은 가짜왕 바로에게서 나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곧 안정을 추구하며 또 다른 애굽이 되어 버린다. 현대 교회는 어떤가? 예수께서 가신 믿음의 모험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 평안을 육신적 평안으로 착각하여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가? 프로그램을 돌리고, 전도 축제를 열면 진정한 교회가 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6장에서 ‘교회와 교회의 사명을 다르게 생각해보기’란 부제를 달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곳에 매트 카터라는 리더의 이야기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매트 카터와 크리스 톰린은 캠퍼스 젊은이들을 전도하게 위해 2003년에 교회를 개척한다. 톰린의 탁월한 찬양인도로 인해 교회는 활기가 넘친다. 6년 만에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어 5500명에 이른다. 바로 이 때 매트 카터는 암 진단을 받는다. 카터는 몸을 회복하기 위해 긴 휴가를 떠난다. 휴가 도중 카터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찬양과 예배 중심의 교회 방식을 회개하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그가 돌아와선 했던 사역은 찬양이 아니라 ‘도시의 빈곤한 사람들에게 다가’(242쪽)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이웃을 재발견 하는 일’(281쪽)이야 말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의 모험’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7장이야말로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성장이 아니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멋진 교양인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교회의 목적은 이웃을 재발견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선교적 삶은 이웃을 변혁시킨다. 이웃이 단순히 교회출석자들의 공동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공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의 지대에 합류한 것이다. 우리는 일단의 사람들이 선교의 모험과 위험을 감수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마을로 더욱더 깊이 인도되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이웃 사랑의 모험에 착수하도록 더더욱 준비되어야 한다.”(283쪽)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곧 예수는 왜 성육신하셨는가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 선교는 믿음의 모험을 요구한다. 세상을 변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사랑으로 이웃을 품어야 한다. 이웃이 교회 성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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