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확신, 종말론적 관점에서의 성격적 근거
믿음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확신인가: 종말론적 확신의 성경신학적 근거
기독교 신앙은 미래를 향한 믿음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하며, 믿음의 본질이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적 실재에 대한 신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낙관주의나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확실한 소망이며, 이는 성경 전반에 흐르는 종말론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으며, 미래는 우리의 경험 영역 밖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뚫고 들어가는 본질적 질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문제를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관점과 하나님 중심의 신학으로 풀어내며,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약속,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성취를 근거로 미래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합니다. 본 글은 이 주제를 성경신학적 틀과 함께 교부신학, 중세신학, 종교개혁과 현대 신학자들의 통찰을 통하여 종말론적 관점에서 깊이 탐구하고자 합니다.
믿음과 종말: 성경 안에서의 미래 확신의 구조
성경은 처음부터 종말론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완전함이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예언과 언약의 형태로 시작되었음을 기록합니다. 이 구속 계획은 단지 과거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장차 회복될 새 창조를 향해 진행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이러한 구속사적 여정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에 대한 신뢰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장래의 기업으로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8), 그 후손인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브리서 11:27),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광야를 지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고난을 뛰어넘는 미래의 확신에 기반하며, 그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러한 구속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며, 이것이 바로 미래의 약속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보증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20)로 선언하며, 그분의 부활이 신자의 부활의 보증이자 표지임을 밝힙니다.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직관이나 예감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구속 사건의 실재에 근거한 합리적 신앙입니다.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에서의 믿음과 미래
교부시대 신학자들은 믿음을 인식과 지식의 질서 속에 위치시키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하나님의 도성』과 여러 주석서에서 믿음을 “이해를 위한 토대”로 정의하며, 믿음은 단지 미지의 미래를 붙드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인식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신자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해 있고, 그 약속은 이미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으며, 그 성취를 통해 우리는 장차 도래할 완성된 나라를 미리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믿음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신뢰하는 덕”으로 정의하며, 미래에 대한 신자의 확신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객관적 실재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믿음을 ‘불완전한 지식’이라고 부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지식’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논리적 기초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중세신학은 믿음을 직관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이성적 수용으로 이해하며, 미래에 대한 확신은 계시를 통해 얻어지는 통찰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여전히 믿음의 본질을 미래보다는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고, 종말론적 구조보다는 교회의 현재적 안정성과 교리적 구조를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개혁신학은 이 한계를 지적하며, 믿음을 성경 전체의 종말론적 구조 안에서 재조명합니다.
종교개혁 신학: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 속에서 생긴 확신
종교개혁은 믿음을 단순히 지식이거나 감정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 신뢰로 보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는 것”이라고 하며, 이 약속은 현재에 이루어졌고 장차 더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포함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로마서 1장 17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통해, 신자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미래에 대한 확신은 신자의 주관적 상태에 달려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된 사역에 기초합니다. 이 점에서 믿음은 스스로 확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에 대한 수용입니다. 이는 신자의 믿음이 항상 불완전하고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함을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인치시는 성령의 사역이 감싸안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믿음을 “하나님의 자비와 약속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신뢰”로 정의하며, 믿음이 전인격적인 ‘마음의 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단순히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붙잡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서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라는 말씀을 주해하면서, 소망은 본질상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것이며, 그 소망은 믿음을 통해 현재적 확신으로 전환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칼빈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내적인 인침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믿음을 주시고 그것을 견고히 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이 신자의 내면에서 살아 있는 실제로 역사하게 하십니다. 이로써 신자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말씀 안에서 확정된 하나님의 약속을 ‘지금’ 신뢰하고 그 실재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 개혁주의 신학: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의 믿음의 실재
20세기 개혁주의 신학은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종말론 구조 속에서 믿음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게하르두스 보스(Geerhardus Vos)는 종말론이 성경신학의 중심이며, 믿음은 이 종말론적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으며,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성령을 통해 신자 안에 실제로 임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현재 속에서 경험하고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은 “믿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미래의 생명에 대한 실제적 참여”라고 설명하며, 믿음은 단지 현재를 넘어서서 장래의 부활에 대한 실질적인 접속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현재 속에 가져오시며, 믿음은 이 생명에 대한 응답입니다. 신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날을 기다리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미래의 생명을 현재 속에서 실재적으로 누리는 자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종말론적 현실에 참여하는 통로입니다. 신자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의 삶 속에 받아들이며, 그 약속의 실현을 확신합니다. 이 확신은 심리적 안정이나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성령의 조명,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에 기초한 신학적 신뢰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결코 주관적 산물도 아니고, 감정의 결과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세워진 신적 은혜의 응답입니다.
결론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믿음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질문을 단순한 감정적 응답이나 철학적 설명으로 넘기지 않고, 성경 전체에 흐르는 구속사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답변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성령의 임재를 통해 이미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미지의 미래를 무작정 기대하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역사적 성취, 그리고 그 성취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 확신을 갖는 신적 은혜의 응답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기반하고, 성령의 사역에 의해 자라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지며, 그 본질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실재에 대한 현재적 참여입니다.
믿음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지금 이 순간 현실로 살아내는 능력이며, 그 힘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은혜에서 나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하나님 자신이며, 그의 언약, 그의 말씀, 그의 성령, 그리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믿음은 영원까지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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