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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 고전15:29-34

샤마임 201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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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고전15:29-34

 

지금도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조상들의 생각은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었다는 말보다는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돌아가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어디론가 가셨다는 것인데, 신앙을 떠나서 모든 인류의 생각 속에는 현세가 전부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선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설에도 보면 사람이 죽으면 황천이란 곳에 가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상벌을 받고 천당과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집트 장례예식에도 죽음은 원래 영혼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서 귀족이상의 사람들은 사람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배에 실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 배를 타고 음부의 바다를 건너 영혼들이 사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의 손에 몇 푼의 동전으로 쥐어 주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가는 여행으로 보았던 것이죠. 실제로 우리나라 고대 무덤에서도 동전이나 은전등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 다른 세계로 가기위해 여행할 때 사용하는 노잣돈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즐겨 부른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입에 배삯으로 오볼로스 은화 하나를 물려주면 뱃사공 샤론은 죽은 이를 조각배로 싣고 황천강을 건너게 해준다네.”

그렇습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더욱 놀라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다’고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바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한 번은 죽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정말 단순한 하나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신앙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날마다 위험을 감수하며, 고난을 선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맹수와 더불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12-17절까지를 살펴보아도 죽은자의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의 얼마나 불쌍할까요?

그러나 부활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고 (   ) 성도님은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날 것이며,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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