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무소유>에서 찾아낸 책 읽기 몇 가지
법정의 책 읽기
법정의 <무소유>에서 찾아낸 책 읽기 몇 가지
2002년 2월 15일은 무슨 요일일까? 예전 같으면 손가락을 펴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요일을 맞춘다. 친구가 가르쳐 줄 때 정말 신기했다. 아직도 난 그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아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기도 하고 스마트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력 앱을 다운받아 설치면 수백 년 전으로도 돌아가 준다. 편리함이 어리석음으로 가는 첩경이다. 그래서 <독서의 역사>에 보면 기록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잔뜩 기록해 두었다. 기록해 두면 암송하지 않으니 잊어버릴 확률도 높다는 계산인 게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서양 속담에 기억보다 잉크 방울이 더 선명하다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하여튼 그날, 2002년 2월 15일은 화요일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샀던 날이다. 책을 사서 습관처럼 날짜와 장소를 기록해 둔다. 법정의 독서에 대한 단상이 잠깐 소개 되어 있다.
1.
독서는 취미
단도직입으로 법정의 글을 인용하면 이렇다.
“독서가 취미라는 학생, 그건 우습다. 노동자나 정치인이나 군인들의 취미가 독서라면 모르지만,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 본업인 학생이 그 독서를 취미쯤으로 여기고 있다니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하기야 단행본을 내 봐도 기껏해야 1,2천 부 밖에 나가지 않는데, 어느 외국 백과사전은 3.4만 부도 넘게 팔렸다는 우리네 독서풍토이긴 하지만.”(19쪽)
책을 붙들고 씨름해야할 학생이 독서를 취미쯤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 모두의 이야기다. 선진국의 일 년 독서 분량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2005년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NOP월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독서 시간은 세계 30개 조사 대상국에서 최하위다. 1위는 인도이며 일 주 일에 10.7 시간을 독서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3.1시간으로 1/3수준도 안 된다. 작년 직장인이 책을 읽을 읽는 사용하는 돈이 고작 1만 원 정도인데 잡지까지 포함한 가격이다. 독서는 비단 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 학생이 독서를 취미로 여기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참고로 법정의 위의 글은 1973년에 쓴 글이다. 40년이 흘렀는데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2.
최초의 분서 사건
분서(焚書)는 책을 태우는 행위다. 애서가로서 분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며 신성모독과 같다. 법정에게 분서 사건이 있다. 출가하여 지리산 쌍계사에서 은사 효봉 선사를 모시며 안거(安居)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되면 좌선하여 정진하고 양식이 떨어지면 탁발(托鉢)해 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례장에 갔다 오는 게 전부다.(64쪽)
어느 날 장에 갔다 오다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를 사서 읽게 되었다. 취침 시간에 고방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놓고 정신없이 읽는데 방문이 열렸다. 효봉 선사가 보시고 단박 태워버리라고 하신다. 그걸 보면 ‘출가’가 안 된다고.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웠다. 아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를 터득한다.
“그전까지 나는 집에 두고 나온 책 때문에 꽤 엎치락뒤치락 거렸는데, 이 분서를 통해 그러한 번뇌도 함께 타 버리고 말았다……. 만약 그때 분서의 일이 없었다면 책에 짓눌려 살았을지도 모른다.”(65쪽)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그러나 때로는 영혼의 족쇄가 될 수 있다. 독서광(讀書狂)인 나로서 법정의 말이 이해가 된다.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는 키케로의 말도 있지만, 텅 빈 방에 책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3.
여행의 의미
승가(僧家)에는 행각(行脚)이란 여행이 있다. 어떤 목적지가 있거나 이루어야할 숙제도 없다. 그냥 떠돌아다닌다. ‘나그네 길에서’란 글로 자신의 행각에 대한 미를 풀어냈다. 몇 문장을 가져와 보자.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다……. 구름을 사랑하던 헤세를, 별을 기리던 생텍쥐페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낯선 고장을 헤매노라면 더러는 옆구리께로 허허로운 나그네의 우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62-63쪽)
여행은 자기를 버림이자 다시 자기를 찾음이다.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준다. 또한 설렘도 있다. 익숙해진 일상은 자칫 자신을 잃고 망각하게 한다. 여행은 결국 자기를 찾아감이다. 승가(僧家)의 행각(行脚)은 또 다른 읽기인 셈이다.
4.
독서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어릴 적 초등학교 때부터 강제된 편견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에 구석진 방에 틀어 박혀 책만 읽는 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울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의견에 법정도 기꺼이 동의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못 박아 놓고들 있지만 사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이다. 날씨가 너무 청청하기 때문이다.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서 책장이나 뒤적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리타분하다. 그것은 날씨에 대한 실례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다. 아무 때고 읽으면 그때가 독서의 계절이지.”(67쪽)
책에 미쳐 사는 나도 가을 독서는 힘들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턱내고 아무 곳이나 가고 싶다. 굴레가 되어버린 일상을 벗어나 미지의 지정학적 장소로의 이동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리고 하늘과 산을 보라. 사파이어만큼이나 진한 하늘과 에메랄드만큼 아름다운 산을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인가. 가을은 책보다 여행이다. 적어도 가을 둑길은 걸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고인이 된 법정도 이미 체득한 일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건 다른 해석의 틀을 가진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이야기는 잇닿아 있다. 세상을 버리지 못한 십자가에서 죽은 집착의 광기가 불교의 무소유를 허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법에서 닮았다. 책에 대한 솔솔한 이야기가 마음에 가을바람처럼 산들 거린다. 무작정 집어든 법정의 옛책에서 독서의 지혜를 얻어 간다. 이것도 소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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