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실패
베드로의 실패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 걸림이 되고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을걸 괜해 했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베드로의 실패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혔을 때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뒤따라갔지만 결국 예수님을 부인할 뿐 아니라 저주까지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닭 울음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하게 됩니다. 처절하게 무너진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기간을 보내면서 주님의 고난을 더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피면서 그의 실패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후대의 교인들은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별칭까지 지워주었습니다. 또한 복음서를 가만해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아낀 세 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중에 한 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얼마나 아끼셨을까요? 2천 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참으로 사랑하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처음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와 형제인 안드레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들이었고, 자신의 삶을 다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을 보시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는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보시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시는데 그것은 바위라는 뜻의 히브리어 ‘페트라’인데 이것을 게바 또는 베드로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자 ‘너는 반석이다’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우리는 베드로가 얼마나 돌발적인 존재인지 복음서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이 나를 누구랴 하느냐’질문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주님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십니다. 이 때 베드로가 즉각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죽이실 것을 처음으로 예언하십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았을까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장면으로 가봅시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끝나고 예수님은 산에 홀로 조용히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건너편으로 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밤이 깊은 때에 폭풍이 몰아쳐 옵니다.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기도를 마치시고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제자들에게 저 앞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놀라 ‘유령이다’라고 소리칩니다. 그자 주님은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가 아는 예수님이면 나를 명하여 바다 위를 걷게 하소서’ 주님은 곧장 ‘오라’ 하십니다.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발을 내 딛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물위는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람입니다. 누가 베드로를 따할 수 있을까요? 정말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존재나 할까요? 제가 보기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오늘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이야기로 가 봅시다. 최후의 만찬이 진행되던 목요일 저녁, 예수님을 세족식을 거행하셨고,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참을 거행하시면서 여기에 있는 너희들은 다 나라를 버릴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 또 가만있지 않고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주님은 또 베드로의 결의를 무참히 꺽어 버리십니다.
마 26: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또 대답하십니다.
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의 결심이 아닙니다. 그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했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예수님을 따라갈 것이라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베드로의 실수, 아니 실패는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예수님을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고,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께서 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는다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을 올 때 검을 빼어 들어 말고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 두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조용이 멀리서 뒤따라갔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뜰에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베드로는 어떤 말을 들었을까요?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햐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메시아라면서 세상을 구원한다더니 꼴 좋다. 이제 죽은 것 밖에 남지 않았네요.
예수님의 실패와 좌절,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죽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는 한 이 있더라고 예수님은 죽어서는, 실패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과 실패에 대해 말씀하셨고, 여기 이 사람들도 예수님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는 그들의 대화에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그들에게 반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73절을 보면 그들이 베드로를 향해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들과 어느 정도 대화를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갈릴리 사투리가 그들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기겁을 하면서 저주하면서 맹세하며 ‘나는 그를 모른다’하며 자신의 실패를 세 번이나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더이상 그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주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곳이 베드로의 끝입니다. 베드로의 결심의 끝, 그곳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리처드 보컴이란 학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이지에 대한 베드로의 잘못된 이해,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 자신에 대한 모든 환상이 이제 산산히 부서졌다. 바로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놀라운 헌신 비로소 진정한 제자도로 거듭나는 순간이다.(71쪽)
바로 이겁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곧 자기 자신에의 환상에 대한 실패이며, 그를 실패를 통해 베드로는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는 실패와 좌절 또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때, 실패하고 좌절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시작되었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실패한 자이 모습이어야 하는가? 왜 예수님께서 무능하게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가?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는 깨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없으며,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패하는 하나님께 기회이며, 우리의 깨어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게 되는 기적의 순간입니다.
*이 설교는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위해 리처드보컴, 트레버 하트의 <십자가에서>(터치북스)의 책을 주로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책의 서평은 아래의 글에서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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