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복수)하시는 하나님
복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복수하신다. 하나님이 보수하신다.
복수는 정의에 대한 공의이다. 정의는 개인간의 사적인 공평성을 말한다면 공의는 개인을 넘어서는사회적 원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보복하는 것은 공의다. 죄는 궁극적으로 정의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위한 공의를 실행 하신다. 즉 심판하신다. 보복하신다.
신32: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복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악인들의 손아귀에 뺘져들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찾는다.
사 63: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원수 갚는 날은 때가 있다는 말이다. 아무 때 하지 않으신다. 죄라고 다 징계하지 않는다. 죄가 자랄지, 사라질지 기다리신다. 죄가 자란다면 그는 악인이다. 자라지 않으면 실수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의 특징은 죄가 자라는냐 돌발적으냐의 차이기도 한다. 죄가 자란다는 말에는 더 많은 악이 일어나고 더 많은 피해가자 생긴다는 말이다. 땅이 많이 흘리고, 그들의 손에 피가 많아지면 하나님일 보복하실 때가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할 수 없게 하셨다. 복수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복수는 공의다. 이는 이, 눈은 눈, 생명은 생명이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다. 이것이 공의다.
그러나 개인이 복수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나의 빰을 한 대 때리면 한대로 보복하지 않는다. 열 대 백 대를 때리는것이 사람의 심리다. 하나님은 하나는 하나로 만족하라 하신다. 그것은 법으로 하는 것이다. 엄밀하에 말하게 눈은 눈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주어야 한다. 도둑질하면 네 배를 보상하듯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공의는 이 하나에 이 하나가 아니다. 두배, 네배 다섯배를 갚도록 한다. 이것이 공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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