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팬데믹,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성경과 팬데믹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 친천과 재물과 명예를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박종호 노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종교개혁주일이면 항상 부르는 이 찬양은 종교개혁자였던 마르틴 루터가 1529년에 작사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의 어둠을 뚫고 개혁의 여명이 밝아올 때 루터는 담대하게 자신의 모든 생을 종교개혁에 바쳤다. 그는 이 땅 가운데 생명의 능력이 요동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장엄함과 비장함이 휘감는 이 찬양은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애창곡이다. 하지만 이 찬양은 또 다른 숨겨진 배경이 있다고 한다.
19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테베르크 성문에 95개조를 붙이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개혁의 바람이 불처럼 일어났다. 개혁의 바람은 루터의 삶을 구렁텅이에 빠뜨렸고, 극단적 개혁자들의 오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943년 콘스탄틴노플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서유럽까지도 혼라의 도가니로 몰아 놓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군대는 1520년 베네치아를 공격했고, 1521년에는 발칸반도를 점령했으며, 1526년에는 헝가리 수도 ‘부다’까지 점령한다. 루터가 있었던 비텐베르크라고 안전할리 없었다. 루터는 시편 46편을 통해 피난처요 환난 중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묵상한다. 그리고 지은 시가 ‘내주는 강한 성이요’이다.
전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이 루터의 종교개혁 중심지에 비텐베르코에도 찾아온다. 프레드릭 선제후는 비텐베르크를 봉쇄하고 루터로 하여금 그곳에서 나오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루터는 남기로 결정한다. 1527년 루터는 몸은 결코 좋지 않았다. 몇 번이나 쓰러졌으며, 설교 중에 현기증이 일어나 설교를 중단하기도 했다. 루터는 멜란히톤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나는 한 주 이상 죽음과 지옥 가운데서 보냈소, 내 온 몸은 고통으로 불탔으며 아직도 나는 떨고 있소.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버림받아 나는 낙담하고 신서모독까지 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였고, 그러나 성자들(친구)의 기도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인자를 베푸셨고 내 영혼을 저 아래 지옥에서 건져내 주셨소.”(159쪽)
루터는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루터는 피신할 수도 있었지만 남기로 선택했고, 자신의 집을 환자들을 위한 병실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치사율 75%라는 두려운 흑사병이 창궐한 시대에 말이다. 바로 그때 루터는 가톨릭과 오스만투르크,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적들 속에서 펜을 들고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 작곡했던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면서 많은 학자들이 기독교와 팬데믹에 관한 책들을 출간해왔다. 가장 유명한 책은 비아토르에서 출간된 톰 라이트의 <하나님과 팬데믹>일 것이다. 하지만 감히 이 책과 비교할 수 없다. 김지찬 교수의 <성경과 팬데믹>은 지금까지 코로나19와 팬데믹 관련 서적 중에서 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음과 넓음이 스며있다.
1부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재앙과 전염병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출애굽 시대 많이 일어났던 전염병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와 연관이 싶다. 인구조사로 인한 전염병(3장), 레위인의 성막 봉사와 전염병(4장), 언약의 자기 저주와 전염병(5장), 전염병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관계(6장)까지 다룬다. 그뿐이 아니다. 저자는 13장까지 연이어 성경 속에 나타난 전염병의 특징을 조밀하게 파헤친다.
성경은 모든 질병 특히 전염병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임을 전제한다. 히브리 민족이 아닌 애굽에 내린 재앙뿐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언약의 저주’(73쪽)로서 내린다. 저자는 이것을 ‘언약의 자기 자주’(74쪽)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전염병의 저주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전염병 사태를 더듬어가면서 교회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설명한다. 대부분을 루터의 종교개혁에 집중한다. 루터는 흑사병으로 인해 피신한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으며, 남겨져 있는 것을 최선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루터는 요한 헤스가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은 ‘우리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가?’로 답한다. 저자는 루터의 공개서한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팬데믹 상황 속에서 목회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루터는 흑사병이 하나님의 형벌이므로 피하지 말고 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을 동의하는 동시에 반박한다. 루터는 먼저 그들을 ‘죽음과 죽음의 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166쪽)로 칭하며 칭찬한다. 하지만 그로인해 피신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형벌이라고 하여 집 밖으로 나가거나 돕기 위해 뛰어나가서는 안 됩니까? 깊은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으로 자신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심판에 굴복해야 합니까?”(166쪽)
그렇다, 루터는 남는 것과 피신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할 것이냐에 중심을 두고 있다. 또한 타인과 불필요하게 만나지 않음으로 자가 격리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루터의 공개서신을 먼저 읽고 코로나19의 문제를 토론했다면 불필요한 반목이나 오해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적어도 2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요셉이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창 45:11)고 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다시 코로나19 시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이다. 그 고민을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충분히 살피고 조언할 한 권의 책이 우리 손에 있다. 한국의 목회자들과 교회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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