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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연구] 노아(Noah)

샤마임 201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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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연구] 노아(Noah)

노아는 라멕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방주를 짓는다. 홍수로 인해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살고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한다. 노아는 홍수 이후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려 다시 축복을 받는다. 창조 이후 세계적 심판이 임할 때 홀로 살아남은 노아는 믿음의 족장이자 임박한 심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실한 그리스도인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다.

1. 개요

노아  : 안식 쉼 평안 이란 뜻이다.

라멕의 아들이다. 가인의 후손인 포악한 라멕이 아닌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이다. 가인의 후손 라멕과 이름이 동일하다.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노아’라 불렀다. 라멕은 노아의 이름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 창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의 고백 속에는 아담의 타락 이후의 핍절한 인간의 고통과 타락한 시대로 인해 의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담고 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세 아들을 낳는다. 성경은 오 백세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말한다.(5:32) 이들은 후에 민족들의 조상이 된다. 성경에 의하면 홍수 이후에 노아의 자손만 살았기 때문에 가인의 자손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주장은 억측이다. 이것은 비록 노아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인간 안에 악이 상존한다는 것을 말한다. 노아 나이 육백 세 되던 해 홍수가 일어난다.(7:6) 홍수 후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는다.(9:28-29)

2. 생애

족보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아담의 족보이다. 아담의 족보는 가인을 제외하고 셋을 통해 계승된다. 노아는 셋의 후손이다. 노아까지의 족보를 살펴보면 이렇다.

아담-셋-에노스-게난-마할랄렐-야렛-에녹-므두셀라-라멕-노아

노아는 아담의 십 대손이 된다. 노아 때에 홍수가 일어나 모든 사람이 죽는다. 그러므로 노아 이후의 족보는 노아만의 후손인 셈이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는 00를 **세에 낳은 후 **를 지내다가 자녀를 낳았고 **세에 죽었더라.

그러나 노아의 이야기를 갑자기 패턴이 바뀐다. 실제로는 노아의 족보 패턴은 바뀐 것이 아니라 설명이 삽입된 것이다. 6-9장까지 이어진 다음 9장 마지막 절인 9:28-29에서 완성된다.

  •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 9: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 9: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9장을 마지막으로 노아의 족보는 끝이 나고 10장으로 넘어가면 ‘노아의 아들’들이 족보가 소개된다. 특이한 것은 셈의 후손 이야기가 두 번에 걸쳐 반복된다는 것이다. 10:21-31에서 다시 바벨탑 사건이 끝난 직후인 11:10-26절까지 이어진다. 흐름상 데라 이후 족보는 계속되지만 11:26에서 셈의 족보를 끊은 다음 11:27을 26절에서 라를 받아 ‘데라의 족보’로 소개한다. 창세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11:26절과 27절을 단절시킴으로 이전 세대와 아브라함으로 시작하는 족장시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족보를 통해 노아의 시대가 족장 이전의 시대이며, 신화적 색채를 띄는 고대의 세계로 집어넣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이제 홍수 시대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홍수가 일어난 시기

홍수가 일어난 시기는 노아 나이 육백 세 된 때다. 라멕은 182세 노아를 낳고 595년을 더 살다 777년에 죽는다.(5:31) 라멕이 죽지 않았다고 계산하면 홍수를 라멕이 나이 782년에 일어난다.(182+600) 그렇다면 그가 777세에 죽었기 때문에 홍수 5년 전에 죽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라멕의 아버지 므두셀라가 아직 살아 있을 때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을 낳은 782년을 더 살다 969살에 죽는다. 홍수가 일어날 때를 계산해 보자.

187+182+600=969

성경에 기록된 나이대로 한다면 므두셀라 죽은 나이는 홍수가 일어난 바로 그 해다. 아직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므두셀라가 죽은 이유를 대해 자연적으로 죽은 것과 홍수의 심판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반 보수적인 학자들은 홍수 직전에 죽었을 것으로 단정 짓는다. 므두셀라는 경건한? 셋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셋의 후손들은 이곳에 기록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일부일처라 해도 적어도 다섯에서 열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질 수 있다. 한 대가 열 명을 낳는다면 삼대만 넘어가도 수백 명에 이른다. 노아 때에 셋의 후손들은 수백만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왜 노아의 가족들만 방주에 피했을까? 이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5장의 족보는 단순히 ‘경한한 셋의 후손’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확정 짓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면 그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다. 즉 가인의 후손이나 셋의 후손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한 것이다.

나의 가정이 너무하다 생각하지 모르지만 이것은 상식적인 생각이며, 창세기 6장으로 넘어가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6:1-2를 보자

  •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곳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서로 혼합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노아의 시대는 거룩과 악이 뒤섞인 시대이다. 성경에서 심판이 오는 시기는 선악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시기이다. 뒤섞임이 죄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에 고유한 목적 즉 소명을 주셨음에도 그것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노아의 시대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창세기 6장을 통해 미약하지만 추측할 수 있다.

1) 노아의 시대는 탐욕의 시대다

6:1-2은 사람들이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시대임을 말해 준다. 사사시대가 각기 자기 소견대로 산 것처럼 노아의 시대가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좋아하는 대로 살았다. 즉물적 존재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한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요한의 이것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 말한다. 셋은 다르지만 하나다. 그것을 탐심이다.

 

  • 요한 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 노아의 시대는 폭력의 시대였다.

네피림은 ‘무너뜨리는 자’ 즉 살인자들이다. 노아의 시대 네피림(6:4)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이 4절에서 다시 반복된다. 그들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용사’(  )들이다. ‘용사(하깁보림)’은 대개 ‘warrior’ ‘champion’ ‘mighty men’으로 번역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싸움꾼이나 강력한 용병들이다. 이들은 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폭력에 물든 자이다. 네피림은 다시 골리앗과 같은 아낙 자손들이나 거인들로 치환된다.

3) 노아의 시대는 항상 악한 시대였다.

  •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항상’ 악했다. 그들은 마음으로 악을 계획했다.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실천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후 사람들을 악을 즐겼다. 마음으로 악을 계획하고 죄를 짓고 싶어 안달이 났다.

 

  • 시편 36: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 시편 64:6 그들은 죄악을 꾸미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이러한 표현들은 3장에서 시작된 타락과 4장의 살인, 그리고 5장에서의 악의 확장이 6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타락의 열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노아는 어땠을까?

노아는 어떻게 살았는가?

노아의 삶을 정리해보자. 타락한 세상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계시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를 입다’라는 ‘마짜(  )’라는 단어는 능동적으로 무엇인가를 ‘찾다’ 또는 ‘받다’는 뜻이다. 이곳 외에도 (창 2:20, 19:19, 31:50) 적지 않은 곳에서 사용된다.

  • 창 19: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 창 31: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 출 33: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위의 용례 속에서 살펴본 ‘마짜~’는 찾고 구함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호의(favour)’를 신뢰하고 바라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짜~’의 단어를 가장 드러내 주는 곳을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다.

  • [출애굽기 33:16-17]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2) 노아는 경고를 받고 방주를 지었다.

히브리서는 노아의 삶을 방주는 짓는 삶으로 정의한다. 비가 오지 않던 시대 배를 짓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아무도 그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그곳에 투자했다. 이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은 것이다.

  •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베드로전서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믿음의 사람들은 계시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보이지 않은 세계를 믿음으로 보는 사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순종을 통해 실현된다.

3) 노아는 방주는 지으면서 종말을 경고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전도하는 삶을 살았다. 베드로는 ‘의를 전파’했다고 말합니다. 노아는 잠잠하지 않았다. 계속하여 홍수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아의 경고는 ‘거룩한 삶’으로 회개와 ‘함께 방주를 짓자’는 삶의 회심이 포함된다. 그러나 아무도 순종하지 않았다.

  • 베드로후서 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가 배만 짓고 산 것이 아니다. 노아는 악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했다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노아의 외침을 무시했다. 마치 롯의 사위들인 하나님의 심판을 농담으로 여긴 것처럼 말이다. 그럼 노아의 시대 사람이 특별히 악할까? 아니다. 현재와 다르지 않다. 다음의 구절들은 이것을 증명한다.

  • [마태복음 24:37-38]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 [누가복음 17:26-27]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특별한 악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현시대의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노아의 시대가 악하다면 지금도 악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악하다. 그러므로 노아의 시대처럼 지금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구절들

  • 이사야 54: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 에스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에스겔 14: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다.

방주와 홍수의 심판

방주를 짓다

모든 사람의 악이 횡횡할 때 하나님은 노아를 발견하고 그에게 은혜를 주신다. 찾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국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또한 전심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6:9) 동행은 함께 걷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신다. 온 땅이 부패하여 포악함이 가득해 심판하신다고 한다. 노아는 방주를 짓어 심판을 피하라 하신다. 하나님은 친밀한 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은 당신과 친밀한 자들에게 미래를 보여 주신다. 소돔이 멸망할 때 아브라함에게 그랬고,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선지자들에게 멸망을 보여 주셨다. 다니엘에게 앞으로 일어날 역사의 과정을 동상을 통해 보여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비전이라 말한다. 요한묵시록 역시 비전이다.

 

고페르 나무를 방주를 만들고, 역청을 바르게 하신다. 방주는 삼층이며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식 규빗이다. 크기는 현대 축구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크기이며, 톤수는 총톤수 5천에서 1만 톤급의 배 크기다. 모든 동물은 정결한 짐승은 7쌍, 부정한 짐승을 두 쌍씩 데리고 들어간다.(7:2)

노아가 방주를 몇 년에 걸쳐지었을까? 성경은 그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필자도 전에 이 부분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어떤 이는 75년이라고 다양한 논거를 통해 제시한다.(이곳)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과도하게 황당하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불필요하게 방주를 지은 시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 기간이 75년이든 100년이든, 120년이든 중요하지 않다.

방주를 짓는 삶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는 삶이다. 홍수가 온다는 계시를 듣고 방주는 짓는 노아의 심정은 어떨까? 의심을 완전하게 떨칠 수 있을까? 하지만 노아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방주를 지었다. 홍수가 일어나면 이 땅의 모든 것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소돔을 빠져나오며 미려을 둔 롯의 처처럼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모든 것을 방주를 짓는 데 투자했다.

 

홍수가 일어나다

방주가 완성되고 짐승과 노아의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성경은 '칠일 후'(7:10)라고 말한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않은 칠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비웃으며 방주 밑에서 노아를 조롱하지 않았을까? 요즘처럼 한다면 뉴스에서 보도하며 어떤 미치광이가 있다고 야유를 보낼 것이 뻔이다. 하지만 칠일 후, 노아가 육 백세가 되던 해 둘째 달 열 이렛날에 홍수가 시작된다.

홍수는 무지막지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창세기로 돌아가면 둘째 날 물이 나뉘어 공간이 생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늘 위의 물과 바다의 물 사이에 위험하게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윗물을 막으시고, 아랫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막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그 물들이 터져 버린 것이다. 위의 물은 아래로, 아래에 있던 물들은 땅을 뒤엎어 버린다.

  • 시편 78장 23절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 말라기 3장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요한계시록 4장 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홍수는 창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반창조이며, 질서를 다시 무질서와 혼돈으로 되돌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물속에서 나왔던 땅이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간 사건이다. 비는 40일 동안 계속된다.

 

홍수 이후

홍수는 노아 나이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17일이다. 육백일 년 첫째 달 초하룻날 물이 걷히고, 둘째 27일 날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도록 명령하신다.(8:14) 방주에 일 년 17일을 있게 된 셈이다. 홍주 7일 전 방주에 들어갔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첫 번째 한 일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한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무지개를 증표를 주신다.

 

홍수 제단을 쌓고 제사하는 노아

 

노아의 언약(God's Covenant with Noah)은 보존의 언약으로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다시 노아에게 허락하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권면하시는 것이다. 다만 추가된 것이 있다면, 육식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지만 피 채 먹어서는 안 된다.(9:4)

 

포도 농사와 저주받은 가나안

방주에선 나온 노아는 기이하게 포도 농사를 짓는다.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고 취하는 일이 발생한다. 몸에서 열이 났던지 옷을 다 벗고 잠을 잔다. 이때 함이 들어와 노아의 벌거벗을 것을 보고 셈과 야벳에게 일러바친다. 아마도 음담패설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셈과 야벳을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 노아의 모습을 보지 않고 가려 준다. 이 일로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게 된다. 노아는 홍수가 삼백오십 년을 살다 조상들에게 돌아간다. 그의 나이 무려 950세다.

 

신약 속의 노아

신약 속에서 노아는 종말론적 삶을 강조할 때 등장한다. 히브리서에서 소개도 역시 노아의 믿음을 말하지만 종말론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 마태복음 24장 37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누가복음 17장 26절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 히브리서 11장 7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베드로전서 3장 20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베드로후서 2장 5절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결론

노아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갔던 의인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며 방주를 지었다. 다가올 세상을 준비하는 노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그와 온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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