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막론] 에덴 동산의 교제 상징성, 성막, 신약의 그리스도인

샤마임 2025. 7. 17.
반응형

에덴 동산의 교제 상징성과 성막, 그리스도 안의 회복

에덴 동산은 창조의 아름다움을 담은 이상적 정원이었지만, 단지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교제의 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에 두셨으며, 동행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동산에 거니시는 소리"를 아담과 하와가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일상적으로 교제하셨다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그 교제는 단절되었고,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 이후의 성경 역사는, 단절된 교제가 어떻게 회복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에덴의 교제 상징성이 어떻게 성막에서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며, 신자의 삶 속에 다시 열리는지를 신학적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

에덴의 교제 상징 (하나님과 동행하던 공간)

에덴 동산은 히브리어로 "기쁨의 장소" 또는 "풍요"를 의미하며(에덴, עֶדֵן),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장소였습니다. 동산의 중심에는 생명나무가 있었고(창 2:9), 하나님은 거기서 사람과 교제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니시다'는 동사 "할라크(הָלַךְ)"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동행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로, 단지 산책이 아니라 지속적인 임재와 관계를 표현합니다.

이처럼 에덴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무 장벽 없이 친밀하게 교제하던 성소적 공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창조된 피조물로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창 1:26), 그 형상은 무엇보다 교제를 위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친밀한 교제는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으로 인해 끊어지게 됩니다.

죄와 단절, 그리고 내쫓김

타락 이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십니다(창 3:23–24). 그룹들과 불칼이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장면은 단순한 추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로 향하는 길이 폐쇄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영적 단절, 곧 죄로 인한 관계의 단절이며, 에덴 이후 인간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막의 교제 회복 구조 (제한적 접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후, 그들과 다시 교제하기 위해 **성막(미쉬칸, מִשְׁכָּן)**을 지으라고 명령하십니다(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라는 말씀은 다시 거하시겠다는 약속, 곧 에덴에서 끊긴 교제의 회복에 대한 서곡입니다.

성막은 에덴처럼 삼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바깥뜰, 성소, 지성소. 이 구조는 에덴의 세 영역—동산 밖, 동산 안, 생명나무 중심—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성막의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 16장). 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접근이 여전히 제한적이며, 완전한 회복이 아직 아님을 보여줍니다.

희생 제사와 중보자의 역할

성막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제물은 죄를 덮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히브리어로 '카파르(כַפָר)', 즉 '덮다, 속죄하다'의 뜻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교제를 대신 매개하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에덴에서의 직접적 교제와 대조되며, 여전히 장막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거리감을 전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복 (휘장을 찢으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중보자가 아니라, 새로운 성전, 곧 하나님의 임재가 육신 가운데 거하시는 완전한 통로가 되십니다(요 1:14). 요한복음 1:14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거하시매'는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 즉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새 성막,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회복된 통로가 되셨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상징입니다(마 27:51). 이제 더 이상 인간은 제사장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4:16).

참된 교제, 다시 열린 에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다시 에덴의 교제를 회복하게 됩니다. 단절되었던 생명나무로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열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은 생명수가 강처럼 흐르고, 생명나무가 다시 도성 한가운데 서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안에서 회복된 성전적 교제이며, 에덴의 중심이 다시 인간의 삶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신자의 삶 속에서의 교제 (성전된 우리)

고린도전서 3:16은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신자 개인이 곧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성전, 곧 새로운 에덴의 처소임을 선언합니다. 교제는 이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상태입니다.

기도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영적 길이며,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 에덴의 산책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회복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신비로운 교제이며, 공동체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가족입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요 14:16–17)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동행하는 삶으로 이끄십니다. 이는 다시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삶, 거니시는 하나님과 함께 걷던 삶의 회복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더 이상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삶 전체가 예배의 공간, 교제의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정리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이 아무 장벽 없이 교제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 문을 닫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막을 통해 다시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었으며, 에덴의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기도하는 자리, 말씀을 묵상하는 책상, 가정의 밥상, 교회의 예배당—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함께 걸으며, 날마다 에덴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제는 다시 가능해졌고, 그것은 영원으로 연결된 회복된 임재의 삶입니다.

[성막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에덴 동산

[성막론] 에덴 동산의 구조와 성전의 공간적 상징성

[성막의 구조와 상징] 2. 성막의 기본 구조

성경에 나오는 성전 또는 성막의 역사와 종류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