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마음에 채우다 / 존 파이퍼 / 생명의말씀사
시편을 마음에 채우다
존 파이퍼 /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말씀이 시가 되고, 삶이 노래가 되어
마음이 복잡할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살아간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우린 시편을 읽어야 한다. 오래 전, 고향을 떠나 부산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만났을 때 길을 잃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부산이란 도시는 시야를 압도했고, 타향의 언어는 나를 소외 시켰다. 그렇게 시작된 타향살이는 삼십년이 되었고, 언어와 생각도 타향에 머문 시간만큼 숙성되어 갔다. 그 때, 그러니까 아직 신앙의 언어가 낯설고, 성경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시편은 나의 이야기였다. 1편과 2편은 복잡하고 미묘하여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3편 1절은 나의 마음 깊이 숨겨진 타향의 설움을 읽어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분명 그들은 ‘대적’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구나 가족은 아니었다. 외롭고 서툰 타향의 공간에서 시편은 곧장 나를 주님의 품으로 끌어안고 갔다. 시편 42편은 어떤가. 심각한 갈증으로 인해 죽음을 직감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다. 불과 몇 달 전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지만 세상은 믿음의 초보자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생경스러운 언어로 모욕을 당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 시편은 삶이고, 시편은 노래이고, 시편은 친구였다.
“마음이 방향을 잃었을 때” 표지에 적힌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저자인 존 파이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기쁨의 신학자이다. 칼뱅주의 신학을 고수하면서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기쁨’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 이 책은 2008년 “Think and Feeling with God”라는 제목으로 시편을 설교한 것을 묶은 것이다. 파이퍼는 어려운 신학적 난제를 쉽고 명료하게 풀어내는 언어의 장인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설교자로, 목회자로, 신학자로 살아온 덕에 신학과 일상을 조화롭게 연계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책은 시편의 신학적 정교함보다는 성령을 통해 주시는 ‘생각과 감정’(12쪽)에 주목한다. 초대교회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편은 신약 속에서 적지 않게 등장한다. 성도들은 시편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고양(高揚)되었다. 존 파이퍼는 책을 시작하면서 ‘시편에 흠뻑 젖은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13쪽) 한다. 시편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대한다.
“시편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동시에 성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분명하게 우리의 정서를 일깨우고 빚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시편을 원래 의도된 대로 읽고 노래한다면, 그 시어들에 의해 우리의 정서와 생각이 빚어질 것입니다.”(17쪽)
그렇다! 시편은 시(詩)다. 번역된 언어로 다가오는 시편은 히브리어가 가진 시어를 밋밋하고 따분한 산문으로 읽게 한다. 시편은 산문이 아닌 ‘시’로 읽어야 한다. 시는 때로 모호하고, 격하고, 우울하고, 복받친 감정을 쏟아 낸다. 저자는 시로 기록된 이유를 ‘진리에 어울리는 정서’(15쪽)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확실히 맞다. 시편은 수많은 정서적 언어로 건축된 집과 같다. ‘외롭고’ ‘괴롭고’ ‘사랑하고’ ‘슬퍼’ ‘상하고 통회하고’ ‘낙심하고’ ‘즐거워’ 한다. 정서와 감정을 따라 시편을 읽어가는 노련함은 숙련된 장인의 손과 같다.
시편을 1편을 따라가 보자. 세상에 관심을 두면 세상의 방식을 기뻐한다. 그러나 의인은 어떤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2절) 저자는 악인이 의무감 때문에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왜 따르는가? 원해서 그렇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따르기 원하는 이유는, 그 방식에 매력을 느낄 만큼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을 묵상할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의 방식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빚어졌습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는 방식입니다.”(21쪽)
시편을 1편을 여러 번 묵상하고 설교한 필자로서 저자의 관찰은 경이롭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깊이 묵상한 탓이고, 묵상한 이유는 그것이 기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세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라 말한다. 갈망이 일어나니 듣게 되고, 듣고 보니 따르게 되고, 따르다보니 결국 ‘그들의 자리에 앉게’(22쪽) 된다. 그렇게 세상을 닮아 간다. 그에 비해 의인은 어떤가. 그는 다른 곳,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는다.
“하나님의 진리를 주야로 묵상하면 기쁨을 얻게 되고, 이 기쁨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들이 주는 즐거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22쪽)
거듭남은 존재의 변혁을 너머 혁명을 일으키고, 세상이 주는 기쁨을 말씀을 통해오는 기쁨으로 대체시킨다. 이제 옛사람의 기쁨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다. 이젠 복음이 진리를 묵상하며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의 근원’(26쪽)이 된다.
저자는 피상적인 언어로 시편을 읽지 않는다. 시편 기자의 내면의 언어를 들으려고 애쓴다. 시편 42편에서 고뇌하는 저자의 언어를 정갈하게 다듬어 낸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은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표출’(44쪽)이다. 그런 언어들은 때가 되면 바람에 날아간다. 그리고 남겨진 언어, 다시 재정립된 언어가 본심이다. 시편 기자는 ‘찬송’(8절) 한다. 이 노래는 ‘기쁨에 찬 소망의 노래가’(47쪽) 아니다. 낙심했고, 슬프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노래했다. 저자는 아이작 왓츠의 슬픈 찬송시를 소개한다.
주의 얼굴을 언제까지 내게서 숨기시렵니까?
나의 하나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두려움을 내쫓는 천국의 빛을
언제나 느낄 수 있을까요?
나의 불쌍한 영혼은 얼마나 오래
헛되이 씨름하고 수고해야 할까요?
주의 말씀은 내 모든 대적을 누르고
나의 들끓는 고통을 편케 할 수 있나이다.
-Psalm13
시편기자의 마음으로 노래한 찬송 시다. 고통의 깊이를 알고, 절망의 무게를 알았던 아이작 왓츠는 고통의 언어로 삶을 노래한다. 고난은 성도를 다듬어간다. 시편의 언어들은 감정을 담은 시이며, 노래이다. 다윗의 고백했던 시편 51편은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회개 시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셨음을 발견’(88쪽)한다. 진정한 영적 승리는 현실세계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시편은 그동안 교리적 성경 읽기로 인해 도외시되고 평가 절하된 감정의 언어에 주목하도록 일깨운다.
“시편은 하나님과 사람과 인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고 표현하고 빚도록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인 시들입니다.”(134쪽)
저자는 시편에 담긴 영적 침체(42편), 후회와 죄(51편) 감사와 찬양(103편) 등 다양한 감정을 탐색한다. 원제는 “Shaped by God”이다. 하나님의 의해 ‘다듬어진’ ‘모양 지어진’의 뜻이지만 한글 제목은 “시편을 마음에 채우다”로 번역했다.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명료하게 드러냈다. 한 편 한 편 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모두 6편으로 구성되어 짧다. 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에 울림이 크다. 설교를 글로 옮겼기 때문에 음성언어로 기록되어 있어 귀로 듣는 듯 편안함을 준다. 각 시편은 QR코드가 있어 기독교 복음방송(GOODTV)에서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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