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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교리묵상 / 임경근/이레서원

샤마임 201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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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교리묵상

임경근/이레서원

 


누구의 잘못도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한국교회가 삶의 지표를 잃어버렸다고 걱정한다. 이유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초긍정의 표어는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묵은 시대정신으로 치부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도래는 근대적 사고에 치명적 훼손을 가져왔고, 권위와 절대 진리를 상대화 시켰다들 말한다. 과언 그것이 사실일까? 결론적으로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고, 목표로 삼아왔던가. 가장 폭발적 성장을 이루었던 7-80년대 한국교회의 목표는 부흥이라는 구호아래 숨겨둔 성장이 아니었던가. 80년대 이후 교회 안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전도’ ‘선교’ ‘성장’ ‘부흥이란 단어들은 한결같이 교회의 크기를 확장시키고, 인원수 늘리는 것이 주목적이었음을 반증한다. 필자는 그것이 나빴다라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러한 단어의 빈번한 사용은 교회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렸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키고 다원화 시킨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 담론(metanarrative)에 종말을 가져왔지만, 답을 주지는 못했다. 뭔가 심각한 사유의 오류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다가올 위기를 충분히 감지하지 못했고, 준비하지 못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하자 교회는 무엇을 해도 성장하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애써 마이너스 성장에 눈감고, 시대의 변화에 무관심하려 하지만 성장곡선이 하향곡선으로 돌아선 지는 오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단언하지만 그것은 교리의 서사성 상실이다. 이미 정답을 갖고 있는 교회는 종종 여정을 무시했고, 오직 답만을 강요했다. 답을 찾아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음으로 불필요한 수고를 덜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답은 결론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이미 내려진 답을 삶을 적용해보고 다시 재확인하는 과정이 사라짐으로 진리에 대한 사유적 묵상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현대 교회가 다시 되찾아야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이미 있는 진리를 다시 묵상하는 여정이다.

 

저자인 임경근 목사는 2015<교리와 함께 하는 365 가정예배>(세움북스)로 만났던 적이 있다. 주제는 교리지만 필자는 가정예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365일 묵상집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읽는 것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갈급한 마음으로 읽었었다. 지금에 와서야 말씀에 뿌리내리는 가정이 되기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다! 진리를 찾는 여정은 어느 순간 마음이 동할 때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365 교리묵상으로 되돌아 왔다. 2015년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기반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기반으로 저술했다.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절대적 입지를 가지고 있다. 임경근 목사는 집요함과 성실함으로 1년동안 묵상하도록 배분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다. 천천히 읽는 사람이라도 족히 5분이면 하루 분량의 글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본문을 읽고, 본문을 따라 천천히 묵상한다면 한 시간도 부족하다. 1일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묵상한다. 하지만 목적은 시작을 알 때 가능하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주어진 하루에 최선이 가능할까?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의 존재 목적과 그 처음과 끝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너무나 비참하지 않을까요? 사실은 그런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비록 삶의 목적을 알 수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이 고귀하고 소중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삶은 이미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묻는 과정이다. 우리는 종종 교리를 정해진 답으로 축소시키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아니다. 교리는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사건과 역사, 그리고 선포된 말씀들을 수집하고 분류하여 체계화 시킨 것이다. 묵상은 묵상자를 원시적 말씀의 숲으로 초대한다.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할 때 말씀은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집요하게 말씀 앞에 묵상자를 세운다. 그리고 반복하여 묻는다.

 

하나님은 왜 작정하신 후에 일하실까요?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요?”(44)

 

묵상은 질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반추(反芻)하게 한다. 평범한 일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전하고 질문하다.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실까? 지금도 일하고 계실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매일매일 교리 속에 내재된 존재의 의미와 존재 방식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묵상 글은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긍휼의 손짓이자 함께 말씀을 안고 살아가고픈 이의 제안이다.

 

문답식으로만 되었다면 생각의 여지없이 만을 암송하듯 외울 것이다. 하지만 묵상 글은 정해진 답을 다시 생각하도록 생각의 여유를 허락한다. 글 마지막 부분에 묵상질문과 기도를 담아 한 편의 설교처럼 꾸몄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나눔지를 넣어 소그룹과 구역모임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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