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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로강단-광야논쟁

샤마임 201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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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논쟁(마태복음 4:1-4)

오늘의 논쟁은 광야의 논쟁입니다. 마태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풀어나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도전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몇 가지의 의식을 치르게 됩니다. 첫 번째 의식은 3장 후반에 기록된 대로 세례요한에게 가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두 번째 사역은 오늘 말씀에서 읽은 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을 통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던졌던 그 해묵은 논쟁을 마무리하려 하십니다.

 

첫째, 광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의 장소입니다.

 

주님께서 광야로 가신 이유는 성령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광야로 이끌었을 때 예수님을 순종하셨고, 그곳에서 금식하시고 광야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40년 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곳이며,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출애굽 1세대가 죽은 저주의 땅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조건이 결코 아닙니다. 까뮈의 시지푸스 신화처럼 탈출구가 없는 절망의 땅입니다. 안락하고 평안한 삶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모든 것이 결핍된 광야로 몰아가셨습니다. 사탄은 광야에 홀로 굶주린 주님을 찾아와 해묵은 논쟁을 시작했습니다. 광야는 부재의 공간이요, 시험의 장소인 광야입니다. 우리는 광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떡이냐’ ‘말씀이냐’라는 논쟁에서 승리하도록 보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직 떡만이 모든 것의 판단의 기준이 되고 절대화되고 신성시된 광야에서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고 분명하게 외치셨습니다.

 

둘째, 떡이 아닌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광야 같은 인생을 살면서 떡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신기루를 좇아가는 허황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떡입니다. 사람이 떡이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떡은 필요하지만 떡으로만은 아닙니다. 주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을 통하여 신명기 8:3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우리는 오래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광야논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말씀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이 아닌 다른 무엇에 마음을 쏟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씀에 뿌리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4절은 주님께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신 수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광야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창세기의 말씀들이 들려졌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말씀을 듣고 40년 동안 죽지 않고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부재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말씀만 있다면 모든 것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능력이요, 존재의 근원입니다. 사람들은 절망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무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말씀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듣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씀이 들리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온전히 말씀을 의지함으로 능력의 하나님의 체험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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