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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경배함-초창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의 예수/래리 허타도 / 송동민 옮김 / 이레서원

샤마임 201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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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몰] 아들을 경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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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경배함-초창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의 예수

래리 허타도 / 송동민 옮김 / 이레서원

 

아들을 경배하라!

 

예수는 언제부터 경배 받았을까? ‘하나님=로고스=성육신=예수’라는 요한문헌 공식에 익숙한 보수한국기독교인들에게 앞선 질문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세계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핫 이슈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하게 ‘예수는 누구인가?’이다. 해외의 저작물은 차치(且置)하더라도 번역되거나 한국 신학 논문의 주제들의 상당한 분량이 ‘초기 기독교’와 ‘초기 기독론’에 몰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새 관점 주의자로 불리는 제임스 던(James D.G. Dunn)의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상·하』를 비롯하여,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예수』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래리 허타도(Larry W. Hurtado)의 『주 예수 그리스도』들은 초기 기독교론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많은가를 방증하는 자료들이다.

 

총신대학교 김대웅 교수의 『요한계시록과 인자 기독론과 칠십인경 다니엘서의 메시아 사상』의 경우 초대교회 안에 예수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경배 받았는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잘 설명해 준다. 대신대학교 박윤 교수도 『예수의 두 얼굴』이란 논문을 통해 마가복음에 드러난 ‘고기독론’을 통해 초대교회가 어떻게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왔는지를 논증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계속하여 번역 출간되고 있으며, 예수가 초대교회 안에 초기부터 하나님으로서 경배 받아왔음이 증언되고 있다.

 

최근 들어 신약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초기 기독론’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기독교적 변증이다. 종교사학파를 비롯한 고등비평가들을 통해 초기 기독교가 이방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18090년대 독일 괴팅겐 대학의 교수들로 이루어진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들은 초기 기독교가 이방종교의 영향아래 형성된 집단으로 치부했다. 헤르만 궁켈을 비롯한 에른스트 트뢸치, 루돌프 오토 등이 중심이 된 이 학파는 특히 구약학자인 궁켈보다 신약학자였던 빌헬름 부세트의 영향력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리츨(Albrecht Benjamn Ritschl, 1822-1889)의 후예답게 그들은 신화적 요소를 걸러내고 철저히 역사와 문서 비평을 통해 종교가 시대적으로 변화했음을 주장한다. 즉 초기의 에니미즘(animism)에서 다신론(polytheism)으로, 다시 일신론(henotheism)을 거쳐, 유일신론(monotheism)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세트는 다시 오실 ‘인자’를 기다렸던 것이지, 신앙과 경배의 대상이었던 ‘주(퀴리오스, κύριος)’로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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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경배함: 초창기 기독교 예배 의식에서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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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헹엘은 『유대교와 헬레니즘』을 통해 종교사학의 주장을 반박한다. 종교사학파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고 말하며, 예루살렘 중심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와 바울 중심의 디아스포라 기독교를 적의적으로 긴장 관계로 구분한다. 헹엘은 예루살렘 중심의 기독교와 바울 중심의 팔레스타인 중심 기독교가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했지만 적의적이지 않았으며, 예루살렘 중심의 기독교 역시 헬라적 영향 아래에서 디아스포라 교회의 정서를 공유했다고 주장한다. 래리 허타도는 예루살렘 중심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에 중심을 두면서도 바울의 서신 속에서도 동일하게 예수가 주로 고백되었으며, 경배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방대한 작업을 통해 밝힌 것이 그의 대작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번에 번역 출간된 『아들을 경배함』은 초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에 예수가 어떻게 경배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허타도의 공헌은 헬레니즘 시대 속에서 살아있는 황제가 신으로 숭배 받던 시절 속에서 예수가 경배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책은 초대 기독교가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있지만 ‘기독교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에 걸쳐 그리스-로마 세계의 관념들에 동화된 결과 생겨난 산물이 아니라는 것’(13쪽)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신으로 추방 받는 로마 황제와 예수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의 ‘부활’(15쪽)에 있다. 허타도는 이러한 초대교회 예수 경배 의식은 로마 시대의 황제 숭배나 다른 종교와도 엄격하게 구별되며, 초대교회 예배 안에 존재했다고 밝힌다. 허타도는 2장에서 ‘고대 세계의 예배’를 살핀 다음, 3장에서 ‘고대 유대교의 유일시론’을 점검한다. 결국 초대 기독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박고 있는 동시에 기존의 유일신론을 뛰어넘는 ‘변이’라는 사실을 4장에서 밝혀낸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5장에서는 초대 기독교 예배 의식 속에서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를 밝힌다는 점에서 현대 교회가 신앙하는 예수 경배가 결코 후대에 첨가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허타도의 이러한 업적이 중요한 이유는 최근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을 비롯한 일부의 학자들이 예수 경배가 1세기 후반에 형성된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33쪽) 허타도는 문헌상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유일신론을 신앙하는 유대인들에게 성부 하나님이 아닌 예수의 경배는 놀라운 것이다. 특히 사람이었던 예수에 대한 신적 경배는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예수에 대한 경배는 ‘숭앙의 대상인 주님으로 예수가 인정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이른 시기부터 급격히 확산된 현상’(35쪽)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보컴(Richard J. Bauckham)도 헹엘의 입장에 동조하며 여러 논문들을 통해 기독교 초기부터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게 예배의 대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37쪽) 보컴은 ‘예수를 향한 예배를, 예수가 하나님의 보좌를 공유하며 세상을 창조하는 신적인 행위에 동참한다는 구체적인 신념의 초기 결과물로’(38쪽) 본다.

 

유대인들의 유일신론의 핵심은 모든 경배와 숭배의 대상은 야훼 하나님이다. 그 어떤 신이나 우상(모형)까지도 거부되었다. 제사와 기도, 경배의 대상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드렸다.(73쪽) 헬레니즘이 극심한 시기에 핫시딤을 중심으로 한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에 더욱 천착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에셋파는 종종 사회를 떠나 광야나 사막 지역에 자신들만의 독립된 공동체를 형성했다. 쿰란 지역의 존재했던 이들도 에셋파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신론에 집착한 극단적 경건주의자들도 사람을 하나님처럼 경배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들은 인자로 표현되는 단어나(특히 다니엘과 에녹1서 등)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인자나 그리스도는 결코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경배는 오직 유일하신 야훼 하나님뿐이다. 그럼 유대인들이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경배했을까?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 문헌 속에서 기존의 유대문헌과 상이한 ‘변이(mutation)’을 감지한다.

 

“이 형태에서는 부활하신/높이 되신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실질적으로 의식에 의한 섬김의 공동 대상이 되시며, 독특하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86쪽)

 

즉 부활과 승귀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다.(롬 1:4) 초대문헌 중에서 가장 초기 문헌에 속하는 바울 서신들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주(κύριος)’ 등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이른 초기에도 ‘함께 모인 예배 공동체의 주님이자, 신자들이 순종하고 기원을 드리며 경배해야 할 존재로서’(87쪽) 인식 했던 것이다. 약간 후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만 예수를 경배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미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아’였으며,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신적 지위를 지닌’(100쪽) 예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예수의 이름’을 불렀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했다. 구약 속에서 이러한 용례들은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특히 요엘 3:32의 문구는 로마서 10:13에서 거의 비슷하게 인용된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이러한 예수에 대한 표현과 기원들은 예수가 ‘명백히 초창기 기독교에서 실천한 예배/신앙 의식의 중심부에 있었다는 점’(108쪽)을 보여준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숭배는 유대인들의 유일신론을 뛰어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또한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일어난 이방종교의 유입이 아닌 구약의 성취로 이루어진 예수의 부활로 인해 촉진된 사건이다. 예수에 대한 숭배는 살아있는 신들로 불린 로마 황제들에게 기독교의 반응이었다. 경배해야할 대상은 황제인 ‘주’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주’라는 것이다. 신약성경 안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모든 걸고 고백했던 신앙 고백이며, 경배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야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었다고 보는 신학적 해석이었다. 허타도는 짧고도 강력하게 ‘고기독론(High Christology)’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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