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풀어쓴 성경 / 강산 / 헤르몬
이사야서 풀어쓴 성경
강산 / 헤르몬
강산 목사가 이사야서를 번역했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움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먼저 히브리어 원어를 직접 번역했다는 것은 히브리어뿐 아니라 당시 시대적 배경에도 정통해한다. 필자가 보기에 강산 목사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걱정이 드는 이유는 성경 번역이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성경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인 ‘사도’의 헬라어는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이다. 이 단어는 ‘아포스텔레오(ἀποστέλλω)’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내가 보낸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사도는 ‘보냄을 받는 자’로 줄곧 해석해왔다. 그런데 ‘아포스텔레오(ἀποστέλλω)’라는 단어는 ‘~으로부터’의 뜻을 가진 ‘ἀπό’와 ‘모으다’ ‘준비하다’ ‘함께하다’의 뜻을 가진 ‘스텔레오(στέλλω)’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래서 고전 헬라어에서는 ‘아포스텔레오(ἀποστέλλω)’가 함대 원정, 또는 원정 지휘자, 출항 준비가 된 배, 적하(積荷)증권, 송장, 송신(送信), 사신, 사절 듯의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독특하게 ‘사신’ 또는 ‘사자’의 한정된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드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는 사도(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란 뜻을 크게 해치지는 않지만 매우 협소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고린도 전서 4:1에 보면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중요한 단어인 ‘일꾼’이란 헬라어는 ‘휘페레타스(ὑπηρέτας)’이다. 이 단어 역시 ‘~의 아래’의 뜻을 가진 ‘ὑπό’와 ‘노를 젓다’인 ‘ἐρέτης’의 합성명사이다. 이 단어 고대 헬라어에서 사공이나 노예 등을 뜻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단호하게 일꾼의 원래 뜻이 노예였다고 확정 짓는다. 성경 주석가는 이곳에서 더 은혜로운 상상을 더해 ‘삼단노가 있는 겔리선의 가장 낮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벤허에 나오는 주인공 벤허가 바로 겔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고대 문헌 속에서는 단 한 번도 ‘ὑπηρέτας’가 문맥 상 ‘사공’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꾼’의 헬라어 단어 ‘휘페레타스(ὑπηρέτας)’를 갤러리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고정 시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사도'와 '일꾼'이란 단 두 개의 단어만을 예로 들었지만, 성경야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단지 단어만의 문제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2천 년에서 5천 년이 지나 성경을 번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쉬운 단어인 ‘레헴’도 한글성경은 그냥 ‘떡’으로 번역했지만, 현대 한국 상황 속에서 떡이란 감은 그리 옳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베들레헴은 떡집이 되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떡’이 된다. 그렇다고 ‘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밥’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떡’이란 단어는 아직도 성경 번역가들에게 가장 큰 고충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번역가들이 비록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번역이 아닌 ‘반역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는지 이해할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신성한? 성경의 언어를 한글로 옮기는 것 자체도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성경은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기 위해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배워야 한다면 누가 감히 성경을 읽을 수 있겠는가? 성경 번역은 이처럼 위험하고 반역자로 모함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면서 번역되어야 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과 방언과 족속이 복음을 들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 소식에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직역일까 의역일까’였다.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했을 것이다. 직역은 성경의 뜻과 가장 가깝다. 그러나 직역은 맛없는 만찬과 같아서 도무지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그대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되기 십상이다. 영어 성경인 American Standard Version(ASV, 1901)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어린 자녀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완전히 의역한 Living Bible(TLB, 1971)가 있다. 성경 번역가는 들은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고민하며 갈등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묻는다.
강산 목사는 직역일까? 의역일까? 단순한 생각으로 책을 펼쳐 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단순히 직역 의역만을 생각한다면 의역에 가까운 번역이다. 그러나 강산 목사의 번역은 단순한 의역을 수준을 월등히 띄어 넘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필자는 종종 그렇지만, 목회자들이나 교수들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불필요한 수식어구과 문어체로 가공된 문장들로 문자의 성을 쌓아 올린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글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강산 목사의 번역은 바로 곁에서 친구가 어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것 같다.
이사야 1:11-14
개정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강산 목사의 번역
“너희는 지금까지 형식적인 예배와 제사만 드렸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경외하지도 않으면서 드린 그 많은 동물 제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동물의 피와 기름이겠느냐? 마음에도 없는 절기 예배와 집회와 모임으로 오히려 내 마음은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혐오는 느낀다.”
강산의 목사의 번역은 확실히 의역이다. 그러나 기존의 의역과는 상당히 다르다. 마치 원문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시대에 맞는 언어로 다시 해석하여 들려준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문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려는 치열함이 느껴진다. 전반적인 흐름 상, 성경의 흐름과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도무지 알아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잡아낸다.
5장 8절과 11절의 시작은 ‘화가 있을 진저’로 표현된다. 과연 맞은 번역일까?
8절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הֹ֗וי מַגִּיעֵ֥י בַ֙יִת֙ בְּבַ֔יִת שָׂדֶ֥ה בְשָׂדֶ֖ה יַקְרִ֑יבוּ עַ֚ד אֶ֣פֶס מָקֹ֔ום וְהֽוּשַׁבְתֶּ֥ם לְבַדְּכֶ֖ם בְּקֶ֥רֶב הָאָֽרֶץ׃
주의하여 볼 곳은 서두인 ‘호이( הֹ֗וי )’라는 단어다. ‘호이’는 격앙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큰 비탄에 빠져 한탄하는 형식의 외침이나 타인을 저주하는 듯한 격한 감정의 상태를 드러낸다. 또한 문장 가장 앞에 둠으로 감정의 상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직역에 가까운 한글성경은 '호이'를 문장의 끝에 두었으며, 냉정한 상태로 주저를 선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산 목사는 이 단어를 서두에 집어 넣어 이렇게 번역했다.
“비참하구나! 그들이 삶에 맺은 첫 번째 나쁜 열매는 ‘탐욕’이다.”
11절 역시 동일하게 문장 서두에 넣어 ‘비참하도다!’로 번역했다.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멋진 번역이다. 실제로 이러한 번역은 원서에 어느 정도 감이 없거나 성경을 다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구문들이다. 강산 목사의 특출함은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하나하나를 원문과 비교해가면 원문이 가진 의미들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번역했다는 점이다.
쉬지 않고 1-5장까지 읽어가면 이전에 성경을 읽을 때의 딱딱함이나 무거움은 감소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외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각 장마다 저자의 묵상 글이 짤막하게 올라가 있다. 마치 선지자의 외침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예리하다. 어떤 면에서 강산 목사의 번역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보다 우월하다. 영혼을 후펴파는듯한 각성을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강산 목사의 번역은 의역이지만, 영혼의 충격을 주는 탁월한 의역이라 감히 말한다. 이사야서를 설교하는 목회자나 이사야서를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말 좋은 책이다.
저자 : 강산 | 출판사 : 헤르몬
판매가 : 16,000원 → 14,400원 (10.0%, 1,600↓)
중학생이 읽어도 바로 이해되고100번을 읽어도 새로운 이사야서를 만난다예수님이 구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셨던 성경은 (시편과 함께) 이사야서였다.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주님은 이사야 61장 1~2절을 인용하면서 장엄한 시작을 알리셨다. 신약성경은 최소 60군데 이상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있으며, 심판과 회복의 장엄한 구원사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성경 안의 성경’, 혹은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이사야서를 펼치면 1장부터 쏟아지는 난해한 단어와 구절, 배경, 반복되는 심판 메시지로, 의미를 깊이 알기도 전에 ‘마당만 밟다가’ 멀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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