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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1–12 강해,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샤마임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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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판단자가 아닌, 율법의 행위자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날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야고보서 4장 11절과 12절의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말과 판단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깊은 영적 무게를 가지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도덕적인 언어생활의 권면을 넘어서, 하나님의 통치와 권위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위치를 재정립하게 합니다. 야고보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단지 인간 간의 문제를 넘어서, 결국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 자신을 판단하려는 태도임을 밝힙니다. 이러한 언행은 곧 구속사 안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 지녀야 할 경외심과 겸손함에서 벗어난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입술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신앙의 반영인지, 그리고 진정한 복음의 빛 가운데 사는 자는 어떤 자세로 공동체를 섬겨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해보겠습니다.

 

1.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4:11上)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4:11上)

야고보는 따뜻한 호칭인 ‘형제들아’로 이 권면을 시작합니다. 이는 단호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과 가족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권면입니다. 여기서 '비방하다'(καταλαλεῖτε, katalaleite)는 헬라어로 '비하하다', '험담하다'는 의미로, 단지 비판이나 건설적인 충고가 아니라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의 말입니다. 이는 곧 형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고,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비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비방은 상처를 남기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자녀를 향한 언어는 곧 그분을 향한 태도와 연결됩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형제를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손으로 빚은 피조물을 조롱하는 자이다”라고 말하며, 비방의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였습니다.

 

왜 사람들은 비방합니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상대를 낮춤으로써 자신이 더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보이고 싶어하는 숨은 교만이 작용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마 12:34). 즉, 비방은 내면의 정죄와 교만이 외형화된 언어입니다. 성도는 입술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하고, 형제를 축복하는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2. 형제를 판단함은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다 (4:11下)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11下)

 

야고보는 단순히 형제를 향한 말이 아니라, 그 판단의 태도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대한 도전이 된다는 무서운 영적 원리를 선포합니다. 율법은 인간이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순종할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은 그의 뜻과 성품을 반영하며, 그 율법 안에서 모든 공동체는 공의와 자비의 질서를 유지하게 됩니다.

 

‘판단한다’는 말은 단지 도덕적 평가나 올바른 권면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누가 율법을 어겼고 누가 자격이 없는지를 결정하는 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주해하면서, “사람은 율법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 율법 위에 서는 자는 곧 하나님 위에 서려는 자”라고 경고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욕망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교만이 바로 이 판단하는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준행자, 곧 율법에 순종하는 자는 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동일한 긍휼이 자신에게 필요함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 입에서는 판단이 아니라 자비와 인내가 흘러나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우리가 무자격자임을 먼저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본 자만이 타인을 향해 정죄하지 않고,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3.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십니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4:12)

 

이 구절은 야고보서 전체의 윤리적, 신학적 중심을 담고 있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분일 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시며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입법자와 재판관, 이 두 개념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권위입니다. 사람은 판단받는 자이지, 판단하는 자가 아닙니다.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말합니다. 이는 단지 심판의 두려움을 조장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가치를 정하는 자리에 서는지를 일깨우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판단은 공의롭고 완전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야고보는 “너는 도대체 누구이기에”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무지를 드러냅니다. 이 질문은 욥기 후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일련의 질문들과 유사합니다. 인간의 존재는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지닌 연약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 앞에서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려던 군중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판단을 멈추라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는 자들이라는 본질적 사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정죄의 집단이 아니라, 은혜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결론: 비판이 아닌 은혜의 통로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야고보서 4장 11절과 12절은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서운 영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단지 상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는 시도이며, 이는 구속사의 흐름 안에서 매우 심각한 배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제정자이시며, 심판자이십니다. 우리는 그 앞에 겸손히 서야 할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정죄의 도구가 아닌, 축복과 중보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은혜로 말합니다. 자비를 입은 자는 자비를 베풉니다. 그럴 때 우리는 율법의 판단자가 아닌, 진정한 율법의 행위자로, 복음의 통로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도 말과 판단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심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며, 공동체 안에서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복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야고보서 4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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