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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3–17 강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샤마임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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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는 사람의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야고보서 4장 13절부터 17절까지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 삶의 가장 실제적인 부분인 계획과 미래, 성공과 관련된 영역에서 성도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특히 우리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자율적으로 인생을 설계하며, 그 속에서 경건을 명목상으로만 두고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본문입니다. 야고보는 당대의 상업 중심 사회 속에서 믿는 이들이 계획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신자의 계획과 인식, 그리고 행함에 있어 신학적, 실천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겸손한 삶의 태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삶의 길로 다시 들어서야 합니다.

 

1.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3)

야고보는 실명하지 않지만 매우 구체적인 예를 제시합니다. 당시 상업과 교역이 활발했던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신자들은 보통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상업 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종종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동하고 거래처를 정하고, 일정 기간을 계획하며, 효율을 추구하는 구조 속에 살아갔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오늘이나 내일”, “어떤 도시에 가서”, “일 년을 머물며”, “이익을 보리라”는 표현들은 단지 미래를 계획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닌, 하나님 없는 확신과 자기중심적 사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활동 자체가 아닙니다. 성경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노동을 긍정하며, 청지기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 중심에 하나님을 포함시키지 않은 채, 자신의 능력과 계산만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태도, 곧 하나님의 뜻 없이 살아가는 실천적 무신론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모든 계획은 그 뿌리부터 썩은 것이며, 겉보기엔 선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자기의 무너짐으로 끝난다"고 경고했습니다. 칼빈은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신뢰하는 순간, 하나님의 뜻을 자신도 모르게 배제하며, 그것이 교만의 시작이 된다"고 덧붙입니다. 이는 곧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얼마나 쉽게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님의 주권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2.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야고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정보의 부족이 아닙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 외에는 미래를 아는 자가 없다는 진리를 선언하는 것이며, 인간의 통제력과 지혜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고발하는 선언입니다.

 

‘안개’(ἀτμὶς, atmis)는 고대 성경 문학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이미지입니다. 이는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것, 곧 인생의 덧없음과 본질적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성경 구절은 전도서, 시편, 욥기 전반에서 반복되며, 이는 단지 부정적 현실 인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겸손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이 자기 자신과 인생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장기 프로젝트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생명은 안개 같고, 모든 계획은 그의 뜻 아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시선의 전환입니다.

 

3.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4:15–16)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4:15–16)

 

야고보는 ‘주의 뜻이면’이라는 고백을 삶의 태도로 삼으라고 권면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말버릇이나 형식적인 신앙 언어가 아닙니다. 이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는지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세이며, 삶 전체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려는 순종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 22:42)라 하신 것처럼, 참된 믿음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 믿음은 근거 없는 자만일 뿐입니다.

 

야고보는 그 자만을 ‘허탄한 자랑’이라 부릅니다. 헬라어 ‘ἀλαζονεία’는 실제보다 더 높이 자신을 생각하거나, 하나님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행태를 뜻합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에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며, 자기 자랑과 교만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뿌리라고 경고합니다. 이 자랑은 단순히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자기를 인생의 주인 삼는 실천적 불신앙이며 죄입니다.

루터는 “신자의 언어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하며, 주의 뜻이라는 말은 단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겠다는 믿음의 실천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결론: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4:17)

 

이 결론은 단지 앞서 나온 말씀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책임을 강조하는 무게감 있는 선언입니다. ‘선을 행하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행동이나 선행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신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삶의 태도와 실천 전체를 말합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다’라는 이 말씀은 신앙생활에서 소극적 회피가 얼마나 무서운 죄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옳은 것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옳음을 행함으로 드러내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이는 야고보서 전체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핵심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선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시기상조’, ‘현실적으로 불가능’, ‘내 사정이 좀 나아지면’이라는 핑계로 미루고 있습니까? 야고보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미룸이 곧 죄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순종함으로 실천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결정 앞에 “주의 뜻이면”이라는 고백이 자리하길 바랍니다. 그 고백은 단지 한 마디 말이 아니라, 겸손과 믿음의 결단이며, 그 고백을 따라 사는 삶은 진정 하나님께 의탁된 인생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야고보서 4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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