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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에이미 4) 나는 선한 목자라 (요한복음 10:11)

샤마임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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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 (요한복음 10:11)

본문 배경과 의미

요한복음 10:11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는 ~이다(ἐγώ εἰμι)" 선언 중 하나로,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이며, 여기서 "ποιμήν(목자)"은 양떼를 돌보는 사람을 뜻하고, "καλός(선한)"은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본질적으로 훌륭하고 이상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은 단순한 목자가 아니라, 온전하고 참되며 신실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선포하신 것은, 그분이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구약의 목자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목자로 자주 묘사됩니다(시 23:1, 겔 34:11-16). 그러나 인간 지도자들은 때때로 양을 학대하고 자신만을 위하는 존재로 타락하였으며, 이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선한 목자가 되어 양들을 돌보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예언을 성취하시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헬라어 'καλός'(선한)의 성경적 용례와 의미

헬라어 'καλός'는 신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본질적으로 훌륭하고 고귀한 특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좋음"을 의미하는 'ἀγαθός'와 비교될 수 있으며, 'καλός'는 더 깊은 차원의 탁월함과 적합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도덕적이고 본질적으로 훌륭한 의미

'καλός'는 도덕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11에서 자신을 "나는 선한(καλός)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καλός'는 단순히 착한 목자가 아니라, 희생적이고 참된 목자의 본질을 지닌 완전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희생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외적인 아름다움과 적합성

'καλός'는 때때로 물리적,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적절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16에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그들이 너희 착한(καλός)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καλός'는 선한 행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적합하고 아름답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탁월한 특성과 영향력

'καλός'는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본질적으로 탁월하고 영향력 있는 선함을 의미할 때도 사용됩니다. 디모데전서 4:6에서는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καλός) 일꾼이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καλός'는 단순히 올바른 행동을 하는 자가 아니라, 그 본질과 영향력이 신실하고 탁월한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καλός'는 신약 성경에서 단순한 선함을 넘어 도덕적으로, 본질적으로, 그리고 기능적으로 탁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이며, 신자들이 추구해야 할 선함의 기준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선한(καλός)' 목자로 소개함으로 고귀한 분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의 희생과 구속사적 의미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보호자의 역할을 넘어, 자기 희생적 사랑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당시의 목자들은 야생 동물이나 강도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웠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예고하는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양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15:13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또한 이 희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양들을 살리기 위한 대속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양들을 죄와 사망의 위험에서 구원하며, 그들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로 인도하는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양들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구속주이십니다.

 

삯꾼과 선한 목자의 차이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와 삯꾼을 대비하며 설명하십니다(요 10:12-13). 삯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용된 자로, 양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희생하기보다는 도망가는 존재입니다. 삯꾼은 양들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으며, 참된 사랑과 책임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고, 끝까지 보호하고 지키며 인도합니다.

 

삯꾼의 모습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양들을 방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거짓 지도자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참된 목자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삯꾼은 위기가 닥치면 도망가지만, 선한 목자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양들을 위해 헌신합니다. 이 차이는 곧 진정한 사랑과 거짓된 관심의 차이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길을 가셨는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선한 목자 되심은 단순히 양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 구속의 사역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감당하신 희생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며 자신이 참된 구원의 길을 여신 분임을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그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목자를 따르고 있습니까? 세상의 거짓된 지도자들은 삯꾼과 같아 양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며, 우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에만 참된 평안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삯꾼 같은 목자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탐욕과 명예를 위해 성도들을 이용하며, 참된 사랑 없이 교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목회자들은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삯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 목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성도를 보호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결국 양 떼를 위험 속에 내버려 둡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지도자들을 분별해야 하며, 오직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에만 참된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초점을 사람에게 두지 말고, 온전히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길을 따르며,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7가지 에고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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