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 걷다/홍명직•한슬기 / 토기장이
오늘만큼 걷다
홍명직•한슬기 / 토기장이
코로나는 예측 불가능한 내일이란 친구를 데리고 왔다. 길을 잃었다는 식상한 표현을 쓰지 싶지 않지만 그 말이 절로 나온다. 무엇하나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도 서지 않는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길이 없는 인생을 살지 않았던가. 어쩌면 신앙생활이란 확고하고 분명한 내일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나 모호한 하루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차분하고 담백하다. 때론 답답하고, 먹먹하다. 저자의 글에 과도히 몰입한 탓이리라. 내일 당장 태국 직원이 나오지 않는다는 글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확 밀려왔다. 태국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태국과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도 많이 보며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다 저들은 어쩔 수 없는 후진국이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자존심이 강해 대단하다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필리핀이 베트남보다 태국인들은 한결 나아 보인다. 특히 치앙마이 사람들은. 그럼에도 그들은 태국인이다.
평신도 선교사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지내왔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다.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없는 꽉 찬 여백이 느껴진다. 만남과 결혼, 카페에 대한 미련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획대로 순순히 일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게 모든 것을 하나씩 준비해 나가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거의 갈 뻔한 중국행도 물거품이 된다. 그렇게 뜻밖에 인연이 된 치앙마이.
하지만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고 상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평신도 선교사가 갖는 고충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가장 시기와 질투가 많은 집단이 선교사 집단이며, 타문화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선교학을 전공하고 선교사들을 지근에서 관계 맺어온 필자의 눈에는 저자의 아픔이 적지 않게 보인다.
“선교지에 나와 이웃을 돕고 섬기며 살아갈 날들을 기대했었는데, 정작 우리 스스로도 몸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흙탕물을 휘저은 것처럼, 우리 안에 가라앉아있던 문제들이눈앞에 드러나고 있었습니다.”(55쪽)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겪어야할 사명의 일부다.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가식의 삶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교사도 사람이고, 자신이 가진 신앙을 삶을 통해 보이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러한 고뇌 속에서 치앙마이에 정착해 나간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살아 있기에 사연이 있고, 살아 있기에 아픔과 희열도 존재하는 법이다. 책은 심오한 신학적 문제를 다루거나 선교사들의 치열한 고뇌를 다루지 않는다. 스며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행간을 세밀히 살피며 치열한 삶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신음하는 기도 소리가 드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몸부림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누군가는 산뜻한 수채화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묵직하고 고요한 수목화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는 삶,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삶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 것’(119쪽)이 아닐까?
우리는 지혜가 짧기에 완성 그림을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나의 삶은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배워’(130쪽)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오늘만큼 걸어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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