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하는 기도
외로울 때 하는 기도
죠지 뮬러는 영국의 위대한 신학자이다. 이 사람은 19세까지는 심한 술주정뱅이였다. 바람도 심하게 피우며 생활은 형편없었다. 이 사람의 전기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극심한 방탕아라도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고 부터의 이 사람의 생활은 실로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어준다는 신앙에 의해 관철되어 있다. 그 신앙에 의해 그는 세계 제일의 고아원을 만들고 평생동안 15만명의 고아를 가르쳤다. 그는 항상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굶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위대한 사업도 뮬러의 기도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가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준다는 신앙을 여실히 이야기한 에피소드는 많이 있다.
몇 번이나 기도의 효험을 얻은 사람에게는 기도 이상의 힘은 없다. 한번 그 맛을 보게 된다면 기도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맛을 본다는 말이 재미있다. 진술했지만 설탕의 맛은 햝아봐야만 알게 된다. 아무리 설탕을 입언저리에 갖다대도 혀위에 얹지 않으면 맛을 볼 수 없다. 즉 기도하는 흉내가 아니고 진정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진정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에 의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본다. 이것은 이치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 확실히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는 것을 뮬러의 에피소드처럼 전신전념으로 알고 온 것이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것이 양복점의 일이고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양화점의 일인 것처럼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믿을려고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여하한 사업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위대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기도는 즉 우리들의 사업인 것이다. 이것을 태만히 하여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기도하고 싶으니까 기도한다. 기도하기 싫으니까 기도하지 않는다면 안된다. 기도하기 싫을 때에도 기도해야 한다.
다시 없는 그리고 되풀이할 수 없는 일생을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당신은 걷지 않으렵니까? 지금까지의 생활이 얼마나 의미가 없고, 그리고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생활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신 앞에 또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길이 있습니다. 과거는 어떻게 걸어왔건 지금 자기의 눈앞에는 발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길이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자기의 자유라고 하니 이보다 더 멋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과거는 좋습니다. 지금부터의 첫걸음을 당신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에 인도되어 걷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기쁨이 넘치는 인생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러면 우리들이 성경에 의해 제시된 하나님이란 어떠한 하나님인지 지금부터 써보겠다.
처음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성경의 첫장에 써 있는 것이 이 말이다. 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아아, 이 천지를 하나님이 만드셨구나! 그리고 나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구나!
여러번 이 구절을 성경에서 읽었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읽어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깊은 바다에 사는 고기에게는 눈이 퇴화되고 있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눈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여 장님이 된다.
하나님이 이 천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즉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라는 것이고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의 제 1장에서도 유명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는 표현이 있다. 계속하여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거룩함도 의로움도 사랑도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여실히 표현된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보다 훨씬 능가한 존재이고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또 어떻게 믿으면 좋은지 그것조차 모르는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곁에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길은 열린 것이다.
“나를 봐라 내 재주를 봐라.”
나는 여기에 대해서도 거듭 이야기해야겠다.
글/ 미우라 아얏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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