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묵상] 6. 4:1-11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서묵상] 6. 4:1-11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1절)
놀라운 구절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요나의 성냄이 의아하게 보입니다. 요나의 성냄은 타자적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느니웨 백성들을 하나님은 용서해 줍니다. 당연히 그들이 멸망당하기를 기대했던 요나에게는 황당한 일입니다. 그의 신앙의 그릇으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화는 자신의 생각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항거입니다. 또한 대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타인을 조종하려는 의도입니다. 요나의 화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항거이자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러한 악한 의도는 다시 초막을 짓는 일에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조종하려 하고, 하나님까지 조종하려 합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은 정의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이기적 욕망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절)
요나는 답하지 않습니다. 요나는 2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강한 반항심을 드러냅니다. 당신의 그 고매한 성품 때문에 제가 다시스로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다시 저를 불러 놓고 저에게 망신을 줍니까? 나는 단지 당신의 부속품에 불과합니까? 요나의 저의는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너의 그 생각이 옳으냐? 요나의 성냄과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한 가지가 누락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는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계획, 자신의 의도를 중요시합니다. 하나님과 대등한 관계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요나서를 읽을 때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마음’을 비교하면 읽으십시오. 이곳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서운함’입니다. 그것은 요나의 대한 서운 함이기보다 인간이 가진 타락한 본성에 심긴 이기주의에 대한 서운 함입니다. 서운함은 사랑이며, 절망의 한 끝에 자리한 희망의 씨앗입니다.
“박넝쿨을 예비하사”(6절)
박넝쿨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나를 생각하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벌레’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벌레는 박넝쿨을 갉아먹을 것이고, 요나는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벌레도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나의 고통은 깨달음을 위한 것입니다. 박넝쿨과 벌레는 인생의 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빼앗아 갈 때가 있습니다. 박넝쿨도 감사해야 하지만 벌레도 감사해야 합니다.
“죽기까지.. 옳으니이다.”(9절)
요나는 벌레로 인해 박넝쿨이 사라지가 고통에 빠져듭니다. 그는 다시 화를 냅니다. 그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8절)라며 간구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려는 요나의 태도는 피상적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거나 인내하기보다 죽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성냄의 속성은 정죄이며, 타자에 대한 억압입니다. 일종의 공의적 속성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타자에 대한 객관성을 상실하는 순간 이기적 복수심으로 변질됩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습니다. 타인은 악하고 나는 선하다는 이분법이 타인의 존재를 배격하기에 이릅니다. 보즈니아, 르완다, 미얀마 등의 수많은 사건들은 다름을 틀림으로 왜곡하여 일으킨 제노사이드(인종청소)입니다. 성냄은 궁극적으로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무너뜨리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위배합니다.
“하물며”(11절)
‘하물며’는 요나서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직 진술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재화되어 있습니다. 네가 박넝쿨을 사랑한다면 사랑 많은 나는 얼마나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겠느냐? 요나서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번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하고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친백성인 이스라엘 얼마나 더 사랑하겠는가? 예수님은 ‘하물며’를 통해 비교할 수 없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요나는 ‘하물며’로 마무리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며, 요나는 소명자로 삼으신 본의다. 우리는 ‘하물며’의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묵상할 주제
1. 화를 낸 적이 있다면, 왜 그랬는지 궁금히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마음으로 삶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3. 공의와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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