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3. 버가모교회
3. 버가모교회(2:12-17)
[본문]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설교]
-서론: 버가모는 어떤 곳인가?
버가모는 버가보를 창시한 페르가무스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버가모가 숭배하는 공식 여신은 아테나 니케포루스(Athena Nicephorus)입니다. 여신 아테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딸로 전쟁의 여신이었습니다. 아마도 전쟁의 여신을 주신으로 섬기는 버가모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진정한 용사로서의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버가모는 로마로 편입되기 전 앗탈루스 왕조는 그리스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주전 3세기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고, 주전 133년에는 로마에 편입시켜 버렸습니다. 주전 230년 켈트족이 침입해 올 때 대패시킨 전적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로 인해 버가모는 승리를 기념해 거대한 제우스 제단이 세워집니다. 규모가 상당하여 제사장들을 교대로 구성하여 매일 24시간 제우스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버가모에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 버금가는 거대한 도서관이 존재했습니다. 수많은 책으로 인해 세계의 정보와 지식이 이곳에 쌓였고, 제우스와 그의 딸 아테나를 섬기는 거대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지만 버가모 안에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버가모 인구는 약 18에서 20만 정도로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고대세계에서 20만은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제우스의 딸이며 전쟁의 여신 아테나]
버가모에 말씀하시는 예수님
12절에서 주님은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선 1:16에서 주님의 모습을 소개할 때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말합니다.
- 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입에서 나오는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굳이 ‘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이필찬교수는 ‘그리스도를 우주적 심판자로 묘사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검’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롬파이아(ῥομφαία)’는 길이가 1.5m에 이르는 대검으로 상대방의 몸을 두 댕강을 내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강력한 공격을 할 때 사용합니다. 트랴키야 인들이 사용했던 검으로 로마정예군들이 몇 번을 패해야 했던 무서운 검 중의 하나입니다. 왜 주님은 자신을 강력한 살상용 무기였던 대검을 입에서 내는 분으로 묘사했을까요? 우리는 다음의 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가모교회가 처한 상황: 칭찬
먼저,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곳에 안디바라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안디바는 죽음을 당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고, 그 신실함을 지켰습니다. 주님은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살았던 안디바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안디바 뿐 아니라 많은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이 신실하고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고 봅니다.
버가모교회가 처한 상황: 책망
그런데 주님은 곧바로 버가모교회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 출애굽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모압의 발락이 발람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시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다 돈을 많이 주자 유혹되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갑니다. 이때 갑자기 타고가던 당나귀를 뒷걸음 치면서 벽에 발람을 붙이고 밀쳐버립니다. 화가나 발람이 당나귀를 때리자 당나귀가 자신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들고 죽이려고 한다고 갑자기 말을 합니다. 그때서야 발람은 저주하러 갔다가 오히려 축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돈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발람은 발락에게 한 가지 묘책을 줍니다. 미디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추천해 우상에 예배하는 자리에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들을 초대하여 행음하게 만듭니다. 그로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엄중한 벌을 받게 됩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른다는 말은 돈을 위해 하나님을 팔고, 음행을 저지르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육적인 음행뿐 아니라 영적인 음행이 함께 포함된 것입니다. 니골라당 역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된 증인이 있었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우상숭배의 자리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서머나교회는 육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버가모교회는 육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리함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믿음을 저버린 것입니다.
버가모교회가 처한 상황: 경고
이제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이것은 경고입니다. 주님께서 버가모교회를 향해 몸을 두 동강을 낼 수 있는 강력한 검인 롬파이아로 버가모 교회와 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 역시 민수기 22장의 내용와 일치합니다. 만약 나귀가 피하지 않았다면 발람은 천사의 칼에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버가모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칼로 교회를 박살내 버리겠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종종 ‘바른 교리를 알고 있고, 순수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바른 진리를 안다해도 바른 진리로 살지 못한다면 역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진리를 앎과 진리를 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앎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로 심판하십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한 교회, 부유함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버린 교회였던 것입니다.
버가모교회가 처한 상황: 약속
그렇다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온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만나는 출애굽 때 내렸던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의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만나는 마지막에 일어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인해 차려진 ‘메시아적 축제와 만찬’을 말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나라를 잃은 속국으로 살았던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다윗의 아들인 메시아가 도래하여 자신들에게 모세가 주었던 그 만나를 먹게 할 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흰 돌’은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상당히 난감해 합니다.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구약적 의미로 광야에서 만나와 함께 있는 보석이나 대제사장 가슴에 있는 보석. 돌
2) 고대 재판에서 심판관들이 심판을 위해 던졌던 흰 돌과 검은 돌
3) 축제 때 입장을 위한 티켓용 돌
4)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오는 것으로 비밀스런 이름이 새겨진 부적 돌
5) 검투사들에게 자유의 표시로 주어진 돌
6) 아스클레피오스의 제식에 사용된 이름 새긴 돌
7) 버가모에서 유행했던 쉽게 닳아 없어지는 양피지와 대조적인 영속적으로 유지되는 돌
학자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본문만 가지고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지만 요한계시록 전반에 나타난 의미로 볼 때 ‘흰 돌’은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표, 또는 주님의 종말론적 만찬(만나)에 초대되는 초대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계시록 안에서 흰색은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곳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나타냅니다. 3:12로 가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는 약속에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런데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표현이 요한계시록 안에는 유독 빈번하게 보입니다.
-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요한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이상의 구절들을 볼 때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어느 편에 가담하고 그곳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흰 돌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순수하게 믿음을 지킨 이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뜻이 됩니다.
“고대 사회나 구약에서 어떤 다른 사람 특별히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이크 S. 키너라는 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비록 버가모에서 대부분의 건축 재료들이 진한 갈색의 화강암이었지만, 그 도시는 흰 대리석을 비문에 사용하셨다. 이교 신들은 때때로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숭배자들에게 새 이름들을 수여하였다. 이스라엘 역사에도, 이름의 변화는 종종 약속과 관련이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해 세상을 섬길 것이냐, 아니면 나(예수)를 섬길 것이냐 묻고 계십니다. 마치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바알의 너희 신이며 바알에게 가고,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의 신이면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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