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9 물과 포도주
물과 포도주
요한복음 2:1-9
인도의 지혜로운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신하가 지혜가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렇게 하마 약속하고 장님 여섯과 코끼리를 가지고 오라고 명했습니다. 여섯명의 장님들은 따로따로 서서 코끼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여섯 명의 장님들에게 코끼리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말합니다. 먼저 상아를 만진 코끼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임금님 코끼리는 딱딱하고 긴 무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귀를 만진 장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딱딱하긴요.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와 같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다리를 만진 장님이 말합니다. "임금님, 두 사람은 아직 코끼리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코끼리는 커다란 기둥이나 절굿공이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꼬리를 만진 장님은 "굵은 밧줄 같다"말합니다. 등을 만진 장님은 '평상 같이 평평하다'고 말합니다. 장님들은 자신들이 옳다며 서로 우기며 논쟁을 이어 갔습니다. 임금은 그들을 내 보내고 ‘진리를 안다는 것은 이와 같다’말합니다. 즉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절대하려는 우를 범할 때 왜곡이 일어나고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것을 사자성어로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고 말합니다. 뜻을 풀면 맹인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절대화 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적인 체험은 중독성애 매우 강해서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좀처럼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일단 자신이 책을 읽었다는 자부심에 빠져있고, 그 책에 설득당해 그것이 전부라고 믿어 버립니다. 두 번째 무서운 사람은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는 무식하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청산유수(靑山流水)와 같습니다. 무식하다면 스스로 말 조심을 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식한 사람과 유식한 사람이 싸우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무식한 사람은 아는 게 없어서 자신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유식한 사람은 여러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앞선 세 복음서와는 서술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앞선 세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동일한 관점에서 기록되었다하여 ‘공관복음’이라 부르고 요한 복음은 그냥 요한 복음으로 부릅니다. 아마 네 복음서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에 기꺼이 동의할 것입니다. 그만큼 요한 복음은 색이 완전히 다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연대는 아무리 빨라도 AD70이후이고 대부분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에 기록되었을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요한계시록을 AD91 이후로 보기 때문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복음서에 비해 극심한 핍박과 교회안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딱 하나 입니다.
요한복음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모든 초점은 이 한가지 목적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도 물론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증언하지만 삶과 기적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설교든 기적이든 비유이든 상징이든 오직 한 가지 목적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크게 7가지의 기적 또는 표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기적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2:1-12)
-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6-54)
-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5:1-9)
- 5,000명을 먹이심(6:1-14)
- 물 위를 걸으심(6:16-21)
- 소경을 고치심(9:1-7)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11:38-44)
이 뿐 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는 7가지 자기선언이 있습니다. 그냥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선언이라고 부릅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3. 나는 문이다.(10:7,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4.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7.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7가지 이적과 자기선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언하는 내용들입니다. 왜 요한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강조해야했던 걸까요? 바로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하면서 다양한 이단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고, 핍박 속에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까? 예수님은 우리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진정한 가치가 있는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다시 복음의 원론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시작하자마자 예수님께서 말씀이시며, 하나님이시며, 빛이시며, 생명이시라고 선언하면서 그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요한복음 2:1-11까지의 내용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번째 표적이자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사역을 포괄하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 시작은 물로 포도주로 만든 것입니다. 자, 이제 가나의 혼인잔치로 들어가 봅시다.
2:1은 ‘사흘 째 되던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사흘은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 걸까요? 1:29로 가면 ‘이튼날’이 됩니다. 그러니까 2일째가 됩니다. 35절에 다시 ‘이튿날’ 3일입니다. 43절 다시 ‘이튿날’ 즉 4일째입니다. 그리고 나서 2:1은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날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이 어떤 요일인지 정확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이 7일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유대인들에게 7일은 완전수이자 신성한 숫자입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안식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7일이 시작하는 첫날로 돌아가면 세례요한이 자신이 누구냐고 물으러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즉 사두개인들에게 자신을 광야의 소리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 1:26-27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이제 7일이 되자 그가 오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디에 오셨나요? 결혼 잔치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요? 결혼식을 주관하는 연회장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런데 바로 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포도주가 없다’ 말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정말 이상합니다. 왜 갑자기 마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포도주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요? 하여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이상한 말로 대답합니다.
4절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리아의 말과 예수님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가만히 들어보면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으로 갔을 때 군대귀신이 들려서 무덤에서 거하던 사람의 이야기와 거의 흡사합니다.
마 8: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무엇을 말할까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를 의도하신 구절들입니다.
요한복음 7: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한복음 7: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한복음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대속하실 구원의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이한 이 표현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요?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갑자기 십자가의 구속 사건과 연결시키는 걸까요? 다음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체도하지 않고 하인들에게 시키는대로 하라 말하고 떠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이 여섯이 있는데 그 물을 떠나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말합니다. 연회장은 맛보고 너무나 놀라서 신랑을 찾아가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왜 제야 꺼내 주느냐고 묻습니다.
이곳에는 놀라운 상징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1)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은 먼저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복음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돌 항아리 여섯은 구약 율법에 의거해 부정한 것을 씨는 정결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결은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라야 가능합니다. 이제는 물이 아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5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면서 거듭남은 성령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 두 번째 율법을 상징하는 물이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로 대체됨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7일의 첫날은 세례요한의 물세례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물이 포도주로 바뀜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물은 포도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자체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기쁨의 잔치가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관 복음서에서는 마지막 만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26:17-29, 막 14:22-25, 눅 22:14-23)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성만찬이 없습니다. 다만 13장에 세족식이 있고, 13:26에서 가룟유다에게 떡을 한 조각 적셔서 준다는 표현만 등장합니다. 아마도 성만찬 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숨겼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살과 피로 하나님께 제물이 되어 드려진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즉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잔치를 완성시키시는 분임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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