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13 열두 바구니
열두 바구니
요한복음 6:1-13
오늘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7개의 기적 가운데 4번째 기적입니다. 7가지의 기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2:1-12)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6-54)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5:1-9)
4) 5,000명을 먹이심(6:1-14)
5) 물 위를 걸으심(6:16-21)
6) 소경을 고치심(9:1-7)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11:38-44)
첫 번째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으로 예수님께서 창조자임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린 사건인데 예수님께서 직접가지 않고 말씀으로만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자비의 집이란 뜻의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소위 ‘안식일 논쟁’으로 불리는 사건 중의 하나이며,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네 번째 기적은 오늘 우리가 읽은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의 핵심은 진정한 양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의 답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약간 복잡합니다.
다섯 번째 기적은 예수님께서 폭풍 속에서 요동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호수 위를 걸어가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혼돈과 파괴의 세력을 정복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여섯 번째 기적은 소경을 고치신 사건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기적은 죽은 나사로를 정복하신 사건으로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진짜 기적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기적의 주체가 되신 것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다양한 기적과 사건들, 그리고 예수님의 강화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가? 요한복음은 고난 속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존적 질문의 답입니다. 진정 예수님은 우리가 목숨을 다해 믿을만한 분이신가? 진정한 가치가 있는 분인가? 에 대한 답인 것이죠. 또한 교회가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다양한 견해와 생각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면서 왜곡된 신앙관을 가지된 이들이 일어나면서 교회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한복음은 예수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문제의 답이며,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 네 번째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다시한번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그러자 큰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답’이 되셨던 것입니다. 일단 예수님께 가면 나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군중들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핍절해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2절에서 사용된 두 동사인 ‘따르다’와 ‘보았다’는 미완료시제인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반복적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안에는 예수님의 치유 사건의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많은 기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도록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앉으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해도 이백 데나리온이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당시 근로자의 품삯을 하나도 쓰지 않고 7개월 동안 모은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일당으로 11만원씩 7개월을 계산하면 2310만원이 나옵니다. 이 돈은 필요한 돈이 아니라 부족한 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사람들을 조금씩이라도 먹일 수 있는 돈은 적어도 5천에서 1억 정도 될 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좋으면 사람들을 쭉 훓어 보고 순식간에 밥값을 계산해서 답을 낼 수 있을까요? 빌립은 천재입니다. 아무리 좋은 머리가 있어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침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중얼거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 예수님은 어디서 이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까? 질문하시고, 빌립은 몇 초도 안되어 순식간에 문제를 파악하고 부족한 돈이 최소 이백데나리온이라고 말합니다. 거기다가 안드레는 황당하게도 한 아이의 도시락을 언급하면서... 하기야 뭐 도움도 안 될 것 같네요. 하며 중얼거립니다. 상황을 그려보면 진짜 썰렁하지 않나요. 하여튼 예수님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둘러 앉게 하고 아이의 도시락을 가져와 하나님께 축사 즉 감사기도하시고 앉아있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십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양을 열두 바구니(κόφινος)입니다.
이제 이 본문 속에 담겨진 영적 의미들을 파악해 봅시다.
1. 결핍의 시대
우리는 이 시대가 결핍의 시대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아니 우리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 자체가 결핍 그 자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번이라도 결핍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역사가 발전한다해도 항상 문제는 있었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안고 있었고, 결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배고픔의 문제가 있고, 누군가는 가정의 불화가 있고, 누군가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질병을 안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업의 문제와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로 잠을 자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문제를 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뭔가를 찾아다닙니다. 질병을 고치기 위해 명의를 찾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점쟁이를 찾고, 위급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신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니 사람들이 몰려가지 않을까요?
예수님도 그들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셨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독특하게 이 표현은 현재분사 즉 계속 보고 있는 상태로 표현합니다. 마가복음 8장의 표현을 빌린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굶은지가 사흘이 되어 핍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찬찬히 살폈고 그들이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26절을 참조해 봐도 그들은 배고픔이 극에 달한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문제에 개입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빌립을 시험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빌립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밖으로 드러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 문제를 파악하기는 했으나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이 빌립의 한계입니다. 거기에 안드레가 개입하지만 그 역시 굉장히 문제에 희의적입니다.
2. 예수님의 문제 해결
제자들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직접 답을 주십니다. 먼저 사람들을 앉게 하십니다. 그런데 기이하게 ‘앉는다’는 이 표현은 의자에 앉는다는 말이 아니라 만찬을 먹기 위해 앉는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가 ‘아나페세인’인데 식사 대형으로 약간 편하게 몸을 기대며 앉은 자세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떡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또한 고기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신 원리입니다. 첫 번째는 그들의 소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도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지 없는 포도주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며, 주님은 그것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전제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다는 신뢰 바로 여기에 궁극적 표적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14절에 의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선지자’는 모세가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를 말합니다.
신명기 16:15, 18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바로 ‘그 선지자’였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결핍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사람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만나를 내리게한 모세와 거의 일치합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광야의 만나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사람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는 항상 이랬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진심으로 따르기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먼저한 것입니다. 주님은 무리들에게 영생을 위한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바로 광야에서 내렸던 떡의 참 본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48-51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자 보십시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궁극이 무엇입니까? 곧바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며 ‘나를 먹으라’ 말씀합니다. 그 말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사유하심을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까?
주님의 해결 방법은 이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좀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바로 예수님의 구속사역, 즉 복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결합시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곡물과 과일 등을 통해 육신의 안위를 보장하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에 머물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창조의 완성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3. 열두 바구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1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은 조각은 배부른 후에 남겨진 것으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남겨진 것을 거두니 정확히 열두 바구니입니다. 우리는 열둘이 유대인들에게 완전수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완전한 공동체라는 것을 압니다. 야곱으로부터 시작된 열 두 아들이 열두 지파가 되고, 열두 지파는 다시 열두 사도로 이어집니다. 열둘은 완전한 공동체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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