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창조에서 말라기까지)
이스라엘 역사
(창조에서 말라기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셔서 만드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결국 멸망 당하게 됩니다. 멸망 이후 다시 포로에서 돌아와 나라를 회복하지는 않지만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다 약 100년 동안 하스몬 왕조(중간기)에 의해 독립합니다. 하지만 다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헤롯 가문이 로마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교회를 이끌게 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간략한 역사처럼 보이지만 성경을 처음 읽는 이들에게는 결코 쉬운 역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의 역사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에 걸쳐 블로그에 분산시켜 [구약 역사]라는 이름으로 올렸습니다. 약간의 오타도 있고, 년도도 몇 곳을 수정할 부분이 보입니다. 시간을 내서 해야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역사라는 제목으로 올립니다. 하단에 [구약 역사]태그를 클릭하시면 시대별로 나누어 정리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수정되고 증보될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처음 교회에 발을 듣기 시작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기에 교회가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알고 싶은 마음에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80년대 말 교회에 발을 딛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는 신학 서적이 거의 전무했었습니다. 책의 질도 형편없었고,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복잡한 해설서가 유행이었습니다. 당시는 책을 어렵게 쓰는 게 유행이었고, 그것이 당연했습니다. 저자들은 어렵게 쓰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9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성경 개요에 대해 그럭저럭 간략하게 소개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은 다 아시리라 생각 됩니다. 책의 제목은 <미어즈 성경 핸드북>이었습니다. 그 책을 발견하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왜 아직도 이것을 몰랐는지 신기했고, 사람들은 왜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는지도 의아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07년 4월에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자료가 있지만, 이 책은 훨씬 이전부터 번역 출간된 상태였습니다. 자료를 더 찾아보면 1988년 아가페 출판사에 번역 출간되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제가 발견했던 책은 1988년도 판입니다. 처음엔 책만 보고 그 책이 어떤 책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 여성분이라는 것도 알았고, 주일학교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분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녀는 전문 성경학자는 아니었지만 성경을 어린 학생들에게 명료하게 가르치고 싶은 열망 속에서 성경을 개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저술한 것입니다.
이 책은 생명의말씀사에서 판권을 받아 계속 출간했고 지금도 수정 증보를 통해 계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책 말고도 또 다른 한 권이 있었는데, 헨리 H. 할레이가 저술한 <할레이 성서 핸드북>입니다. 이 책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종교교육부를 통해 195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이 책은 두란노에서 판권을 받아 출판하고 있습니다. 엉거 핸드북 등의 몇 권이 더 있기는 하지만 미어즈와 할레이 성경 핸드북이 많이 팔린 책입니다. 그런데 읽어본 사람들이라며 시대구분이나 주제가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신학서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00부터 2019년까지 20년 동안 출간된 서적은 그 이전에 출간된 모든 책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출판매수는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주일학교는 점점 더 쇠락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혼자서 성경을 공부하고 읽을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테리 홀의 <성경 파노라마>(규장)를 추천합니다.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이미지와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성경을 개략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1998년 고신대에 들어가 처음으로 신학에 입문했을 때 테리 홀의 책은 저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성경은 의외로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또한 준비 없이 성경을 통독할 경우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열왕기와 역대서는 다루는 시대는 비슷하지만 서술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시편에는 모세의 시도 있지만 다윗과 그 이후의 사람들의 시도 들어가 있어서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개론적으로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시의 다양한 문법적 장치들과 표현 방법들을 연구한 책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갑자기 성경 읽기가 힘들어 집니다. 일반 신자들은 굳이 그렇게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공부하고 싶다면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 구입해서 공부하시면 현재보다 더 풍성한 성경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사건과 내용들은 연대기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통독 시에 도움을 주고, 성경의 흐름을 머릿속에 잘 각인 시키기 위함입니다. 두껍고 긴 성경을 읽을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는 지도와 자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성경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각 시대마다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과 흐름을 알려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단숨에 읽고 구약 성경의 전체 흐름을 잡아주기 위함입니다. 한 시간 안에 성경 전체의 흐름을 머릿속에 담아 둘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구약의 사건들과 연대기는 정확하게 연대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들간의 많은 논쟁이 있어서 어느 주장을 따른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보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자들의 견해를 적지 않게 따르고 있음을 밝힙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 연도는 기원전 1446년이나 그 비슷한 시기로 전제할 것이며,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분리된 시기를 기원전 931년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 연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임시적 방편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제 간략한 시대 구분과 사건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세한 소개 글은 각 제목에 맞는 장(chapter)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저는 구약의 역사를 7시대로 구분했습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446-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586)
7. 포로시대(B.C. 586-420?)
7시대로 구분하는 것은 구약의 역사와 흐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위의 구분법을 좀더 구체화 시켜 구약 역사를 개괄할 것이다. 예를 들어 광야 시대는 애굽에서의 생활, 광야에서의 시대로 구분했습니다. 왕국시대 역시 통일-분열-단일왕국 시대로 구분했습니다.
간략한 구약 역사 개요
이곳에서는 구약 역사를 전체적으로 정리 했습니다. 7시대로 구분했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은 각 제목을 따라 이어간다고 보시면 하지만 성경에서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많은 시간 누락된 곳이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내려간 다음 출애굽까지의 시간인데 약 400년 정도의 시간입니다. 창세기 50장에서 곧바로 출애굽기로 넘어가면 모세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창세기와 출애굽기 1장과의 시간은 400년 정도의 시간이 빠져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1. 창조시대(B.C. ?-2200?)
성경은 천지창조로 시작하고(창세기)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요한계시록)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의 이야기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즉 역사입니다. 이제 성경 속에 소개되는 역사를 찾아 떠나가 보겠습니다. 창조시대는 창세기 1-11장까지입니다. 분량으로 보면 매우 적지만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칠 일째 되는 안식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두었습니다.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거역하고 먹게 됩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지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임을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창 4) 그 후 셋을 낳아 믿음의 사람들이 대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번성할수록 죄를 범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하시고 모든 사람을 홍수로 심판합니다. 홍수 후 사람들이 번성하여 바벨탑을 짓고 또 다시 흩어집니다.
2. 족장시대(B.C. 2200?-1847)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십니다.(창 12) 아브람과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명명할 때 ‘나는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파스칼의 고백으로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지만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싫어하여 애굽에 팔아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함으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기근 때에 애곱의 형제들은 애굽에 내려가 요셉을 만나고 결국 요셉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창세기를 끝이 납니다.
3. 광야시대(B.C. 1446-1400?)
하나님은 레위지파 모세를 준비시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시내 산에 도착합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짓는다.(출애굽기) 그 외에도 많은 율법을 명령하십니다.(레위기) 모세는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내 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씩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배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에서 죽게 됩니다.(민수기) 마지막 모압광야에 도착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한 다음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고 다음 숨을 거둡니다.(신명기)
4. 사사시대(B.C. 1400-1050)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시작합니다.(여호수아) 여호수아에 의해 시작된 가나안 정복 전쟁은 7년에 걸쳐 완결됩니다.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 받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샬롬(평화)은 아직 요원합니다. 여호수아 이후 각 지파별로 정복전쟁을 감행하지만 불완전한 정복이 되고 맙니다.(사사기) 사사기는 실패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은 용맹하게 전쟁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라엘은 가나안화가 되어 우상 숭배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결국 열한 지파가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여 거의 멸족 상태까지 이릅니다.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사시대를 종결하고 왕을 세웁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기에 ‘왕궁(kingdom)’으로 부릅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은 각 40년 동안 통치하여 120년을 통치합니다. 분열되지 않은 시기라하여 통일왕국시대로 구분합니다. 초대왕은 베냐민 지파의 사울입니다. 이스라엘 초기 왕은 앞으로 전개될 다른 왕들의 전제이자 선악의 모범이 되는 왕들입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폐위 하시고, 목자였던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웁니다. 다윗 때에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이전하여 예루살렘 시대가 시작됩니다.(사무엘상하)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됩니다.(열왕기 상)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뛰어난 왕이었지만 후기에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짓지 못한 성전을 완성하여 성막에서 성전시대로 전환이 일어납니다.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분열왕국시대 개요
분열왕국시기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는 적대적이었고, 중간은 연합을 하고, 후반기는 다시 적대적으로 바뀝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보존됩니다. 70년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재건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중간기가 이어집니다. 필자는 분열왕국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기술해 나가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 세 시대의 흐름과 사건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용어의 혼돈을 막기 위해 유다지파 중심의 남쪽은 ‘남유다’로, 에브라임 지파 중심의 북쪽은 ‘북이스라엘’로 사용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 의해 분리해 나간 북쪽 지파를 일컫는 말이며, 이스라엘은 통일된 이스라엘 전체를 표현할 때 사용하겠습니다.
6.1 분열왕국시대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만 짐을 가볍게 해달라는 장로들의 요청을 거절하여 북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됩니다. 결국 북쪽은 북이스라엘이 되고, 남쪽은 남유다로 남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으로 제사 지내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황금 송아지 상을 세우고 제사하도록 합니다. 이것을 시작은 깊은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어 갑니다. 성경은 이를 ‘여로보암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초기에 두 나라는 서로 앙숙(怏宿)사이가 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치릅니다. 여호사밧 시대가 되면서 원수처럼 지내던 두 나라는 친구가 되어 연합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시기를 분열왕국 제2의 시기로 봅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했지만 아합왕과 친분을 쌓으면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남유다에 바알숭배 사상이 강력한 힘을 발위하기 시작합니다. 그로인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왕]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아하시야-요람
[남유다왕]
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여호람-하아시야-(아달랴)
6.2 분열왕국시대
아합(오므리 왕조)이후 북이스라엘은 급속하게 멸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이후에 일어난 왕들은 결코 아합 왕보다 앞서거나 뛰어나지 못합니다. 후에 여로보암 2세가 잠시 동안 번영기를 누리지만 권력의 공백 속에서 누리는 폭풍 전야와 같은 시기였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된 북이스라엘은 20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운명을 마무리합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연합함으로 바알숭배 사상이 온 나라를 뒤덮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적지 않은 왕들이 종교개혁을 일으키지만 멸망의 길을 돌이키지는 못합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남유다는 홀로 남겨집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아하시야-요람-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여로보암2세-스가랴-살룸-므나헴-베가-브가히야-호세아-멸망(722)
[남유다]
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히스기야
6.3 분열왕국시대3(B.C. 722-586)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다음 남유다만 홀로 남겨집니다. 그래서 단일왕국시대 또는 생존왕국 시대로 부르기도 합니다.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남유다는 136년 정도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나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도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이 때의 상황을 잘 기록한 성경이 <예레미야>와 <열왕기하>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병에 걸려 기도함으로 나은 것을 축하하러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겸손하지 못한 행위였고, 그로인해 유다가 멸망당할 것을 계시 받게 됩니다. 이후 므낫세, 암몬 왕이 등극하지만 악하고 어리석은 왕들이었습니다. 요시아가 종교개혁을 통해 바로 세우려했지만 기우는 멸망의 도가니는 세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리석고 악한 왕들이 일어남으로 바벨론에 의해 운명을 다하게 됩니다.
[남유다] 히스기야-므낫세-암몬-요시아-여호아하스-여호야김
7. 포로 및 재건 시대(722-420?)
포로시기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다시 귀환하여 재건하는 시기까지 포함한다. 3차에 의해 포로가 되고, 다시 3차에 걸쳐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 다니엘과 세 친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계시를 받고 예언합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후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함으로 마무리 됩니다. 다니엘서는 바벨론 시대부터 페르시아 시대까지 시대를 포괄합니다. 환시를 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게 됩니다. 바사(페르시아)는 바벨론을 완전히 정복한 다음 바벨론으로 끌려온 사람들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로인해 인해 이스라엘도 자원자에 한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고,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구약의 예언은 끝이 납니다. 그 이후의 시간은 [신구약 중간기]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1. 창조시대(B.C. ?-2200?)
1. 창조시대(?-2200?)
모든 학습이 그렇듯 제대로 머릿속에 담아 두기 위해서는 반복이 중요합니다. 창조시대를 시작하기 앞서서 다시 시대구분표를 읽어 주십시오. 대략적인 연도이니 이렇게 역사가 흘러갔구나 정도로만 참조하십시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446-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7. 포로시대(B.C. 722-420?)
1.1 창조시대(B.C. ?-2200?) 개요
앞선 개요에서 설명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훑어 읽어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창조시대는 창조부터 바벨탑까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성경은 천지창조로 시작하고(창세기)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요한계시록)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의 이야기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즉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 성경 속에 소개되는 역사를 찾아 떠나가 보겠습니다. 창조시대는 분류되는 창세기 1-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분량으로 보면 매우 적지만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칠 일째 되는 안식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두었습니다.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거역하고 먹게 됩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지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임을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창 4) 그 후 셋을 낳아 믿음의 사람들이 대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번성할수록 죄를 범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하시고 모든 사람을 홍수로 심판합니다. 홍수 후 사람들이 번성하여 바벨탑을 짓고 또 다시 흩어집니다.
창조시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장은 창조에서 사람들의 번성까지 기록되고, 6-11장에서는 노아의 홍수와 홍수 이후 바벨탑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창조에서 노아까지
창조와 타락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육일동안 창조하셨고, 칠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십니다. 마지막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통치하도록 소명을 주셨습니다.(창 1) 하지만 인간들은 뱀의 유혹에 빠져 먹지 말라던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타락하게 됩니다.(창 3)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하고 서로 부끄러워하여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시고, 아담과 하와도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에덴동산에서 내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창 3:24)에 그룹(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살인: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창 4)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길렀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가인의 제사를 거절되었고, 아벨의 제사만 열납되었습니다. 가인은 화가나서 동생 아벨을 죽였고, 하나님께 유리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벌을 피해 ‘에덴 동쪽 놋 땅’(창 4:16)에 거주하고 아들의 이름인 에녹의 이름을 따서 성을 짓고 거주합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에녹은 5장의 셋의 후손과 다른 에녹입니다. 그곳에서 문명이 발달하지만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게 됩니다. 특히 라멕은 가인보다 더한 살인자였습니다.
셋의 후손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한 셋을 허락하시고, 셋을 통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게 합니다. 셋의 후손인 에노스 시대에 사람들이 여호와를 예배합니다.(창 4:25-26) 하나님은 셋을 통해 믿음의 족보를 이어가게 합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족보는 현대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를 표로 그려보겠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명령의 성취입니다. 동시에 말씀을 거역한 아담과 하와에게 내린 죽음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죽음과 고통이 지배하는 땅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은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세상은 번성할수록 더욱 깊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고, 므두셀라는 가장 장수했습니다.(969살) 가인도 아들은 낳아 에녹이라 불렀고,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쌓았습니다. 라멕도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으로 동명이인입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은 살인자였지만 셋의 후손 라멕은 믿음의 사람 노아를 낳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았습니다.(창 5:29) 5장에 타나난 출생년도를 합하면 1556년이 나옵니다. 이 해는 노아가 500세가 되어 자녀를 낳았다는 기술에 의한 것입니다. 이곳에 백을 더하면, 즉 노아가 육백세가 되던 해에 홍수가 일어납니다.(창 7:11) 홍수가 일어난 해(1656년)은 가장 많은 장수를 누린 므두셀라가 죽은 해이기도 합니다.
1.3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 사건은 성경의 전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심판입니다. 홍수 사건은 창조와 역행하는 반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창조가 혼돈과 무에서 질서와 충만으로 나아갔다면, 홍수는 질서와 충만에서 다시 혼돈과 무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궁창을 중심으로 아래와 위에 머물러야할 물이 궁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물속에서 솟아오른 땅이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 혼돈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를 내릴 것이니 방주를 준비하라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명령대로 순종했고,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해 둘째 달 열 이렛날에 홍수가 시작됩니다.(7:11) 사십 주야 비가 땅에 쏟아 졌고 모든 땅은 물에 잠깁니다. 땅 위에서 움직이는 생물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오직 방주에 들어갔던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만 살아남습니다. 일년 후에 땅에서 물이 걷힙니다.(8:13)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다시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8:17) 약속하십니다. 노아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합니다.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약속하시고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농사를 짓는데 하필이면 포도농사를 짓습니다. 어느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을 잡니다. 이 모습을 본 함이 다른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놀리며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으로 아버지 노아의 몸(수치)을 가려줍니다. 그로 인해 함은 아들(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들어가게 될 약속의 땅의 이름이며, 그곳에 사는 족속들의 대표이름입니다.노아는 구백오십 세에 숨을 거둡니다.(9:29)
1.4 홍수 이후와 바벨탑
창세기 10장은 홍수 이후 민족들이 번성하고 퍼져나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함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로 퍼져나간다는 내용입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입니다.(10:6) 구스는 아프리카의 옛 지명이며, 미스라임은 애굽을 뜻하는데 한글성경은 곧바로 ‘애굽’으로 번역했습니다. 가나안은 가나안 족속의 조상입니다. 또한 구스가 낳은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이었고, 시날 땅에 거주합니다. 그곳은 후에 앗수르와 바벨론이 시작됩니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족보들은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말해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조상들 역시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그곳은 바벨론 땅의 옛 이름입니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벨탑 사건은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땅에 생육하고번성하여 충만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인처럼 한 곳에 머물서는 안 되고 흩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인에게 내린 벌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놋 땅(유리하는 곳)에 성을 쌓고 자신들만의 문명을 개척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가인의 에녹 성 사건과 흡사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가인의 성을 종말(홍수)까지 심판하지 않았지만 바벨탑은 즉각 흩으심으로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저주인 동시에 축복인 것입니다. 그들을 흩으심으로 땅에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가인과 인류가 거역한 유리하는 벌을 한 사람이 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그네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은 아브라함을 불러내기 위한 당시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셈의 족보(11:10-26)가 등장하고, 다시 셈의 후손인 데라의 족보(11:27-32)가 소개됩니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습니다. 하란은 후에 아브라함과 가나안을 함께 들어갈 롯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지금은 아브람)은 사래(후에는 사라)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데라는 무슨 일인지 자녀들을 데리고 하란으로 거주하고 그곳에서 205세가 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11:32) 이것으로 창조시대는 막을 내리고 족장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2. 족장시대(B.C. 2200?-1847)
2. 족장시대(B.C. 2200?-1847)
자, 다시 한 번 구약 7시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난 번에는 창조에서 바벨탑까지의 창조시대를 살펴봤습니다. 먼저 아래의 구분표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머릿속에 담아 두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446-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7. 포로시대(B.C. 722-420?)
2.1 족장시대(B.C. 2200?-1847) 개요
구약의 역사는 단지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역사를 읽듯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11장까지는 창조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타락 이후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되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했지만 인류를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인류를 구속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창세기 12장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공동체 안에 있던 아브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십니다.(창 12)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면 명성과 자녀와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했고,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집을 떠났습니다. 결국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살이었고, 조카 롯도 함께 가나안에 도착합니다. 25년을 더 기다린 후에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이삭을 낳습니다.(창 21)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에서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원이 되는 열두 아들을 낳습니다.(창 29-30)
아브람과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명명할 때 ‘나는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파스칼의 고백으로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지만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싫어하여 애굽에 팔아 버립니다.(창 37)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함으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창 41) 기근 때에 애곱의 형제들은 애굽에 내려가 요셉을 만나고 결국 요셉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창세기를 끝이 납니다.(창 46장)
2.2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생애는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소명에서 이삭을 낳기까지이며, 후반부는 이삭을 낳은 이후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명을 받고 롯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이 데라와 함께 언제 갈대아 우르에서 나왔는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11장 데라의 족보에 아브람과 사래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갈대아 우르에서 결혼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75세에 하란에 오기까지 적어도 하란에서 30년 가까이 지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에 왔고, 그곳에서 머물게 됩니다.
얼마 후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옵니다.(창 12:10)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애굽 왕 바로에게 사래를 빼앗기게 됩니다. 대신 많은 제물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고, 바로는 놀라 아브람을 불러 야단을 치고 사래를 내 보냅니다. 아브람은 사래와 함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갑니다. 이 사건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사건의 모형이 되며, 예수님도 애굽에 피산을 갔다 갈릴리로 되돌아가는 사건의 모형 역할을 합니다.(마 1) 애굽에서 많은 재물은 얻은 아브람과 롯은 많은 양 때문에 다투게 되고 롯은 요단 동편으로 분가하게 됩니다.(13장) 그러나 롯은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인’(창 13:13)들이었던 소돔 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이 땅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롯과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아 가나안에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창 14장)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상 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이 연합군을 형성해 가나안을 쳐들어 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돌라오멜을 십이 년을 섬기다 십삼 년에 배반합니다. 일년 후인 십사 년에 그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하필이면 전쟁이 일어난 소돔 성에 롯이 들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소돔이 패하면서 롯도 함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기르던 318명의 사병과 함께 롯을 구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살렘(후에는 예루살렘으로 부름) 왕이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전쟁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다시 후손을 약속하시고 햇불언약을 맺습니다.(창 15)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기다리지 못하고 애굽에서 데려온 자신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스마엘이 부릅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을 임신한 사갈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를 조롱하고 쫓겨납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찾아가 다시 사래에게 돌아가라 명하고, 하나님은 할례 언약을 맺게 됩니다.(창 17) 어느 날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아브라함은 잔치를 베풀어 대접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창 18:10) 그러나 사라는 웃고 믿지 않습니다. 이후에 사라의 웃음을 따라 웃음의 뜻을 가진 ‘이삭’이란 이름으로 짓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멸당 당할 것을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천사들은 롯을 소돔에서 끌어내 도망가게 합니다.(창 19) 하지만 사위들을 믿지 않고 나가지 않습니다. 롯의 아내를 되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되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됩니다.(창 19:26) 롯와 두 딸이 겨우 피해 산 속 동굴에 거합니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동침하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큰 딸은 아들을 낳아 모압이라 하여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작은 딸은 아이를 낳아 벤암미라하여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가 되자 이삭을 낳습니다.(창 21) 사라는 이삭을 낳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라고 행복해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지시할 땅에 바치라고 말합니다.(창 22) 그 산은 모리아 산이며, 후에 모리아 산 아리우나 타작 마당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삼일 동안 걸어서 모리아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번제로 이삭을 드립니다. 칼로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늘에서 찬사가 내려와 막습니다. 아브라함은 근처에서 숫양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대신 제물로 바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의미로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합니다. ‘이레’는 ‘보다’의 뜻인 ‘라아’에서 왔으며, 여호와 이레의 뜻은 ‘여호와께서 보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나타나신다’는 뜻입니다. 사라가 127살에 죽습니다.(창 23) 아브라함은 헤브론 헷 족속을 찾아가 에브론의 밭과 그곳에 있는 은 사백 세겔로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합니다. 성경은 이삭의 결혼 이야기(창 24)를 하다 다시 아브라함의 재혼과 죽음 이야기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창 25)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고 사라를 묻은 막벨라 굴에 장사됩니다.(창 25:9)
2.3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 아브라함이 백세 되던 해에 출생합니다. 기적으로 태어난 이삭은 17세 즈음에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려질 뻔합니다.(창 22장)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자 이삭을 결혼시킵니다. 종을 보내 나홀의 손녀인 리브가를 데려옵니다. 리브가는 결혼 한 후 20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여인이었습니다.(창 25:19-21) 이삭이 기도하자 리브가는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습니다. 가나안에 아브라함때처럼 기근이 찾아 옵니다. 이삭은 블레셋으로 내려갔다고 애굽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난 애굽으로 가지 말고 약속의 땅에 머물라 하십니다.(창 26:2) 블레셋 땅에 있는 동안 아비멜렉에게 리브가를 빼앗길 뻔하지만 다행히 빼앗기지 않고 쫓겨납니다. 이삭이 농사를 짓고 백 백의 수확을 얻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해서 우물을 막아 버립니다. 다른 곳으로 옮긴 이삭은 다시 우물을 파지만 다시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와 메워 버립니다. 이럿게 네 번에 걸쳐 도망을 다니다 르호봇에 도착에 우물을 파고 그곳에 거합니다. 다시 브엘세바로 올라가 거하자 하나님께서 나타난 복을 주시며, 종들이 다시 우물을 팝니다. 당시 우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것이었고, 가축과 농사를 짓기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베멜렉과 종들이 찾아와 화해를 신청하고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라 짓습니다.
이삭은 에서의 장자권을 사고 축복을 가로채 도망하는 야곱을 축복해줍니다.(창 28) 하란으로 떠날 야곱의 나이가 성경 속 나이를 기준으로 할 때 77세였습니다. 이후 야곱은 하란으로 가서 20년을 지내게 됩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잠시 에서의 분이 풀릴 때까지만 있으라고 했지만 시간을 그렇게 흘러가 버립니다. 결국 야곱이 다시 돌아왔을 때 리브가는 죽었고, 이삭만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삭의 죽음은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오고, 세겜 디나 강간 사건이 터친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180세로 눈을 감습니다.(창 35:28)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정황상 이삭의 매장지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장사된 막벨라 굴로 보입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 속에 끼어있는 형태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그림자와 같고, 아브라함과 야곱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2.4 야곱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두 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의 기원이 되는 열두 지파의 열 두 아들을 낳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 때문입니다. 야곱 이야기는 요셉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액자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족장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마무리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를 야곱의 이야기에서 꺼내 따로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것은 네 번째 족장 요셉에서 다루겠습니다. 이제 야곱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야곱의 출생
야곱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죽음 직후 시작합니다.(창 25)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와 결혼합니다.(창 25:20)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이삭이 기도합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낳은 때 이삭의 나이가 ‘육십 세’(창 25:26)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이십 년을 자녀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에서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싸웠습니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 인데 야곱이 먼저 나오기 위해 에서의 뒷발꿈치를 잡습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전신 털옷 같고 붉다 하여 ‘붉다’는 뜻의 ‘에서’라는 이름을 줍니다. 둘째인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하여 ‘야곱’이라 짓습니다. 은어적으로 ‘발꿈치를 잡다’는 ‘사기뿐’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사기꾼인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이름대로 사기를 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장자권 탈취 사건
에서는 자라서 사냥꾼이 됩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파 달라고 하자 야곱은 당돌하게 ‘형의 장자권을 팥죽과 바꾸자’고 말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에 마음이 없어서 ‘그러자’며 말하고 팥죽을 받아먹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첫 번째 사기인 에서의 장자권 탈취 사건입니다.(창 25)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가까워 온줄 알고 장자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서 잡아온 고기로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삭은 이상하게 에서만 좋아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 리브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둘째 아들, 그러니까 막내를 불러 에서처럼 꾸미고 이삭에게 들어가라 말합니다. 처음에는 겁을 냈지만 그래도 축복을 받을 생각에 들어갑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야곱의 손에 들려 이삭에게 야곱을 들여보냅니다. 이삭은 목소리를 야곱인데 피부는 에서라며 축복을 해줍니다.(창 27)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아버지가 있다니. 참 말도 안 나오네요. 이삭은 육신의 눈이 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음을 알고도 장자인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리브가와 야곱의 간교함을 이용하여 이삭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인간은 악하고, 어리석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결국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안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을 우연히 듣게 된 리브가를 자신의 오빤 라반에게 야곱을 보냅니다. 이삭은 야곱이 떠나기 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이십 년이란 세월을 하란에서 보내게 됩니다.
하란에서 이십 년
야곱을 피해 밧단아람-하란으로 도망가다 벧엘에서 밤을 맞이합니다. 돌을 베개삼아 잠을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보이고,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사닥다리는 하늘에 닿았고, 사닥다리 끝에 하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 누워있는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며, 이곳에 돌아오기까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돌을 기둥 삼아 기름을 붓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하고 다시 떠납니다. 벧엘의 원래 이름을 루스입니다. 루스는 히브리어로 아몬드(감복숭아, 살구)를 뜻하는 솨케드이고, 고대 셈어로 ‘루스’입니다. 즉 루스는 ‘아몬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 아몬드가 많이 재배 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하란에 도착하자 양들에게 물을 먹이는 한 여인을 도와 줍니다.(창 29) 그 여인의 이름은 후에 결혼하게 될 야곱의 아내 라헬입니다. 한 달 동안 공짜로 입혀주고 먹여주다 일을 시킵니다. 라반은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소개지켜 주고 아내를 삼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출중한 외모와 눈매를 가진 라헬을 선택합니다. 7년 동안 열심히 일해 드디어 결혼에 이릅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라헬이 아닌 호박같은 레아였습니다. 화가 난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 어떻게 이럴 수 있으냐며 따지지만 라반은 태연하게 여기서는 다 이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라헬을 얻고 싶다면 다시 7년을 일하라고 말합니다.(창 29:27) 이렇게 하면 다시 칠년을 채웁니다. 이때 두 딸의 여종 실바와 빌하는 주어 네 명의 아내를 갖게 됩니다. 이들을 통해 열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디나를 얻게 됩니다. 무려 14년 동안 두 아내를 얻기 위해 야곱은 라반의 종이 되어 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요셉까지 낳은 시간이 단지 7년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의 추론을 통해 개략적인 시간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막내인 베냐민은 하란이 아닌 가나안으로 돌아가 벧엘로 올라간 후에 에브랏(베들레헴) 길에서 태어납니다.(창 35:16-22)
14년 동안 라반에게 봉사한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 이제는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창 30:25) 라반은 야곱이 돌아가면 야곱을 통해 들어왔던 복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야곱에게 품삯을 주며 일을 시킵니다. 야곱은 품삯을 주지 말고 라반의 양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어 그것들이 있으면 품삯을 대신해 달라고 한다. 양이나 염소는 점이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에 라반은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렇게하여 아롱진 것들을 골라내어 사흘 길을 띄어 분리시킵니다. 야곱은 라반의 양떼를 치면서 신풍나무(플라타너스) 등의 나무를 임신한 양들 앞에 놓게 하여 새끼를 낳게 하니 점 있는 아롱진 새끼를 낳습니다. 이들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됩니다. 결국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창 30:43)아지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야곱
이것을 지켜본 라반과 아들들은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꿈에 야곱에게 나타난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 31:13)고 명령합니다. 야곱은 라반과 아들들이 양털깍을 간 사이 라반을 피해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소식을 듣고 뒷 쫓아온 라반은 야곱을 쫓아갑니다. 그러나 그 전날 하나님은 라반에게 야곱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라반은 야곱을 만나 야단을 치고 왜 드라빔을 훔쳐 가냐고 따집니다. 드라빔을 가진 자는 그 집의 모든 소유를 가질 권리를 획득하기 때문에 라헬이 훔쳐 간 것입니다. 드라빔을 찾지 못한 라반은 야곱과 서로 경계를 넘어오지 못하는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혹시 야곱이 가져갔을지 모를 드라빔의 효력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브니엘 사건
이제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접경 마하나임에 접어들자 형 에서에게 사자를 먼저 보냅니다. 그들이 돌아와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답답해진 야곱은 얍복강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밤에 어떤 사람들이 야곱과 씨름하고 야곱은 그에게 복을 빕니다. 그 사람이 허벅지 관절을 쳐서 걷지 못하게 하지만 야곱은 복을 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고 떠납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야곱은 그가 사람의 모습으로 온 하나님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에서를 만나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화해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에서와 화해한 야곱은 한껏 들떠 세겜 근처에 장막을 칩니다. 장막을 친 곳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땅이었는데 그곳을 백 크시타에 구입하고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겉으론 하나님을 높이는 듯하지만 거만하고 태만해진 이스라엘의 마음이 보입니다. 결국 디나가 세겜 성에 자주 드나들다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합니다. 그 일로 디나의 오빠들은 분노하게 되고, 할례를 받으면 결혼 시켜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삼일 째 되는 날 야곱의 아들이 세겜 성에 들어가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방화를 합니다. 결국 야곱은 위기감을 느끼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야곱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 35)라고 말합니다.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란으로 도망갈 때 약속했던 것을 그제야 지키게 됩니다. 그제서야 성경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창 35:9)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제서야 야곱을 다시 만나고 복을 주십니다.
벧엘서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으로 내려 갑니다. 왜 그곳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가는 길에 라헬은 산통을 겪고 마지막 베냐민을 낳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요셉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와 뒤섞여 나갑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 슬퍼하지만 마지막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타납니다.(창 45) 야곱의 가족들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46)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고, 고센 땅에 머물게 됩니다. 노년이 되어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창 49)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 대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대신하게 입양을 합니다. 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레위가 빠지고, 요셉의 두 아들이 추가되어 열두 지파가 만들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①르우벤 ②시므온 ③유다 ④단 ⑤납달리 ⑥갓 ⑦아셀 ⑧잇사갈 ⑨스블론 요셉(⑩에브라임 ⑪므낫세) ⑫베냐민입니다. 자녀들을 축복한 야곱은 애굽에서 눈을 감습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막벨라 굴에 묻습니다.(창 50) 창세기는 야곱의 죽음으로 사실 끝이 납니다. 야곱의 죽음 이후 요셉의 죽음까지 기록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이제 요셉 이야기도 되돌아 가 보겠습니다.
2.5 요셉
요셉 이야기는 다시 야곱이 하란에 있을 때로 되돌아갑니다. 요셉은 야곱의 실질적인 장자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라헬만은 자신의 아내로 생각했고, 레아는 아내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요셉에게 준 긴 곳이나 요셉이 죽었을 때 야곱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납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르우벤과 요셉을 비교합니다.
[대상 5:1-2]
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는 결국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버린 이유가 됩니다.
자, 이제 이러한 전제 속에서 요셉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요셉은 라헬에게 태어난 요셉의 열두 번째 자녀이며,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베냐민이 태어나기 전까지 요셉은 야곱의 막내인 것이죠. 이것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막내라는 것도 작용해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됩니다. 요셉은 30장에서 태어난 이야기만 나오고 중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37장에서 ‘십칠 세’(37:2)의 소년으로 등장합니다. 성경은 요셉에 대해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여 채색옷(원문에는 긴옷)을 해 입혔다고 말합니다.(창 37:3) 형들은 그로 인해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더욱이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과 부모들까지 절하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로인해 형들은 더욱 요셉을 미우하고 죽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이 잇는 곳으로 심부름을 시킵니다. 형들은 세겜에 있도 도단으로 옮긴 이후였습니다. 요셉은 도단에 있는 형들을 찾아갑니다.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형들은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라고 말하며 죽이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구덩이에 던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깁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고,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아들들의 거짓말을 듣고 싶히 통곡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베냐민을 더욱 아끼고 품안에 품게 됩니다. 후에 애굽에 베냐민을 데려갈 때 야곱은 절규하듯 고통스러워하지만 결단하고 베냐민을 애굽에 내려 보냅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됩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한 덕에 주인의 인정을 받고 모든 것을 총괄하는 총무가 됩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해 달아나자 보디발의 아내는 거짓말을 하여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창 39) 감옥에 갇힌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간수장의 신뢰를 얻고 많은 일을 맡깁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습니다.(창 39:23) 감옥에 있을 때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들어옵니다. 두 사람 모두 꿈을 꾸고 요셉에게 해몽을 부탁합니다. 꿈을 들은 요셉은 해몽을 합니다. 해몽한대로 술 관원장은 풀려나고, 떡 관원장은 사형을 당해 죽임을 당합니다.(창 40장)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가면 풀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어 버립니다.(창 40:23)
그러나 ‘만 이 년 후에’(창 41:1) 바로가 꿈을 꿉니다. 기이한 꿈이라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 때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해 요셉을 감옥에서 끌어냅니다. 바로의 꿈을 들은 요셉은 곧바로 해석해 줍니다. 요셉의 해몽을 들은 바로는 곧바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고 애굽을 돌보도록 합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서른 이었습니다.(창 41:46) 바로의 꿈은 두 번에 걸쳐 꾸었지만 한 가지였습니다. 7년 동안 풍년이 올 것이고, 풍년이 지나면 다시 7년 동안 기근이 올테니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7년 동안 풍년이 찾아옵니다. 요셉은 풍년동안 각 성읍에 곡물을 창고에 쌓아 둡니다. 그리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습니다. 7년의 풍년이 끝나자 드디어 흉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애굽은 요셉 덕분에 많은 곡식을 쌓아둔 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야곱이 있는 가나안에서 일어납니다.
기근은 야곱의 가족들에게 먹고 살아야하는 위기를 일으켰고, 곡식을 사러 자신들이 요셉을 팔았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42) 요셉은 순찰을 하다 형들을 보게 되고, 형들은 총리가 된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고 절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삼일 동안 옥에 가두고 시므온만을 남기고 나머지 형들을 가나안으로 돌려 보냅니다. 다시 올 때는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창 42:20) 형들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요셉에게 행한 악을 스스로 뉘우칩니다. 이 사실을 야곱에 알리고 곡식이 떨어지자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43) 요셉을 잃고 베냐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은 결사 반대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창 43:14) 결단하며 애굽으로 보냅니다.
애굽에 내려온 베냐민을 본 요셉은 숨어서 눈물을 흘립니다.(창 43:30) 만찬을 준비해 형제들에게 먹이고 베냐민에게는 다섯 배나 줍니다. 곡식을 산 형들은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시험이 시작됩니다.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 요셉이 사용하던 은 잔을 넣어 범인으로 몰아갑니다. 그 잔을 가져간 자는 죽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자신들 모두가 노예가 되겠다고 하지만 요셉은 그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된다고 말합니다.(창 44:17) 이것은 시험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의 형들이 베냐민을 버리고 갔다면 그들은 모두 요셉에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유다가 앞서서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과의 관계를 말하고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창 44:33) 유다의 마음을 알게 된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힙니다.(창 44)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며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대합니다. 그렇게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고, 형들은 요셉의 도움으로 큰 걱정 없이 애굽에서 보내게 됩니다. 야곱은 죽기 진적 아들들을 축복합니다. 야곱도 죽고, 요셉도 애굽에서 숨을 거둡니다. 요셉은 죽으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때 자신의 뼈를 가나안으로 가지고 가 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창 50:22-26) 그렇게 창세기를 끝이 납니다. 이제 400년이 흐르고 이스라엘은 거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출애굽 이야기에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3. 광야시대(B.C. 1580?-1400?)
3. 광야시대(B.C. 1580?-1400?)
자, 다시 한 번 구약 7시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족장들의 시대를 살펴봤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586)
7. 포로시대(B.C. 586-420?)
3.1 광야시대 개요
광야시대는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시간을 말합니다. 출애굽 시대와 광야 시대를 구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 모세를 준비시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시내 산에 도착합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짓습니다.(출애굽기) 그 외에도 많은 율법을 명령하십니다.(레위기, 민수기) 모세는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내 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에서 죽게 됩니다.(민수기) 모압 광야에 도착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한 다음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운 다음 숨을 거둡니다.(신명기) 광야시대는 모세의 출생부터 다룬다 해도 120년이란 짧은 시간입니다.
신 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 광야시대는 모세의 생애와 함께 합니다. 출생과정과 미디안 광야로의 피신, 그리고 소명과 지도자로서의 삶, 마지막 죽음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이곳에서는 성경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각 사건이나 성막이나 율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보다는 스토리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2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출애굽기는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내려온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출 1:1-7)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에는 몇 구절으로 요약되어 있지만 거의 400년 정도의 공백이 존재합니다. 보수적 연대에의하면 출애굽기는 기원전 144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내려간 시기를 대략 1847년으로 계산합니다. 대략적으로 계산해도 400년이 흘러간 것입니다. 성경의 연대에대해서는 많은 논쟁도 있고,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법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세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400동안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출애굽기 1:7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들고 복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다시 성취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지자 애굽 왕 바로가 혹시나 반역하며 어쩌나 싶은 두려움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큰 공사에 투입하기 시작합니다.(출 1:8-14) 그래도 불안했던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고 딸만 살려 두도록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명려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출 1:21) 바로의 명보다 하나님의 명을 따랐습니다.
드디어 모세가 태어납니다.(출 2장) 어머니는 레위 지파 사람이며, 그녀의 이름은 요게벳(출 6:20, 민 26:20)입니다.
민수기 26:59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아이를 낳고 죽이지 않고 석 달 동안 숨겨 키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어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진을 친해 나일 강가에 둡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와서 그 상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양자로 입양해 키웁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짓습니다.(출 2) 모세의 뜻은 ‘건지다’의 뜻입니다. 바로의 딸이 우는 아기를 보고 불쌍히 여겨 아이를 키울 마음을 갖습니다. 그때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찾아가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찾아 젖을 먹이겠다 말하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데리고 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그를 죽여 모래에 감춥니다.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말리자 잘못한 사람이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출 2:14)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일이 탄로 난 것으로 알고 미다안으로 피신을 떠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도망을 가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히브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렇게하여 모세의 초반기 40년이 지나고 중반기 40년이 시작됩니다. 성경 속에서 모세는 초반기 40년과 중반기 40년은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들어가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합니다.(출 2:21) 그곳에서 아들 게르솜을 낳고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라고 토로합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흡사 요셉의 이미지와 적지 않게 닮아 있습니다. 요셉이 기근에 빠진 야곱의 가족을 구하듯 모세 또한 버림을 받지만 결국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그렇게 또 40년이 흘러갑니다.
어느 날 장인의 양을 치던 모세는 광야 서쪽 ‘하나님의 산 호렙’ 호렙은 ‘시내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으로 양을 끌고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기한 장면을 발견합니다. 떨기나무가 불에 타고 있는데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얇고 가늘기 때문에 불이 붙어도 순식간에 사그라집니다. 모세는 이상한 장면이다 생각하고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두 번 부르는 것은 강조이며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창세기 22:1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르신다. ‘사울아 사울아’ (행 9:4, 22:7, 26:14)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라고 계시하시고,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모세가 가려하지 않자 그에게 지팡이가 뱀이는 기억과 손이 나병에 걸렸다 치료되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래도 가려하지 않자 형 아론을 통해 대신 말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보내십니다.
애굽에 도착한 모세는 바로를 찾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지만 바로는 거절합니다.(출 5) 결국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과 바로를 징벌하십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자 애굽의 술사들도 동일하게 행합니다.(출 7) 그리고 첫 번째 재앙인 물이 피가 되는 이적이 일어납니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가 하수에서 올라오는 재앙입니다.(출 8) 세 번째 재앙은 티끌이 이가 되는 것이고(출 8:16-19), 네 번째 재앙은 파리가 애굽 사람의 집에 가득하게 됩니다.(출 8:20-32) 네 번째 파리 재앙부터는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구별이 일어납니다.(출 8:23)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이 죽고(출 9:1-7), 여섯 번째 재앙은 악성 종기가 사람과 짐승에게 생겨납니다.(출 9:8-12), 일곱째 재앙은 큰 우박을 내려 가축들과 밭의 식물들이 피해를 봅니다.(출 9:13-35) 여덟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입니다.(출 10:1-20) 아홉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으로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빛이 사라지고 흑암이 찾아옵니다. 마지막 열째 재앙은 애굽의 모든 장자의 죽음이 찾아옵니다. 가축의 처음 것이나 사람의 장자를 불문하고 처음 난 모든 것을 죽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을 벗어날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린양을 잡이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됩니다. 죽음의 천사가 찾아올 때 문설주의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다하여 ‘유월(踰越)’의 뜻을 붙여 유월절이라 이름하게 됩니다. 또한 그날은 누룩을 넣지 않아 발효되지 않는 떡을 먹는다하여 무교절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갈 때 아브라함이 많은 재물을 갖고 나온 것처럼(창 12장) 이스라엘 백성들도 많은 재물을 취하여 애굽을 떠나게 됩니다.(출 12:35-36)
2.3 홍해에서 시내산까지
요셉의 뼈를 들고 나가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점점 더 다이나믹하게 흘러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갖고 나오기는 했지만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마지막 장면에서 요셉이 후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가 올 테니 그 때 자신의 뼈를 가지고 가서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창 50:24-25]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요셉은 과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부유하고 최고의 권력을 가졌지만 한 시도 가나안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낮은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출 13:21-22)
홍해 앞에서
하나님은 곧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고 홍해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바로는 그 소식을 듣고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었다’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출 14:3) 바로는 바로 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을 추격합니다. 선발된 병거의 수는 육백 대였고, 다른 병거들도 수도 없이 따랐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는 바알스본 맞은 편 비하히롯 곁 해변에 이릅니다. 당시 애굽의 군대는 최강이었고,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수족을 놀릴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특히 애굽의 말은 유명하여 그 어떤 지역의 말보다 뛰어났습니다.
겁에 질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 떨며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지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출 14:11)고 따집니다. 그때 모세는 여호와께서 싸우시니 그의 구원을 보라며 가라앉힙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들고 있는 지팡이를 바다를 향하여 내밀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큰 동풍이 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지나게 됩니다. 이때 뒷따라오던 애굽의 군대는 다시 물이 합해지면서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만나가 내리다
애굽에서 나온지 둘째 달 십오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원망합니다.(출 16) 이제는 먹을 것이 없어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그것으로 양식을 삼아 먹도로 합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내립니다. 르비딤에 도착하니 또 원망합니다.(출 17)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만드십니다.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짓습니다. 아직 르비딤에 있을 때 아말렉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여호수아가 전장에 나가고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이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전쟁에서 이기게 합니다.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짓습니다. ‘닛시’는 ‘깃발’이란 뜻으로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승리하게 하시는 여호와란 뜻입니다. 잠깐 이드로가 찾아와 모세에게 백성들을 지혜롭게 재판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출 18) 천부장과 백부장, 오십부장과 십부장 세워 재판하게 합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다
출애굽 한지 삼 개월이 되던 날 드디어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출 20) 또한 다른 율법들도 받습니다.(출 21-24) 율법을 주신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도록 말씀하시고 짓는 방법을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이 땅에서 지을 성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에 있는 성막의 모형을 본따는 것입니다.
[출 25: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들어가고, 성소에는 향단과 떡상과 촛대가 있습니다. 성막을 동물 가죽으로 덮개를 만들어 덮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만의 옷을 만들어야하고, 가슴에 흉패를 달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모세의 형인 아론이 감당하고, 후로는 아론의 아들들이 맡게 됩니다. 일반 레위인들은 성막을 짓고 옮기고 문을 지키는 등의 다양한 일에 봉사하게 됩니다.
금송아지 사건
율법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판을 주시고 그곳에 율법을 기록해 주십니다.(출 31:18) 즉 아직 모세가 시내산에 있었습니다. 그때 시내산 아래에서 반역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찾아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 32:1)고 다그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당시의 이스라엘은 보이는 신들이 사는 애굽에서 나온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금을 가져와 모아서 황금 송아지를 만든다. 애굽에서 송아지 신은 아피스(Apis)로 머리에 해를 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아피스가 태양신으로 숭배 받았다고 주장한다. 조지스 캠벨은 고대 수르메에서는 황소가 달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황금 송아지가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모세를 급하게 내려보내 그들의 상황을 살펴보게 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황금 송아지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분노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언약을 깨지고,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출 33:3)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다시 기도하여 결국 하나님은 다시 함께 올라가시기로 합니다. 그러나 언약을 세워 두 번째 돌판에 언약의 말씀을 기록하십니다.(출 34)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보았던 식양대로 성막을 만듭니다.(출 35-40)
제사법을 제정하시다
성막이 완성된 후 하나님은 성막에서 드려야할 제사와 제사법을 알려 주십니다. [이 부분은 필자의 졸저 『구약의 5대제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서원과 안식일에 대한 다양한 율법을 제정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하다.
레위기가 끝나면 민수기가 시작됩니다. 민수기는 ‘백성들의 숫자를 세다’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에 들어가는 숫자는 20대 이상의 남자입니다. 레위인은 백성들의 숫자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따로 계수됩니다.(민 1:47-54)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백성들 숫자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장정들의 숫자는 모두 603,550명이었습니다.(민 2:32) 이것은 열두지파별로 계수한 것을 합산한 숫자입니다. 계수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됩니다. 두 번째 계수는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이루어집니다.(민 26) 두 번째 계수했을 때 총 이스라엘 백성의 합은 601,730명입니다.(민 26:51)
민수기는 백성들의 수를 계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향
지파
1차조사
2차조사
증감
남
르우벤
46,500
43,730
-2,770
시므온
59,300
22,200
-37,100
갓
45,650
40,500
-5,150
동
유다
74,600
76,500
+1900
잇사갈
54,400
64,300
+9,900
스불론
57,400
60,500
+3,100
서
에브라임
40,500
32,500
-8,000
므낫세
32,200
52,700
+20,000
베냐민
35,400
45,600
+10,200
북
단
62,700
64,400
+1,700
아셀
41,500
53,400
+11,900
납달리
53,400
45,400
-8,000
총계
603,550
601,730
-1,820
민수기는 38년 정도의 시간으로 광야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이 들어가 있습니다. 민수기는 초반과 후반에 각 지파별로 성인남녀의 수를 계수하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그 사이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몇 가시 사건을 추려 보겠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일어난 사건들
- 다베라의 원망
광야에서 40년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움직여햐 하기 때문에 소유를 늘리기도 불가능합니다.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합니다. 또한 물과 고기 등의 양식이 결코 풍성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다베라에사는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민 11:1)하자 여호와께서 불을 보내 진영의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함께 섞여 들어온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어 요란시키자 메추라기를 보내기도 합니다.(민 11)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합니다.(민 12:1)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그러자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게 됩니다. 십보라는 일찍 죽은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열두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을 정탐하게 한 사건입니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정해 40일 동안 가나안을 돌아보게 합니다.(민 13) 그런데 돌아온 정탐꾼 중 열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민 14) 결국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는 벌을 받게 합니다. 마치 가인에게 내린 벌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라당의 반역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사건도 있었습니다.(민 16)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가 르우벤 지파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려 모세를 반역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고, 향로를 들고 나오라고 말합니다. 고라는 온 회중을 모아놓고 모세를 비방하고 대적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의 장막에서 떠나라하고, 땅은 입을 벌려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삼킵니다. 또한 함께 대적했던 이백오십 명의 분향자들도 여호와로부터 불이 나와 살라버립니다.(민 16:35) 고라의 일로 염병이 돌고 아론이 향로를 들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비로소 염병이 멈춥니다.(민 16:48)
-불뱀과 놋뱀
백성들이 홍해 길을 지나 에돔을 지날 때 백성들이 원망합니다.(민 21)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불평합니다. 불평이 심해지자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 그들을 물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대 높은 곳에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어 매달라 하십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은 그것을 볼 때 낫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모세는 급하게 불뱀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사람들에게 바라보도록 말합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쳐다보자 모두 살아납니다.(민 21:9)
-발락과 발람의 저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지에 진을 칩니다. 이곳은 가나안 여리고 맞은 편이라 요단강만 건거면 곧바로 가나안에 진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때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는 발람이란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지 말라해서 처음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높은 고관들을 보내고 많은 은금을 준다고 하자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려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20)고 명령합니다.
발락에게 나귀를 타고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나귀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도망갑니다. 채찍질하자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다 담이 있는 곳에서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짓누릅니다. 또 채찍질을 하자 이번에는 아예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발람이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립니다. 그런데 이때 나귀가 입을 열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 여호와의 사자를 보여줍니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고 발람에게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민 23-24)
브올에서의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여자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남자듣ㄹ을 청하여 함께 먹고 음행을 저지릅니다.(민 25) 이때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질투심으로 음행하는 남자와 여자를 죽입니다. 죽임을 당한 남자는 시므리이고, 살루의 아들입니다. 시므온인 조상의 가문 중 지도자였고, 죽은 모압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입니다. 수르의 딸이며,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습니다.(민 25;14-15) 즉 두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이 앞서 음행함으로 염병이 일어났고,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습니다.(민 25:9) 이일로 하나님은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 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여인과 음행에 빠진 이유는 ‘발람의 꾀’(신 31;16)였습니다. 발람은 직접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지만 발락이 주려고 했던 은금이 너무나 탐이나 발락에게 저주 대신 이스라엘이 죄를 짓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모압 여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 초청하여 음행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지파별로 성읍을 제비뽑다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합니다.(민 33:50-34장) 그러나 레위인들을 땅을 분배 받지 못합니다.(민 35) 그들에게는 기업이 없습니다. 대신 각 지파의 성읍 가운데 일부를 레위인들에게 줍니다. 모두 6개의 성입니다. 이 여섯개의 성들은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동시에 도피성이 되어 불가피한 살인이나 죄가 없이 살인을 할 경우 보수자의 손을 피해 도망가도록 만든 곳입니다.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다시 들려주다.
신명기는 다시 율법을 들려준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광야의 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남은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동안 들었던 율법을 다시 들려주고, 필요한 부분을 해석하여 설교합니다. 이것을 신명기라고 합니다. 신명기는 모세 오경처럼 다섯 설교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도록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4. 사사시대(B.C. 1400-1050)
4. 사사시대(B.C. 1400-1050)
지난 시간에는 광야시대를 살펴봤습니다. 400년 정도의 공백기를 건너 띄어 출애굽의 시기에서 가나안 입성 직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입성부터 초대 왕 사울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다시 한 번 구약 7시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7. 포로시대(B.C. 722-420?)
4.1 사사시대 개요
사사시대는 사사들이 통치하는 약 400년 정도의 시기를 말합니다. 광야 시대를 보낸 후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정복 전쟁을 7년 동안 치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은 완전한 승리가 아닌 대략적인 것입니다. 각 지역과 산 속에 숨어 지내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전쟁은 사사기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는 가나안 정복전쟁의 시기입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의 죽음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세워지기 직전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수아와 사사기, 룻기를 따로 구분하여 기록합니다. 사무엘상․하는 왕정시기에 해당합니다. 여기서는 여호수아 사사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사기는 13명(사무엘 포함)의 사사가 약 400년 동안 통치한 시기입니다. 엄밀하게 사시는 왕이 아니기 때문에 통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암묵적인 통치인 것은 분명합니다. 사사기는 기드온을 중심으로 기드온 이전과 이후로 확실하게 구분이 일어납니다. 기드온은 사사 시대에 안에서 가장 확실하게 사사로의 자리를 지켰고,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을 찾아와 ‘왕이 되어 달라’라고 청을 합니다. 사사기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진단합니다. 왕은 곧 리더십이며 백성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신적인 권위를 말합니다. 사사시대는 결국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스라엘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사사시대를 왜 암흑기라고 말하는지 이제 사사시대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4.2. 여호수아의 7년 정복전쟁
모세는 설교를 마친 다음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마지막으로 바라봅니다.(신 34:1)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 34:4)고 선언하십니다. 모세는 죽기 전 자신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이양합니다. 특히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떠나지 말게하고, 매 칠년 끝 해 면제년의 초막절에 율법을 낭독하게 합니다.(신 31:11-12)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모세처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수 1:9)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합니다.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냄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기 전 두 명의 정탐꾼을 가장 먼저 정복할 여리고 성에 보냅니다.(수 2)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여리고 성의 군사들의 눈을 피합니다. 라합은 군사들이 찾아오자 그들이 이미 집을 나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라합은 군사들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지붕에 잇던 삼대 안에 숨겼습니다. 라합은 군사들이 가자 두 정탐꾼에게 여호와의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정탐꾼들은 약속하고 창문에 빨간줄을 메어 놓고, 모든 사람들은 라합의 집에 함께 있으라고 당부합니다. 두 정탐꾼은 싯딤에 있던 여호수아에게 찾아가 이 모든 사실을 알립니다. 여호수아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백성들을 준비시킵니다.
마른땅으로 요단을 건너다
사흘 후에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 갑니다. 그런데 이때는 요단이 언덕에 넘치는 곡식 거두는 시기였습니다.(수 3:15) 현재달력을 5월 정도 되는 시기는 만년설이 있는 헤르몬 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갈릴리를 지나 요단강을 통과해 흘러갑니다. 일 년 중에서 가장 많은 물이 흐르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시기에 요단을 건너게 한 것입니다. 요단을 건널 때, 가장 앞서서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서 갑니다. 그들이 넘쳐흐르는 물속으로 들어갈 때 갑자기 흐르던 물이 멈추어 섰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따라갑니다. 각 지파의 한 사람씩 요단 중앙에서 각각 한 개의 큰 돌을 가져와 그날 밤 유숙할 곳에 쌓아 두도록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은 물 속에서 마른땅을 불러낸 셋째날의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속에 숨겨진 땅-길이 드러난 것입니다.
할례를 받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할례를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으로(창 17) 그 후로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광야의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됩니다. 할례를 구원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된 이들이 그 징표로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 이름을 ‘길갈’(굴러 가다는 뜻)이라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에 들어온 후 첫 번째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날 그 땅의 소산물을 먹자 그 다음 날 광야 40년 동안 내렸던 만나가 그쳤습니다.(수 5:11-12)
여리고성이 무너지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가까이 접근했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을 칼을 빼어 들고 여호수아를 마주 서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 5:15)라고 명령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은 자유민들만 신었습니다. 신을 벗는 행위는 자유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이 부분은 필자의 졸저 <룻기 묵상>의 부록 “신을 벗는다는 것이 의미”를 참고 바람]
드디어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특이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육일 동안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앞세우고 군사들이 뒤따른 기이한 형태의 행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은 일곱바퀴를 돌고 함께 함성을 지릅니니다. 그러자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두 정탐꾼은 자신들을 구한 라합의 집에 들어가 라합과 그의 가족들을 구합니다.
그리고 전쟁 그리고 승리
그런데 두 번째 성인 아이성에서 패하고 맙니다. 아간이 아무 것도 손대지 말라고 한 여리고 성에서 훔쳤기 때문입니다. 제비를 뽑아 아간을 잡아냅니다. 결국 아이성에서 승리하고 계속하여 승리하게 됩니다.(수 8) 아간의 범죄로 인해 실패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단지 군사력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죄와의 전쟁인 것을 말해 줍니다. 아이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곧바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올라가 율법을 낭독합니다.
그때 갑자기 기브온 주민들이 찾아 화친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수 9) 원래 가나안 사람들과는 언약을 맺지 말도록 명령했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멀리서 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들이 가나안을 점령하게 되면 자신들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선수를 친 것입니다. 결국 사흘 후에 그들이 가나안 족속인 것을 알게 됩니다. (수 9:16)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민족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러 옵니다. 그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었습니다.(수 9:2)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로 왕과 연합하여 기비온을 치러 갑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여호수아에 전갈을 보내 도움을 요청합니다. 여호수아는 밤새 올라가 그들과 전쟁을 치릅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이 지지 않고 하늘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것이 이루어집니다.(수 9:12-14) 여호수아는 계속하여 전쟁했고, 결국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땅을 분배 받다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각 지파별로 제비 뽑아 땅을 분배 받습니다.(수 13) 요단 동편은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 갓 지파의 땅입니다. 그들은 이미 모세에게 청하여 그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이제 요단 서편의 땅을 제비 뽑고 지파별로 나누어 가집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탐꾼으로 갔던 유다지파 갈렙이 찾아와 헤브론을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갈렙에게 제비뽑기가 아닌 갈렙이 발로 밟았던 땅을 갈렙에게 주기로 이미 약속했기 때문입니다.(신 1:36)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갈렙이 달라고 요구한 헤브론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공포의 아낙 자손들이 사는 곳입니다.(수 14:15) 갈렙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그곳을 달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헤브론에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매장지로 산 막벨라 굴이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갈렙은 그 사실을 알고 헤브론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후에 이곳은 다윗이 왕이 되어 칠년 반을 머물게 됩니다.(삼하 5:5) 이렇게 하여 여호수아의 전쟁은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4.3 사사시대
사사시대를 다루는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후반부와 겹칩니다. 그런데 도대체 사사들은 누구를 말할까요? 엄밀하게 사사는 왕이나 관리가 아닙니다. 사사는 성경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존재들이며, 가나안 정복기에 잠깐 있다 사라진 특별한 직분입니다. 사사들은 ‘쇼페팀’이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인데, 다른 가톨릭 성경은 ‘판관’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재판을 하기도하고, 행정적인 관리 능력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사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거나, 아버지가 사사이기에 대물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처럼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하는 사사도 있지만 사사기 안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각 지파를 통치하거나 그 주변 지파까지 정도만 영향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관성이나 획일성은 찾아보기 힘든 특이하고 임시적 직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사기는 크게 서론(1:1-3:6), 본론(3:7-16:31), 결론(17:1-21:25)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지파별로 전쟁을 시작하다
-유다와 시므온 지파
서론부에서는 각 지파가 지파별로 또는 연합하여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치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유다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연합하여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전쟁합니다.(삿 1:4) 그곳에서 아도니베석을 죽입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유다지파는 예루살렘 아래에 위치한 베들레헴과 헤브론을 다시 공격합니다. 헤브론에서는 아낙 자손에서 가장 크고 장대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입니다.(삿 1:10)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입니다. 유다지파 대표인 갈렙이 드빌을 칠 때 기럇 세벨을 공격할 때 그곳을 점령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준다고 하자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점령하여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악사는 시집갈 때 갈렙에게 샘물도 달라고 합니다. 갈렙은 악사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줍니다.(삿 1:14-15) 당시 샘을 얻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베냐민 자손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그대로 남게 됩니다.(삿 1:21)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요셉 가문도 전쟁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장소는 벧엘입니다. 벧엘의 옛 이름을 ‘아몬드’라는 뜻을 가진 루스입니다. 옛적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날이 저물어 돌을 베개 삼아 쉰 곳입니다. 정탐꾼들이 루스를 찾아 갔지만 입구를 찾지 못합니다. 루스는 한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만약 입구를 가르쳐 주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삿 1:24)라고 거래합니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벧엘을 점령합니다. 그는 헷 사람의 땅에서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곳 이름을 루스라고 붙입니다. 요셉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래하고 맙니다.
-그 외의 지파들
다른 지파들은 전쟁을 시작했지만 쫒아내지 못합니다. 그러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삿 1:27)합니다. 1장은 이렇게 모든 지파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실패했음을 보고합니다.
초기의 사사들:옷니엘에서 기드온까지
사사기의 중심 단어는 ‘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지만 사사시대 사람들은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사사 시대를 대표할 만한 두 사사는 기드온과 삼손입니다. 사사시대는 기드온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기도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이 되어달라 말했던 사사였지만 거절했습니다.(삿 8:22-23) 그러나 기드온은 겉으로는 왕됨을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많은 아들을 두었지만 세겜의 여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이름을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는 뜻으로 아비멜렉이라 짓습니다. 기드온 이전의 시대는 가나안을 정복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기드온 이후 시대는 스스로 몰락하여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타락한 이스라엘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진멸해야할 가나안 사람들보다 더 악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사사 옷니엘(삿 3:7-11)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 목전의 뜻은 ‘얼굴 앞에서’라는 뜻이다.
에서 악을 행합니다.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겨 고통을 받게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영이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에게 임합니다. 옷니엘은 갈렙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기꺼이 노장의 몸을 이끌고 나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사사 에훗(삿 3:12-30)
‘또’ 이스라엘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의 손에 팝니다. 에글론은 혼자 오지 않고 암몬과 아멜렉 족속들과 연합해 쳐들어 왔습니다. 종려나무 성읍(여리고)를 공격해 점령했습니다. 18년 동안 고통을 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또 기도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왼손잡이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을 보냅니다. 곡물을 바치러 간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할말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단독으로 만나 죽입니다.
-사사 삼갈(삿 3:31)
아낫의 아들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사사 드보라(삿 4-5장)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번에는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입니다.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하는 시스라입니다. 야빈에게는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괴롭힙니다. 철 병거 구백 대는 최강의 무기요 숫자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추격할 때 병거가 육백인 것에 비하며 야빈의 숫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최강의 군사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또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종려나무 밑에서 이스라엘을 지도합니다. 종려나무 열매는 꿀과 같이 답니다. 그래서 그냥 꿀로 부릅니다. 드보라는 꿀벌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꿀로 소개합니다. 드보라는 종려나무(꿀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꿀)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드디어 행동을 개시합니다.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하나님게서 함께하시니 시스라와 싸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군사력에 압도된 바락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보라에게 당신이 나와 함께 간다면 싸우겠다고 말합니다.(삿 4:8) 드라라는 어떨 수 없이 함께 갑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일까요? 나중에 알게 됩니다. 바락은 군사들을 다볼 산에 모았습니다. 시스라 군대는 기손 강에 진을 쳤습니다. 팔레스타인 강은 간헐천이니다.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일반 평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철병거는 평지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이 전쟁은 보나마나 시스라의 백전백승이 예상됩니다. 바락의 군대는 모두 합해도 고작 만 명이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됩니다. 다볼산에서 바락의 군대가 소리치며 내려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 쏟아집니다. 물이 기손강에 범람하여 철병거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삿 5:21) 시스라는 너무나 놀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도보로 도망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삿 4:15) 시스라는 겐 족속의 헤벨의 장막에 숨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헤벨의 아내가 시스라를 천막치는 말뚝으로 관자놀이를 찌릅니다. 결국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바락은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시스라는 이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겐 족속 헤벨의 아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사사 기드온(삿 6-8장)
드디어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기드온은 사사기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사이고,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사사기는 기드온 이전과 이후로 갈립니다. 이제 기드온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삿 6:1) 이번에는 미디안의 손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팝니다. 7년 동안 고통을 받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미디안에게 추수한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는 기드온을 찾아갑니다. 겁에 질린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삿 6:12) 기드온은 그 말을 믿지도 않고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다시 확신을 주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리라고 약속합니다. 기드온은 예물을 가지고 그에게 제사하려고 합니다. 가져온 제물에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 끝을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태우고 사라집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만났던 사람이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제산을 땋고 ‘여호와 샬롬’(삿 6:24)이라고 말합니다. 샬롬은 ‘평화’ ‘안전’이란 뜻입니다. 기드온은 그날 밤 친구들과 더불어 바알의 제단을 헐고 곁에 세워진 아세라 목상을 찍어 그것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립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범인을 찾으려하고 기드온인 것을 알고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말립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됩니다. 미다인 연합군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합니다. 나팔을 불어 군사들을 모읍니다. 불안한 기드온은 하나님께 기도해 증표를 구합니다. 첫날은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주변 땅에는 없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둘째날은 반대로 주변에는 이슬이 있고 양털에는 없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를 모두 들어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32,000명이 너무 많다며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말합니다. 그러자 22,000명이 떠납니다. 그래도 많다면 이번에는 물가에서 물을 먹이고 무릎 꿇고 먹는 자들을 돌려보냅니다. 이제 겨우 300명만 남았습니다.(삿 7:7) 하나님은 무릎 꿇고 물을 마시지 않고 손으로 떠서 먹은 300명과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기가찰 노릇입니다. 지금 적군은 17만 5천명이 넘습니다.(삿 8:10) 그럼에도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돌려보냅니다. 우리도 기드온이라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불만을 갖지 않을까요?
기드온은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전쟁을 앞둔 시기에 주저하자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합니다.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에 내려가자 한 사람이 친구에게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장막이 쓰러졌다고 말합니다. 그때서야 기드온은 용기를 냅니다. 전쟁은 밤에 시작됩니다. 항아리에 햇불을 감추고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적진 주변으로 둘러쌉니다. 신호를 내리자 구호를 외치고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깹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자다가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은 도망가는 세바와 살문나를 추적하여 잡아 죽입니다. 이렇게 승리는 기드온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나약함을 뛰어넘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드온의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왕이 되어달라고 했지만 기드온은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은금 패물을 달라고 해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이 에봇을 음란하게 섬겨 문제가 되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옷인데 금으로 왜 만들었던 걸까요? 이해할 수 없는 기드온의 행동은 그의 생후에 어려움을 가져옵니다.
후기의 사사들: 아비멜렉에서 삼손까지
-가짜 사사 아비멜렉
기드온은 아내를 많이 두어 자식이 ‘칠십 명’이었습니다.(삿 8:30) 기드온이 나이 많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은 또 바알들에게 음행하며 섬깁니다. 기드온의 아들 중에 세겜 여인에게 낳은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 그가 외조부 집, 즉 세겜에 돌아가 악한 일을 꾸밉니다. 기드온의 아들이 칠십이니 자신 만을 섬길 것인지 칠십 명을 섬길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나는 너희와 골육이다’(삿 9:2)라고 말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현옥되어 ‘그는 우리의 형제다’(삿 9:3)라고 말하고 아비멜렉의 악한 반역에 동참합니다. 세겜 사람들이 신전에서 내준 돈으로 악당들을 사서 기드온의 다른 형제들을 한 날에 한 바위에서 모두 죽입니다. 다행히 요담은 피해 달아납니다. 세겜 사람들은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왕, 아버지 기드온이 반대하고 또 반대했던 ‘왕’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요담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리심산에 올라가 나무들의 비유를 통해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고, 모든 나무들을 불로 태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삼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 사이에 ‘악한 영을’(삿 9:23)을 보내 싸우게 만드십니다. 세겜 사람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강탈합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세겜에 이르러 사람들을 불러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비멜렉은 화가 치밀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갑니다. 결국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아비멜렉은 잔인하여 세겜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잡아 죽입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은 도망가 버립니다. 세겜 사람들은 전쟁에서 져서 망대에 올라갑니다. 아비멜렉은 망대로 들어가지 못하자 주변에 나무를 베어 망대 아래에 쌓아 놓고 불을 지릅니다. 모두를 죽이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대 아비멜렉이 망대 가까이 가자 여인이 던진 맷돌 윗짝에 머리를 맞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여인에게 죽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비멜렉은 곁에 있던 청년에게 죽여 달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은 청년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으로 자칭 왕이 된 아비멜렉은 숨을 거둡니다. 기드온 이후 사사시대는 더욱 깊고 긴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사사 돌라(삿 10:1-2)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사사가 됩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지만 대상이 누구인지 어떻게 구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다 그곳에 묻힙니다.
-사사 야일(삿 10:3-5)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이십이 년 동안 사사가 됩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땅을 말합니다. 그곳에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있습니다.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고, 어린 나귀 삼심을 탔으며, 성읍 삼십을 가졌습니다. 사사였지만 호의호식했으며, 자식들에게 자신이 다스리던 성읍을 분배했습니다. 사사직을 사사로이 사용한 사사입니다.
-사사 입다(삿 10:6-11:40)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만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들의 신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까지 섬겼습니다.(삿 10:6) 지금까지 양상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해도 이렇게 많은 신은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삿 10:7)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과 암몬 자손들의 손에 이스라엘을 파셨습니다.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니 수많은 적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이고 큰 용사였습니다.(삿 11) 그는 기생의 아들이어서 자라서 본처의 아들들에게 핍박을 받아 집에서 쫓겨납니다. 돕 땅에 거하며 잡류들과 교제하며 그 패거리들의 머리가 됩니다. 암몬이 쳐들어와 전쟁을 하려할 때 앞으로 나서서 전쟁을 시작할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길르앗 장로들은 자신들이 내쫓았던 입다를 찾아갑니다. 입다는 그들에게 ‘전에 너희가 미워하여 나를 내 쫓더니 이제 환난을 당한다고 내게 오느냐’(삿 11:7)고 따집니다. 장로들은 대꾸도 못하고 ‘지금 암몬 자손과 싸우려하는데 당신이 와서 우리의 머리가 되어 달라’ 부탁합니다. 입다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입다와 기드온을 비교해 보십시오. 입다는 비록 사사이기는 하지만 결코 올바른 마음을 가진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처럼’ 되어 달라는 요구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이렇게 암몬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입다는 전쟁에 앞서 먼저 암몬 왕과 협상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격해 오는 이유를 물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은 입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입다는 전쟁에 나가기 전 만약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자신이 집에 돌아올 때 자신에게 가장 먼저 환영하러 나온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의 무남독녀가 승리한 아버지를 환영하러 나왔습니다. 입다는 서원한 것을 뒤집을 수 없어서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바칩니다.(삿 11:39)
입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찾아와 주신들을 무시했다면 입다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삿 12:1)라고 협박합니다. 화가난 입다는 전쟁할 때는 나오지도 않던 이들이 전쟁이 끝나고 큰소리치는 모습을 화가 그들을 죽입니다. 요단나루턱을 지키고 있다 ‘쉽볼렛’이라 발음하게 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한 모두를 죽였습니다. 입다는 사사가 된지 육년 만에 숨을 거둡니다.
-사사 입산(삿 12:8-10)
입다의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그도 야일처럼 아들 삼십이 있었고, 딸도 삼십 명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입산은 야일과 다르게 자신의 아들들을 위해 ‘밖에서’ 여인을 구해오고, 딸들을 위해서는 ‘밖으로’ 시집을 보냅니다.(삿 12:9) ‘밖으로’ 또는 ‘밖에서’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민족과 결혼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족속과 언약도 맺지 말아야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기드온 이후 사사들은 더욱 가나안스럽게 변했고, 가나인보다 더한 타락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사 엘론(삿 12:11-12)
입산의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다스립니다. 그가 죽자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지냅니다.
-사사 압돈(삿 12:13-15)
이번에는 힐렐의 아든 압돈이 사사가 됩니다. 그에는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 명이 있었습니다.
-사사 삼손(삿 13-18)
사사기 안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는 삼손입니다. 삼손은 기독교인이 아니라해도 영화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사입니다. 사사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특이합니다. 또한 무려 6장을 할애하여 삼손의 생애를 다룰만큼 중요한 사사입니다. 삼손의 생애는 후에 [성경인물 -삼손]편에서 깊이 있게 다루기로 하고 이곳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겠습니다.
삼손의 출생
삼손의 아버지는 마노아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안에서 삼손의 어머니는 이름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단지 ‘마노아의 아내’라고만 소개됩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불임의 여자였습니다.(삿 13:3) 어느날 주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도 만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태어날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삿 13:5)이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뜻합니다. 잠깐 동안 스스로 나실인으로 지낼 수 있지만 삼손처럼 처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이는 없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에 술이나 독주, 부정한 것을 만져서는 안 됩니다. 특히 나실인의 서약을 하는 동안에는 머리를 깎아서도 안 됩니다. 주의 천사는 그 아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고 떠나갑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이 사실을 남편 마노아에게 알렸고, 마노아는 천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천사는 다시 나타나 동일하게 이야기하고 마노아가 드린 제물을 받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마노아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고 짓습니다.(삿 13:24) 삼손은 어원상 ‘작은 태양’이란 뜻입니다.
딤나의 여인
삼손이 커서 딤나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딸을 보고 부모님께 가서 딤나의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삿 14) 그러나 부모는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으려는 삼소에게 실망합니다. 어느 날 딤나로 내려가다 젊은 사자를 만나 여호와의 영이 임해 찢어 죽입니다. 여자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죽은 사자의 몸에 벌 떼가 있고, 그곳에 꿀이 가득있는 것을 보고 꿀을 가져갑니다. 나실인이었던 삼손은 절대 죽은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 후에 삼손은 결혼식날 그곳 청년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수수께끼입니다. 이것은 죽은 사자에게 얻은 꿀을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수수께끼였습니다. 마지막날인 일곱째 되는 날 청년들은 딤나의 여인에게 삼손을 꼬드겨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를 것이다’(삿 14:15)라고 협박하여 알아냅니다. 결국 삼손은 울며 애걸하는 여인 앞에서 답을 가르쳐 주고 맙니다. 이 일로 삼손은 아스글론에 내려가 삼십 명을 죽이고 옷을 가져옵니다.
밀을 거둘 때 아내를 찾으러 딤나에 내려갑니다. 그런데 장인이 삼손의 아내인 자신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줬으니 대신 동생을 데려 가라고 말합니다. 화가 난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에 홰를 달고 불을 붙여 보내니 여우들이 곡식 단과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사릅니다.(삿 15:5) 블레셋 사람들은 딤나의 여인의 아버지 때문에 삼손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 딤나의 여인집에 찾아가 그 여인과 아버지를 불사릅니다. 참으로 악한 사람들입니다. 삼손은 다시 그 여인과 아버지를 죽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고 에다 바위틈에 숨어 지냅니다.
라맛레히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기 위해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머뭅니다. 삼손을 잡기 힘드니 유다 사람들을 이용해 삼손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삼손을 찾아가 애원하니 삼손은 순순히 줄에 묶여 따라 갑니다. 삼손이 레히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삼손을 결박한 밧줄을 끊어냅니다. 나뷔 새 턱뼈를 발견한 삼손은 그것으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삿 15:16)
그곳 이름을 ‘라맛 레히’(턱뼈의 산)라고 부릅니다. 너무 무리한 탓인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자 물이 솟아나 살아납니다. 그곳을 이름을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라고 부릅니다.
소렉 골짜기 들릴라
가사에서 가서 한 기생을 보고 빠집니다.(삿 16:1-3)) 가사 사람들이 그집을 둘러싸고 있다고 새벽에 죽이려고 합니다.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있다 밤중에 일어나 가사의 성 문짝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때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져갑니다. 수십 명이 들어도 들지 못할 무게를 혼자서 들고 멀리까지 가져간 것입니다.
이번에는 소렉 골짜기로 내려가 들릴라를 사랑합니다.(삿 16:4-22) 사람들은 들릴라를 찾아가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도록 합니다. 삼손은 몇 번을 농담으로 이야기합니다. 매번을 속자 들릴라는 날마다 재촉하자 삼손은 괴로워서 결국 자신이 나실인 것을 밝히고 머리를 밀며 힘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버립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 눈을 빼고 가사로 데려가 놋줄로 묶어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에게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며 삼손을 자신들의 손에 붙인 것을 감사하며 다곤 신을 찬양합니다. 삼손을 불러내어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삼손은 집의 기둥을 찾아 마지막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두 기둥을 밀자 집이 무너져 삼손과 삼손을 구경하던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됩니다. 사람들이 삼손의 시체를 찾아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합니다.
삼손 이후의 사사 시대
사사기는 연대별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삼손 이후라고 말하기는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서를 따르면 삼손 이후의 이야기는 사사기 전반에 흐르는 영적 성향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17-18장에서 미가의 제사장과 단 지파의 이동 이야기가 뒤섞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업으로 물려 받은 땅을 정복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단 지파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19-21장까지 에서는 레위인이 첩을 찾아간 곳에서 베냐민 지파의 청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로인해 나머지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전쟁이 일어나 베냐민 지파가 거의 멸절하는 위기에 봉착합니다. 사사기의 결말은 소망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려 했던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 싸우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실까요? 그 이야기는 통일왕국 시대에서 살펴봅시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모세 오경으로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좁은 의미에서 ‘토라’로 불렸고, 다른 어떤 성경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책입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성경은 모세 오경의 해석, 또는 성취를 보여줍니다. 지난 번까지는 사사시대를 다루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살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첫 사람들의 타락, 그리고 살인,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죽음, 그리고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도 별 수 없는 타락 존재들인 것을 역사는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탁한 시대가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준비하시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통일왕국 시대로 불리는 200년 정도의 시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은 각각 40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사무엘이 등장해야 겠죠. 사무엘의 등장부터 솔로몬의 죽음까지느 약 2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목에 표기한 1050년은 사울이 처음 왕으로 추대 받은 시기입니다. 자 다시 7시대를 눈에 담아 놓으십시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7. 포로시대(B.C. 722-420?)
5.1 통일왕국 시대 개요
숨이 거의 끊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에 다다른 이스라엘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와 같았습니다. 정복해야할 가나안 족속보다 더 가나안 족속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해 끊임없이 구원하시고 일으켜 세웠지만 사사가 죽으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40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구약 성경은 사사기를 마무리하고 사무엘서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한 레위인인과 불임의 여인 한나가 등장합니다. 절망스러운 사사시대에 살아갔던 그들도 여전히 소망 없는 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기도했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사무엘을 낳습니다. 젖을 떼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무엘은 점점 자라나 이스라엘 안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이 탄생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세웁니다. 그때가 기원전 1050년입니다. 왕이된 사울은 곧 교만해지고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습니다. 결국 버림을 받고 아버지의 양을 키우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밧고 두 번째 왕이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계속하여 추격하고 죽이려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죽임을 당하고 다윗은 왕이 됩니다. 다윗은 지혜롭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을 일거에 정복해 버립니다. 또한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조공을 바치도록 합니다. 여기까지가 사무엘 하의 내용입니다. 그 다음 성경인 열왕기 상으로 넘어가면 다윗의 말년과 솔로몬이 왕이 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죽음 이후 밧세바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이 왕이 되고 궁과 성전을 화려하게 짓습니다. 솔로몬의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평화롭고, 화려하고 부유한 시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B.C. 930)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남쪽은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유다’가 되고, 북쪽을 요셉지파(에브라임 므낫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됩니다. 분열 왕국의 시대의 이스라엘을 구분하기 위해 ‘북이스라엘’로 명명합니다. 이제 통일왕국 시대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5.2. 사무엘의 탄생
사무엘의 출생과 엘리의 죽음
통일왕국 시대의 이야기는 에브라임 산지의 불임의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삼상 1) 여인의 이름은 한나였고, 남편은 엘가나입니다. 엘가나는 레위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습니다. 한 명은 불임의 여인 한나이고, 다른 한 명은 브닌나입니다. 레위인에게 두 명의 아내는 비정상적입니다. 사사시대의 정형적인 모습입니다. 브닌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조롱하고 무시합니다. 그로인해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곳을 지키던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술 취한 여자로 알고 야단을 칩니다. 한나는 괴로워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해 줍니다. 거짓말처럼 한나는 아이를 낳게 되고, 젖을 떼자 아이를 데리고 엘리 제사장에게 데리고 갑니다.(삼상 1:28) 그 후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과 함께 실로의 성막에서 지내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을 불한당(不漢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행실이 나쁘고, ‘여호와를 알지 못’(삼상 2:12)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가볍게 여기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치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22)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을 저주하십니다.(삼상 2:27-36) 그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모르고 엘리에게 달려가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줄 알고 그 음성이 들리거든 무릎 꿇고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집에 내릴 저주를 들려 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것이 알려집니다.(삼상 3:20-21)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에서 질 것 같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갑니다. 처음에 두려워하던 블레셋은 용기를 내어 전쟁에 임하고 결국 이스라엘은 패하고 맙니다. 그일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소식을 들은 엘리도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됩니다.(삼상 4:18) 엘리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도 시아버지인 엘리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려다 죽게 됩니다. 죽으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하며 ‘이가봇’이라고 말하고 죽습니다.(삼상 4:20-22)
여호와 법궤 앞에 넘어진 다곤 신상
고대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강하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신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이겼다고 믿었습니다. 빼앗은 법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습니다.(삼상 5) 다음날 다곤 신전에 들어가보니 다곤상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세워둡니다. 그 다음날 들어가니 이번에는 다곤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 엎드러져 있을뿐 아니라 머리과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만 남아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놀라 다른 성읍으로 옮겼지만 법궤가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삼상 5:9)가 났습니다. 다른 성읍에 옮기면 또 재앙이 일어나 결국 법궤를 새수레를 만들어 이스라엘로 보내게 됩니다.(삼상 6) 법궤는 아비나답의 산에 옮겨집니다.
5.3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과 사울 왕
이스라엘이 나이가 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찾아옵니다. 사무엘이 사사로 사사로 세운 아들들이 아버지 사무엘처럼 정직하지 못하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했습니다. 참다못한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방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삼상 8)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왕을 세우라고 말합니다.(삼상 8:7) 사무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찾아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B.C. 1050) 사울은 40년 동안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비방했습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진을 치고 전쟁을 하려 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시를 섬기겠다고 말해자 ‘너히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삼상 11:2)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 말들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전쟁은 사울의 압승이었습니다. 드디어 사울의 실력을 인정받아 왕으로서 권위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의 실패는 의외로 일찍 찾아옵니다. 왕이 된지 이 년 만에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납니다.(삼상 13) 그런데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군사력을 지녔습니다. 길갈에 모여 있었지만 두려움에 떨어 사람들이 도망갔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이레를 기다리라하여 기다렸지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날마다 탈영하게 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고 맙니다.(삼상 13:9) 잠시 후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의 날이 길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마음이 합한 자를 세워 왕을 삼았다고 말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한 번 더 일어납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이스라엘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삼상 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라고 명합니다. 아멜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에서 비겁하고 야비하고 공격했던 민족이었습니다.(삼상 15:2) 사무엘은 아무 것도 취하지 말고 모든 사람과 가축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에서 이기고 좋은 짐승들을 남겨 둡니다. 사무엘은 이것을 알고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삼상 15:22)고 책망합니다. 사무엘을 아각을 데려오라 하고 직접 아각을 죽입니다.(삼상 15:33)
슬퍼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유다 지파 이새의 집에 가서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합니다. 이새에게 제사를 드린다하고 찾아갑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기름을 부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이새에게 아들이 또 있느냐고 물으니 한 명이 양을 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양을 치는 목자들은 가장 천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새의 눈에 다윗은 아들 같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무엘은 다윗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제부터 사울에 쫓기는 방랑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자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사울이 악령이 들어 고통스러워하자 다윗이 수금을 연주해 낫게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맘에 들어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삼상 16:21)습니다. 즉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호위무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또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삼상 17) 이번에는 키가 거의 3m나 되는 골리앗이 진 앞에서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저주합니다. 겁에 질린 이들이 아무도 소리도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온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 자신이 죽이겠다고 나섭니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주지만 다윗은 맞지 않아 다시 벗습니다. 시냇가로 내려가 물매에 넣을 돌을 찾아 다시 올라옵니다. 다윗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물매 하나와 양을 칠 때 쓰는 막대기만을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갑니다. 결국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승리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더 신용하여 많은 전쟁에 보내고, 다윗는 가는 곳마다 승리합니다.(삼상 18) 그런데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사울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립니다.(삼상 18:7) 그 후로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여 보고 시기합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딸 미갈을 주어 사위로 삼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하고, 결국 왕궁에서 쫓겨나 방랑하게 됩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달랐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까닭없이 미워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옷을 다윗에게 입히고 다윗의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삼상 20) 사울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추적했고, 다윗에게 조금이라고 선을 베푼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다윗에게 성막의 떡과 골리앗의 칼을 내준 놉 땅의 아히멜렉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삼상 21-22) 다윗은 그 후로 블레셋으로, 그일라로, 엔게디 요새로 계속하여 도망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점점 다윗에게 몰려옵니다. 이러한 왕중에 사무엘은 라마의 집에서 죽고 장사됩니다.(삼상 25:1)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다시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사울은 다윗 추적하는 것을 멈추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에게 패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5.4 다윗, 목자에서 왕까지
사무엘 상은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출생과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죽음까지 다룹니다. 사무엘 하는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정직하고 용맹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간교하고 악마적입니다. 이러한 이중적 성향은 사무엘 하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왕이 된 다윗의 모습을 살펴 봅시다.
아직은 반쪽의 왕
사울이 죽었다고 해서 다윗이 곧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왕이 없는 상황에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이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사울에게는 죽은 요다단뿐 아니라 이스보셋이라는 다른 아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을 따르는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헤브론으로 향합니다.(삼하 2:1) 먼저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영접하고 ‘유다 족속의 왕으로’(삼하 2:4)로 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의 군사령과 넬의 아들은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라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갑니다. 길르앗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습니다.(삼하 2:9) 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삼하 2:11)을 통치합니다. 이스보셋은 ‘두 해 동안’(삼하 2:10) 왕으로 있게되고, 후에 아브넬이 죽은 후 아브넬의 군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4:4) 이스보셋이 죽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합니다.(삼하 5:1)
다윗의 정복전쟁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곧바로 사사시대에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여부스 사람을 칩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을 보고 ‘맹인과 다리 저는 자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고 놀려 댑니다. 다윗과 군사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지하수로를 통해 들어가 정복합니다. 예루살렘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 이름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쟁에 나갑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하여 그곳을 ‘바알브라심’(삼하 5:20)이락 부릅니다. 얼마 후 블레셋 르바임 골짜기로 올라옵니다. 이번에도 다시 승리합니다. 전쟁은 계속 됩니다. 모압을 치고, 아람을 치고, 하맛과 에돔까지 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삼하 8)
베레스 웃사 사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오려고 합니다.(삼하 6) 그런데 레위인들에 어깨에 메지 않고 새수레를 만들어 법궤를 싣고 많은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런데 법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자 소들이 뛰놀자 웃사가 손을 들어 법궤를 붙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그를 죽입니다. 다윗은 이 모습을 보고 그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 이름합니다. ‘베레스 웃사’는 하나님께서 ‘베레스를 치다’는 뜻입니다. 결국 법궤는 예루살렘이 아닌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임시적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석 달’(대상 13:14)을 있게 됩니다. 석 달 후에 여호와게서 오벧에돔의 집과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법궤를 옮깁니다.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에게 지시하여 법궤를 메고 오도록 명령합니다.(대상 15) 다윗은 법궤가 성으로 오자 즐겁게 춤을 추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삼하 6:17) 이 모습을 보고 미갈이 다윗을 업신 여깁니다. 이 일로 미갈은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삼하 6:23)
밧세바 사건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생애에서 변곡점이 됩니다. 밧세바 사건 이전의 다윗은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 사건 이후 다윗의 집에 저주가 시작됩니다. 밧세바 사건은 암몬과의 전쟁 사이에 일어납니다.(삼하 11) 그런데 그 해는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저녁 때 다윗이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 다 목욕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 글을 알아보게 합니다.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삼하 11:3) 다윗은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궁으로 초대하고 동침한 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얼마 후 여인은 임신하게 되고 다윗에게 임식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내 집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왕의 부하들과 함께 잡니다.(삼하 11:9) 다윗이 불러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군대들이 전쟁 중인데 자기 혼자 집으로 들어가 함께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삼하 11:11) 참으로 충직한 신하요 군사였습니다. 다윗은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군대장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요압은 편지를 받고 우리아를 최선봉에 세워 공격하게 하고 갑자가 물러납니다. 결국 우리아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한 사람을 죽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간교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이일로 나단이 찾아와 다윗을 책망합니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회개하며 지은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다윗은 악했지만 또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은 죽게 되고,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삼하 12:10-11) 아이가 죽고 하나님은 아들을 다시 선물로 줍니다. 하나님은 다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지어줍니다.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집에 내린 저주
하나님은 밧세바의 일로 두 가지 저주를 내립니다. 물론 한 가지 때문에 연이어 일어납니다. 먼저는 암논이란 아들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사모하여 그를 끌여 들여 동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변해 다말을 쫓아냅니다. 이 소식을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듣게 되고 암논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만 이 년 후에 압살롬이 양털 깍을 때 다른 형제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이때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 암몬을 죽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을 피해 그술 왕 암비훌이 아들 달매에게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삼 년’(삼하 13:38)을 있게 됩니다. 요압의 계책으로 다윗의 마음을 달래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부릅니다. 드러나 다윗은 이년이 넘도록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준비합니다.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 앞에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려 하는 자들을 불러 그들의 마음을 훔칩니다.(삼하 15:6) 압살롬을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점점 키우게 되고 결국 반역을 일으킵니다. 짐을 챙길 시간도 없이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도주합니다. 압살롬에게는 아히도벨이라는 책략가가 있어 다윗에게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렉 사람 후새가 다윗에게 절하고 아히도벨의 책략을 무너뜨리겠다고 말하고 압셀롬에게 거짓으로 승복하고 들어갑니다. 결국 압살롬의 마음을 얻은 후새는 아히도벨의 책략이 먹히지 않게하고 압살롬을 전쟁에서 패하게 합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버림을 받고 고향으로 내러가 스스로 자결합니다.(삼하 17:23) 압살롬은 도망가다 머리가 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18:14)
다윗의 인구 조사와 전염병
말년에 다윗은 갑자기 그동안 자신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위해 백성들을 계수하게 합니다.(삼하 24:1) 요압은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 미뤘지만 다윗은 계속 재촉합니다. 할 수없이 이스라엘 인구를 계수합니다. 인구 조사를 마치자 여호와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책망하고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합니다. 다윗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이 일어나 칠만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24:15) 다윗은 아리우나 타작 마당에 서 있는 천사를 찾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화목제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이 그칩니다. 다윗의 죽음 이야기는 열왕기 상으로 넘어갑니다. 다윗은 늙고 자신의 왕위를 솔로몬에게 넘겨지고 숨을 거둡니다.(왕상 2:10)
5.5 솔로몬 용두사미의 왕
솔로몬은 시작은 좋았으나 끝은 좋지 않은 용두사미가 잘 어울리는 왕입니다. 통일왕국 마지막 왕으로서 이스라엘 분열에 대한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솔모몬은 대게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성경에서는 그를 그다지 좋은 왕으로는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유의하며 읽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그리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세워 놓은 믿음의 길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받아 누린 사람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까요.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이방우상들을 이스라엘 안으로 가지고 무능한 왕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왕이 되어 지혜를 구하다
다윗의 말년에 다윗의 아들인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세력을 규합합니다.(왕상 1) 아도니야는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함께 모의합니다. 이 일을 나단이 듣고 밧세바를 찾아가 의논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을 찾아가 돌아가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에 약속했던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는 다윗의 맹세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렇게 하여 솔로몬으로 왕으로 추대되고 아도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제거 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아도니야를 한 번 살려 줍니다. 그러나 그의 교만을 멈추지 않고 다시 밧세바를 찾아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협박합니다. 결국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두면 안 되겠다고 말하고 브나야를 보내 처형합니다.(왕상 2:25)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을 따르고 함께 했다로 처형하지 않고 제사장직을 파면하고 고향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로 인해 사무엘을 통해 엘리의 집에서 했던 예언이 성취됩니다.(왕상 2:27, 참조:삼상 3) 아비아들을 대신해 사독이 제사장 직을 맡게 됩니다.(왕상 2:35) 사독 제사장 계열은 후대와 중간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후손들만이 정통을 지닌 대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로 인해 처형합니다.(왕상 2:28-34)
왕이 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제사하며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을 감사하고 그에 걸맞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부를 구한 것을 좋게 여겨 구하지 아니한 ‘부귀과 영광’(왕상 3:13)도 허락하십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창기 두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됩니다. 어떤 합리적 추론이 아닌 모성애를 자극하여 진짜 엄마를 가려냅니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통할 수 없는 재판이지만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솔로몬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왕상 3:28)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와 성전건축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더불어 부와 영광을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부귀는 이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
솔로몬의 부는 다윗의 정복전쟁의 후광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완전히 정복되었고, 주변의 나라들까지 반식민지 상태에서 조공을 바쳤습니다.(왕상 4:21) 솔로몬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의 부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누리지 못한 부와 평안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인구는 ‘바닷가의 모래’ 같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웠습니다.(왕상 4:20) 또한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을 누렸습니다.(왕상 4:25)
솔로몬이 왕이 되자 다윗와 친했던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성전을 짓고 싶으니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달라고 부탁합니다.(왕상 5:1-6) 히람을 즐거운 마음으로 승낙하고 대신 자신의 궁정에 음식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두로는 해변가이고 농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음식이 몹시 궁했습니다. 이렇게하여 애굽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왕상 6;1)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원했던 일이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왕이된지 사년이 되었을 때 시작한 성전건축은 칠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왕상 6:38) 안과 밖을 금으로 덧 입힐만큼 화려했습니다. 성전 앞 두 기둥을 세워 야긴과 보아스라 이름합니다.
성전이 완성되자 솔로몬은 다윗 성(시온)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성전으로 옮깁니다.(왕상 8:1)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여 여호아의 영광이 가득하게 됩니다.(왕상 8:11) 솔로몬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연설하고 하나님께 기도(왕상 8:22-53, 대하 6:12-42)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것이며, 혹시 죄를 범해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응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여인과 우상숭배에 빠지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어 바로의 딸과 혼인 관계를 맺어 정치적 입지를 강하게 합니다.(왕상 3:1) 당시 애굽은 세계최강의 나라였습니다. 솔로몬은 애굽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바로의 딸을 위해서 특별한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왕상 7:8) 솔로몬은 애굽의 공주 뿐 아니라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집에 들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 11:1)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이었습니다.(왕상 11:1-3) 이방 여인들은 우상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깊은 우상숭배로 나아가는 터를 닦에 놓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로 인해 시돈의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 모압의 그모스 등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The Idolatry of Solomon
솔로몬은 나이가 들어 조상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말년에 행한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을 두 나라로 만들게 했습니다. 왕이 된지 ‘사십 년’(왕상 11:42)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시대는 120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마치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 모두 40년의 통치를 통해 이스라엘은 한 나라로서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사사시대의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나라를 세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6. 분열왕국시대1(B.C. 931-840?)
6.(1)분열왕국시대1(B.C. 931-840?)
드디어 이스라엘 분열왕국 시대로 들어왔습니다. 분열왕국시대는 그 이전시대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한 나라가 아닌 두 나라가 되었고, 정세적으로 굉장히 복잡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아래로는 애굽과 에돔, 동쪽으로는 모암과 암몬이 계속하여 요동치고, 북쪽으로는 시리아가 자리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나라는 앗수르와 바베론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은 이스라엘 역사에 매우 중요한 나라들입니다.
분열왕국 시대에서 남유다는 다윗과 솔로몬의 계보를 이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왕조가 여러번 바뀝니다. 그럼에도 북왕조는 오므리와 왕조와 오므리 왕조를 제거하고 일어난 예후 왕조가 큰 축을 이루게 됩니다. 저는 분열왕국 시대를 북왕국에 초점을 맞추어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를 두 개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분열왕국1에서는 오므리왕조까지를 다루고, 분열왕국2에서는 예후왕조와 앗수르에의해 멸망당하는 시기까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분열왕조3에서는 남유다만 남겨진 722-에서 586년까지 다루겠습니다. 엄밀하게 3은 분열왕국이 아닌 단일왕국, 또는 생존왕국으로 구분하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1) 분열왕국시대(B.C. 931-840?)
2) 분열왕국시대(B.C. 840?-722)
7. 포로시대(B.C. 722-420?)
6.1 분열왕국시대 개요
솔로몬은 통일왕국시대의 마지막 왕이자 부와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가 그려내는 솔로몬은 의외로 부정적입니다. 포로기의 관점에서 기록된 열왕기는 솔로몬을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중요한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굽왕 바로의 딸과의 결혼과 수많은 이방여인들과의 결혼은 그들의 우상을 예루살렘으로 끌여 들이는 이유가 됩니다. 솔로몬의 초기는 겸손과 지혜의 왕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상숭배에 빠진 어리석은 왕이 됩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 왕국은 분열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부와 영광의 왕이었지만 그러한 부와 영광을 유지하게 위해 백성들을 학대고 착취했던 왕이었습니다. 초기에 반란을 정복한 후 솔로몬은 평생 전쟁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하지만 후반부에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솔로몬의 학대와 착취를 견디지 못해 백성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두 개로 나뉘게 됩니다. 남유다는 정통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정통성이 없을뿐 아니라 거짓 정통을 만들기 위해 더욱 우상숭배에 빠져듭니다. 초대왕인 여로보암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숭배는 ‘여로보암의 길’이란 고유명사가 될 만큼 북이스라엘을 우상의 나라로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분열왕국 1차에서는 북왕국을 중심으로 여로보암에서 오므리 왕조의 멸망까지 다루겠습니다. 남왕국은 여호사밧까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먼저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읽으시고 자세한 내용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남유다
이름/등극한해
북이스라엘
이름/등극한해
르호보암 931
여로보암 931
아비야 915
아사 911
나답 910
바아사 909
엘라 886
시므리 885/ 오므리 885
아합 874
여호사밧 873
이하시야 853
요람(여호람) 848
요람(여호람) 852
아하시야-아달랴 841
예후 841
여호아스 835
여호아하스 814
여호아스 798
아마샤 796
여로보암2세 782
웃시야(아사랴) 767
스가랴 753
샬롬 752 / 므나헴 752
브가히야 742
요담 740
베가 740
아하스 731
호세아 732
멸망 722
히스기야 715
므낫세 687
아몬 642
요시야 640
여호아하스 609
여호야김 609
여호야긴 598
시드기야 597
6.2. 솔로몬의 죽음과 북왕국의 시작
솔로몬의 말년
솔로몬의 말년에 하나님을 솔로몬을 징계하기 위하여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킵니다.(왕상 11:14) 하닷은 에돔 왕의 아들이었지만 요압이 정복할 때 애굽으로 피난 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일으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합니다.(왕상 11:26)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할 때 부지런하여 요셉 족속을 감도하게 합니다. 여로보암이 길을 갈 때 실로 사람 선지자 이히야 그는 만나 자신이 입은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잘라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실 밀곰을 경배”했기 때문입니다.(왕상 11:33) 솔로몬일 소식을 듣고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도망가 바로 시삭에게 몸을 의지합니다. 결국 솔로몬은 왕이 된 지 사십 년이 되 숨을 거둡니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솔로몬이 죽자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사람들이 애굽에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 르호보암에게 나갑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이 멍에를 무겁게 했으니 우리에게는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왕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왕상 12:1-4) 르호보암은 신하들을 불러 의논합니다. 나이든 신하들은 백성들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과 의논합니다. 젊은 신하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말하며 멍에를 더 무겁게 하라고 말합니다.(왕상 12:6-15) 결국 유다 지파 외에는 나머지 열지파는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이 시작됩니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이며 암몬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4:31) 르호보암은 우상숭배자였고,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르호보암을 징계하기 위해 바로 시삭을 보내 예루살렘을 치게 하십니다.(왕상 14:25-28) 십칠 년 동안 왕으로 지냈습니다.(왕상 14:21)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여러로보암은 왕이 되자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절기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게 되면 자신에게 여러가지로 불리하게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왕상 12:25-33)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고, 절기도 자신이 마음대로 정한 여덟째 달 열 다섯째 날에 절기로 정하고 벧엘의 제단에 올라가 분향합니다.(왕상 12:33) 이 때 선지자가 나타난 후에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는 후손이 이 제단에 제사장들을 제물로 보치고 사람의 뼈를 불살라 사르리라고 예언합니다.(왕상 13:2) 후에 실제로 유다의 유시야 왕이 벧엘의 단을 허물고 산당을 부숩니다.(왕하 23:15) 여로보암은 선지자의 경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이 만든 잘못된 종교제도는 북이스라엘에 멸망하는 원인이 됩니다.(왕상 13:33-34)
유다: 아비얌(3년)과 아사왕(41년)
아비얌은 삼 년 동안 왕으로 있었습니다.(왕상 15:2) 어머니는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입니다. 아비얌이 죽고 아사가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사의 어머니가 아비얌의 어머니가 동일합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마아가는 아사의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로 보입니다. 아사는 마아가가 아세라상을 만들자 태후를 폐하고, 우상을 찍어 불살라 버립니다. 르호보암 이후 남유다의 왕들은 계속하여 전쟁을 치릅니다.(왕상 14:30, 15:6, 16) 그런데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유다를 치러 와서 라마에 성읍을 건축하자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국 곳간에 은금을 아람과 벤하닷에게 바치고 쫓아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 아사의 실수입니다. 아사왕은 나이들어 발에 병이 걸려 죽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나답(2)과 바아사(24년), 엘라(2년) 시므리(7일)
유다 아사 왕 이년 째에 여로보암이 죽고 아들 나답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는 고작 2년 동안만 왕 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죄를 짓자 하나님은 잇사갈 족속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 모반하여 왕이 됩니다.(왕상 15:27) 바아사는 왕이 될 때 여로보암에 속한 모든 사람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입니다. 이것은 실로에서 선지자 아히야가 했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왕상 15:29)
바아사는 이스라엘 왕이되어 24년을 통치합니다. 바아사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말씀을 보내 바아사를 꾸짖습니다.
[왕상 16:2-4] 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열왕기 기자는 바아사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고 다만 그가 죽어 디르사에 장사되었다고 보고합니다. 24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바아사는 기록될 가치가 없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아사 왕 이십육 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엘라는 2년 동안 왕 위에 있었습니다. 엘라는 병거 절반을 통솔하는 시므리가 모반하여 엘라가 술을 마실 때 죽입니다. 시므리는 모반할 때 엘라의 가족과 친족 등 모든 사람들을 죽입니다. 선지자 예후에게 했던 말이 성취된 것입니다.(왕상 16:10-14) 시므리는 왕이 되었지만 고작 7일 동안만 왕으로 있었습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작: 오므리(12년) 아합(22년)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군사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지휘관인 오므리를 왕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왕으로 삼자 내전이 일어납니다. 결국 오므리가 승리하여 정식적인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정통성이 없었을뿐 아니라 불신앙적인 사람들이어서 끊임없이 서로 죽이고 또 죽이고, 모반하고 또 모반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오르니는 성경에서는 몇 장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오므리는 성경 밖에서 더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는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으로 부를 만큼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오므리는 내전이 끝나자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서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합니다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부릅니다.(왕상 16:24)
아사 왕 38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사마리아에서 22년을 통치합니다. 성경은 간략하게 소개하던 왕들의 이야기를 아합 왕에서는 길게 늘어뜨리고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아합 이야기는 왕상 16:29-22:40까지 이어집니다. 아합의 이야기를 성경의 분량에 따라 약간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합, 시돈 사람의 왕 옛 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다.
열왕기 기자는 아합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이유를 밝히려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멸망의 이유가 되는 우상숭배를 강조합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바알 우상을 전국적으로 퍼뜨린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인 시돈의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솔로몬처럼 아합도 아내 이세벨과 함께 바알 숭배 사상을 기꺼이 허락합니다. 바울은 원래 가나안 민족들이 섬기는 신이었지만 아합 왕 이전까지는 그다지 중요한 우상은 아니었습니다. 아합 왕 이후 북이스라엘뿐 아니라 남유다도 바알 숭배 사상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전체가 멸망당한 이유는 바울 숭배 사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열왕기 기자는 아합을 통해 어떻게 바울 숭배 사상이 이스라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를 고발합니다.
아합은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왕상 16:30)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고,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울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세벨을 아내로 삼을 뿐 아니라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왕상 16:31-32)습니다. 바알뿐 아니라 아세라 상까지 만들어 섬겼습니다.
엘리야와 과부
어느 날 길르앗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왕상 17:1)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을 하고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냅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시켜 먹을 것을 갖다 줍니다. 시간이 지내자 시내가 마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보냅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마지막은 남은 떡과 기름으로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비가 지맨에 내리기까지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왕상 17:14) 하필이면 그 과부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살려냅니다.
엘리야: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들과 대결하다
비가 그친지 삼년이 되었을 때 엘리야는 아합에게 나타나 바알 선지자들을 불러 모으라고 말합니다. 바알 선지자만 450명이고, 이세벨 선지자도 400명이나 되었습니다.(왕상 18:19) 그들과 진짜 살아 있는 신이 누군가 대결하자고 제안합니다. 제단을 쌓고 바알 제사장들은 신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이사야는 중간에 그들에게 신이 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라고 조롱합니다. 바울 제사장들은 자신의 몸을 해하고 소리 질러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녁 소제 시간이 되자 엘리야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합니다. 돌 열두 개를 취하여 제단에 쌓고, 도랑을 만들고 제단 위에 송아지를 각을 떠 올려놓습니다. 물 네 통을 채워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합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하나님께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하자 하늘에 불이 내려와 제단 위의 모든 제물을 태우고 도랑에 있던 물가지 핥아 올라갑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입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서 바다를 보고 기도하자 비가 쏟아집니다.
도망가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준비함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이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경고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이야기를 듣고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자기를 따르는 사환에게 브엘세바에 머물게 하고 홀로 광야로 들어갑니다. 광야로 하룻길쯤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합니다.(왕상 19:1-8) 하나님을 천사를 통해 먹을 것을 주시고 위로합니다. 엘리야는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호렙 호렙이라는 단어는 한글 성경 기준으로 14번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산 호렙’이란 표현은 출애굽기 3:1이며,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이다.
은 시내산의 다른 명칭입니다.(출 3:1)
시내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났으며, 자신 홀로 남았다는 것입니다.(왕상 19:10) 하나님은 엘리야를 기이한 체험을 주십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불이 있지만, 그 가운데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세미한 음성이 엘리야에게 들려옵니다. 엘리야는 다시 이스라엘이 언약을 버리고 제산을 헐고 자신 홀로 남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앞으로 해야할 일을 지시하십니다. 광야의 길을 돌이켜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사를 찾아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할 선지자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를 통해 바울 숭배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아직 바울에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왕상 19:15-18)
아합과 나봇의 포도원
열왕기 기자는 엘리야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시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아합 왕의 악을 고발하고 바알 숭배로 인해 긔 심판을 명백히 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포도원이 하필이면 아합의 여름 궁전 곁에 있었습니다. 아합이 나봇을 찾아가 돈을 많이 줄테니 팔라고 이야기 했지만 나봇은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그 포도원은 파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무룩해진 아합의 얼굴을 본 이세벨이 사연을 묻고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세벨은 거짓 증인을 불러 나봇을 재판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인의 증언을 통해 나봇을 죽임을 당합니다.(왕상 21:1-16) 나봇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합은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원을 취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보러갔을 때 아합에게 나타나 아합과 가족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너의 피를 핥을 것이라고 저주합니다.(왕상 21:17-26) 그런데 놀랍게 아합이 엘리야의 저주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일부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왕상 21:27-29)
아합의 죽음과 미가야 선지자
여호사밧이 남유다의 왕이 되자 그동안 원수처럼 지내며 전쟁하던 두 나라가 화평을 갖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화평을 넘어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힘을 합해 아람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선지자들을 청하여 묻습니다. 그런데 모든 선지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런데 오직 미가야 선지자만이 전쟁하면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화가 난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둡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예언을 들어보자 청하지만 미가야는 동일한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상 회의를 통해 미혹의 영을 보내어 아합을 꾀어 죽이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빰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왕상 22:23)라고 말합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였고, 아합의 귀에 좋은 말만하는 악한 자였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전쟁이 나갑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완전히 패하고 아합을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왕상 22:34) 쏜 것이 아합이 입은 갑옷 솔기에 맞혀 부상을 당합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 많은 피를 흘려 죽고 맙니다. 시신을 수레에 실어 사마리아로 가져옵니다. 사마리아 못에서 병거를 씻을 때 개들이 와서 피를 핥아 먹습니다. 그곳은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습니다.(왕상 22:38)
여호사밧
유다 왕 아사가 죽자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어 25년을 통치합니다. 여호사밧을 아버지 아사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여호와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의 남편인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친하게 지낸 것입니다. 함께 교제도하고 전쟁도 나갔지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하여 아람 왕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선지자 예후가 책망합니다.
[대하 19:2-3]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품도 좋았지만 관계에 얽매여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만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재판장을 세워 시비를 가리도록 했습니다.(대하 19:4-11) 모암과 암몬이 연합해 쳐들어 올 때 간절히 기도하여 승리하기도 합니다.(대하 20-21)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여호사밧 또 교제합니다. 함께 배를 만들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띄웁니다. 아마 두 나라가 연합해 무역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싫어하시고 배들을 부셔지게 하십니다.(대하 20:31-37)
여호사밧의 잘못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들 여호람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결혼 시킵니다.(대하 21:6) 여호사밧이 심은 우상 숭배로의 길이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하시야에게 넘어가고 온 유다가 바울 숭배 사상에 물들게 됩니다. 여호사밧을 볼 때마다 안타가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너무나 좋은 왕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성경에서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에녹이고, 다른 한 명은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은 이후 얼마 후에 하늘로 승천한 듯 보입니다. 아합이 죽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합니다.(왕하 1:1)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병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갑니다. 엘리야는 사마리아의 사자를 만나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하나님은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데려가십니다. 아하시야 죽자 아합의 집은 예후에 의해 멸족(滅族) 당합니다. 이 부분부터는 [분열왕국 2]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6. 분열왕국시대2(B.C. 841-722)
6.분열왕국시대2(B.C. 841-722)
오므리 왕조가 몰락한 기원전 841년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스라엘을 바알 왕국으로 만든 이세벨이 죽었다는 것과 그 이후 이스라엘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남유다는 이세벨의 딸 아댤라가 왕비가 되면서 남유다도 우상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예후의 등장으로 오므리 왕조는 일시에 제거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는 외부의 세력은 멀리 있는 애굽이나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긴장의 요소가 됩니다. 애굽은 거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앗수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애굽과 충돌하게 됩니다. 중간에 자리한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 후에는 바벨론 사이에서 계속하여 갈등하게 되고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분열왕국 2>에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722년까지만 다룰 것입니다. <분열왕국 3> 즉 <단일왕국>에서는 남유다의 마지막 시간과 멸망을 다루겠습니다. 자, 다시 구약의 7시대 구분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586)
1) 분열왕국시대(B.C. 931-840)
2) 분열왕국시대(B.C. 840-722)
3) 분열왕국시대(B.C. 722-586)
7. 포로시대(B.C. 586-420?)
6.1 분열왕국시대2 개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무너진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뜻밖의 인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후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새로운 역사전 전화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예후는 오므리와 아합, 그리고 아하시야와 요람으로 이어지는 오므리 왕조를 척결하고 예후 왕조를 시작합니다. 물론 예후가 우상숭배를 완전히 끊어내고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다시 돌이킨 것은 아닙니다. 예후는 혼합주의자였습니다. 예후 이후 이스라엘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비록 여로보암 2세에 의해 잠깐 동안 옛 영광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결국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남유다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로 인해 여호와 숭배에서 바알 숭배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는 여호와 다른 이방신들을 동시에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아합과 결혼하여 왕비가 된 이후 북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를 완전히 추방해 버렸고, 오직 바알만을 섬기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달랴로 인해 잠시동안 바알을 숭배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사랑하셔서 여호와를 섬기는 왕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달랴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섭정을 하면서 왕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숨겨 성전에서 키우게 됩니다. 그로인해 다시 아댤랴를 제거하고 다윗 왕가를 세웁니다. 이후에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왕들을 통해서 절망 속에서 부흥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 멸망합니다. <분열왕국2>에서는 앗수르에의해 멸망당하는 기원전 722년까지를 다룹니다. 이때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고,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합니다.
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사역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잠깐 동안 신적 모습으로 변화하실 때 구약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더불어 대화합니다.(마 17:3) 오므리 왕조의 몰락은 엘리사의 생애와 같이 합니다. 아합이 죽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왕상 22:51) 그는 왕이 되어 고작 2년 동안만 통치합니다. 그는 아합을 훨씬 능가하는 악한 왕이었고, ‘여로보암의 길’(왕상 22:52)로 행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어 에그론 신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기 때문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시야는 군대를 보내 엘리야를 잡아오게 합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보고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이 죽습니다.(왕하 1:10) 두 번째도 역시 동일했습니다. 세 번째 온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들은 엘리야에게 구릎을 꿇어 간구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죽습니다.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어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요람)이 대신 왕이 됩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마지막 사역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회리 바람으로 하늘로 데려 가십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기 전에 엘리사의 한참을 동행합니다. 벧엘로(왕하 2:2), 여리고로(왕하 2:4), 요단으로(왕하 2:6) 함께 다닙니다. 요단에서 엘리야는 겉으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두 사람은 마른 땅으로 요단을 건너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강을 건넌 것을 상징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기에 요단을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단을 건넌 후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ㄷ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갑니다.(왕하 2:11)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지 엘리사는 엘리사가 한 것처럼 자신도 엘리야가 남기고 간 옷으로 요단을 치니 요단이 갈라지고 엘리사는 요단을 건너갑니다.
물의 근원을 고치고 저주함
엘리사의 사역은 엘리야에 비해 기이합니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접하는 것 같습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어떤 마을에 물이 나빠 물의 근원을 찾아가 소금을 뿌려 고치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면서 작은 아이들이 나와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릴 때 그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그러자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의 사십 명을 찢어 죽입니다. 엘리사는 갈멜 산으로 갔다고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왕하 2:19-25)
모압과의 전쟁, 거문고를 타며 계시하다
여호람이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호람이 다스릴 때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 왕 메사를 치러갑니다. 이때도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했던 것처럼 선지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엘리사를 부릅니다. 엘리사는 거문고를 타면서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들려줍니다. 전쟁이 일어나 엘리사의 말대로 승리합니다.(왕하 3)
선지자의 아내와 기름
선지자 중의 한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빚 때문에 자녀들이 팔려간다고 말하며 도움을 구합니다.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라고 말합니다. 여인은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없다고 하자 이웃들에게 그릇을 빌려 빈 그릇에 채우라 말합니다. 그릇을 빌려 문을 닫고 기름을 부으니 빈 그릇이 없어질 때까지 기름이 나와 그것을 팔아 빚을 갚습니다.(왕하 4:1-7)
엘리사와 수넴 여인
엘리사가 수넴을 지날 때 어떤 여인이 엘리사를 붙잡아 음식을 대접하고 방을 빌려 줍니다. 어느 날 엘리사는 그 여인을 불러 소원을 말해보라 하지만 거절합니다. 게하시가 여인에게 아들이 없다 말하고 남편은 늙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여인은 기적으로 아들을 낳고 즐거워합니다. 아이가 자라나 갑자기 죽데 됩니다. 여인은 엘리야가 찾아가 아이가 죽은 사실을 말합니다. 엘리사는 여인을 따라가 아이가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의 몸을 그 아이 몸에 자신의 몸을 대니 아이가 살아납니다.(왕하 4:8-37)
그 외의 사역들
엘리사의 사역들은 엘리야에 비해 상당히 길고 다양합니다. 선지생도들이 들호박국을 먹고 죽을 뻔할 때 살려주고(왕하 4:38-41), 한 사람이 바친 보리떡과 채소로 백 명에게 주어 먹게한 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닮았습니다.(왕하 4:42-44) 엘리사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나아만 장군을 낫게 한 사건입니다.(왕하 5) 물에 빠지 도끼를 나무를 던저 건겨 올리고(왕하 6), 아람 군대와의 전쟁에서 예언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왕하 7)
2. 예후,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다
예후는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들었습니다.(왕상 20:16) 엘리사는 그 예언대로 선지자 제자 중 한 명에게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아합의 집을 치라’(왕하 9:7)라고 말하게 합니다. 예후는 기름부음을 받고 곧바로 일어나 아합의 집을 칩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에 있었습니다. 예후를 그를 찾아가 죽이고(왕하 9:24), 문병을 온 유다와 아하시야도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9:27) 곧바로 이스라엘로 가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죽입니다. 아합의 아들들도 예후의 손에 모두 죽습니다.(왕하 10) 마지막으로 바알의 제사장들을 불러 모아 모두 죽입니다. 예후를 통해 예언했던 모든 일을 성취됩니다. 예후는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3. 유다의 악녀 아달랴와 요아스
당시 유다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요람을 문병갔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당합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될 만한 모든 왕족들을 찾아 죽입니다.(왕하 11) 이때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숨깁니다. 요아스는 성전에서 육 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 일곱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시야를 앞세워 왕위를 회복시킵니다. 어린 요시야를 대신해 여호야다가 유다에서 개혁을 단행합니다.(왕하 11:17-21)
요아스는 칠 세에 왕이 되어 40년을 통치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 야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대하 24:2) 두 아내를 두었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여호야다와 함께 성전을 보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나이 들어 죽자 여호야다는 돌이켜 방백들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를 시작합니다.(대하 24:15-19)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대하 24:21) 이 일로 요시야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부하들의 반역으로 죽고 맙니다. 다윗 성에 장사되었으나 왕들이 묘실에는 장사되지 못한 비운의 왕이 됩니다.(대하 24:25)
4. 북이스라엘의 멸망(B.C. 798-722)
B.C. 798-722까지는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에게 위기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반역과 모반의 역사로 점철됩니다. 아래의 표를 통해 왕들의 모습들을 살펴봅시다.
남유다
이름/등극한해
북이스라엘
이름/등극한해
아하시야-아달랴 841
요아스, 여호아스 835
아마샤
796-767
웃시야(아사랴)
791-739
요담
747-731
아하스
731-716
히스기야
716-687
예후 841
여호아하스 814
여호아스 798
여로보암2세 793
스가랴 753
샬롬 752 / 므나헴 752
브가히야 742
베가 740
호세아 732
멸망 722
유다의 아마샤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요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됩니다.(왕하 14:1) 25년 동안 통치합니다 왕이 되자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죽였지만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소금 골짜기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에돔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다 패하고 맙니다. 아마샤의 말년는 비참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신하들이 반역하자 라기스로 도망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14:17-20)
여로보암 2세와 그 이후의 왕들
북이스라엘의 왕 요시아는 유다왕 아마사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얼마 후 죽고 맙니다. 요시아가 죽자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41년간을 통치합니다. 성경에서는 단 몇 구절로 끝내지만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 부강했고, 광대한 영토를 되찾은 시기였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초대왕이었던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따릅니다. 이때 요나 선지자는 영토가 회볼 될 것을 예언합니다.(왕하 14:25) 여로보암의 이후 북이스라엘은 급속하게 패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자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되어 여섯 달 동안만 통치합니다. 살룸이 반역하여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왕하 15:8-12)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의 끝을 가져옵니다. 4대 동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살룸은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고작 한 달 동안의 왕이었습니다.(왕하 15:13)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반역을 일으켜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왕하 15:14) 므나헴은 십 년 동안 왕이 되어 통치합니다.(왕하 15:17) 므나헴이 죽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어 2년간 통치합니다.(왕하 15:22-23) 그가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자 하나님은 장관으로 있던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게 하여 브가히야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게 합니다.(왕하 15:25) 베가는 20년 동안 왕으로 있습니다. 베가 역시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엘라의 아들 호세아 반역하여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됩니다.(왕하 15:30) 호세가 왕이 될 때(기원전 732년)는 앗수르가 급속하게 힘을 되찾아갈 때였습니다. 앗스르 왕 살만에셀이 쳐들어오자 그에게 종이 되고 조공을 바칩니다.(왕하 17:3) 그러나 호세아는 살만에셀을 반역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자 그를 옥에 가두고 삼 년 동안 사마리아를 에워싸 멸망시킵니다. 결국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5. 남유다: 웃시야에서 아하스까지
아사랴(웃시야)
왕하 15:1-7, 대하 26장
여로보암2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남유다는 아마샤가 죽고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16세의 나이로 왕이 됩니다.(왕하 15:1-2) 52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은 이스라엘 전역사에서 가장 긴 통치 기간입니다. 웃시야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왕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강대국의 권력 공백기 속에서 남유다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하나로 이끌러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강력하고 엄청난 리더십을 가진 웃시야를 열왕기 기장은 고작 7절로 정리합니다. 그는 말년에 교만하여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자신이 집례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고 나병에 걸립니다.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어 숨어 지냅니다.(왕하 15:5-7) 역대기 기자는 좀더 길고 상세하게 웃시야의 행적을 다룹니다.(대하 26) 요시아에게 여호야다가 있었다면 웃시야에게는 스가랴가 있었습니다.(대하 26:5)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를 가까이에 두고 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웃시야는 많은 건축을 했고,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농사를 좋아하여 망대를 세우고, 가축을 기르고, 농부와 포도원 지기를 두었습니다.(대하 26:10)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도 다듬고 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더 주변 나라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의 서술대로 말년에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52년이라는 긴 통치 기간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선지자로 부르십니다.(사 6:1)
요담(Jotham)
왕하 15:32-38, 대하 27:1-9
웃시야가 죽고 아들 요담이 왕이 25세에 왕이 됩니다.(왕하 15:32-33) 16년간 통치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해 행했으나 산당에서 제사 드립니다. 여호와의 성전 윗문을 건축합니다.(왕하 15:35)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조공을 받습니다.(대하 27:5) 역대기 기자는 요담이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하스(Ahaz, B.C. 731-716)
요담의 죽자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스무 살에 유다의 왕이 됩니다.(왕하 16:1) 16년간 통치합니다. 아하스는 다윗과 같지 않아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들을 섬기며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와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를 보낸 아하스를 칩니다. 이 때 아하사는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뇌물을 주고 용병을 청합니다. 디그랏 빌레셋은 뇌물을 받고 올라와 아람과 이스라엘을 칩니다. 디그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아람)에 가서 우상 제단을 보고 그것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만들게 합니다. 우리야 제사장에게 명하여 그곳에서 모든 제사를 드리도록 합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의 사람이었고(왕하 16),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을 닫고 자신이 다메섹에서 본 따 만든 새로운 제단에서 예배하도록 했습니다.(대하 28:22-26) 결국 아하스는 말년에 아람 왕에게 공격을 당하고 많은 무리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대하 28:5) 또한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십이만 명을 죽입니다.(대하 28:6)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이 왔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를 찾아가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며 징조를 구하라 합니다.(사 7)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아하시는 징조를 구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징조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사7:14)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모반과 모만이 이어집니다. 베가가 죽은 후 앗수르는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물러갑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조공 바치는 것이 고통스러워 앗수르 배신합니다. 앗수르는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해 결국 기원전 722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왕하 18:9-12) 이것으로 북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남유다만이 남아 생존하게 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분열왕국 3]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6. 분열왕국시대3(B.C. 722-586)
6.3 분열왕국시대3(B.C. 722-586)
북이스라엘 멸망은 유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여로보암때부터 예견이 된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은 언젠가는 멸망하게 될 미끄러운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분열왕국 세 번째 시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다시 구약 역사를 간략하게 읽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586)
1) 분열왕국시대(B.C. 931-840)
2) 분열왕국시대(B.C. 840-722)
3) 분열왕국시대(B.C. 722-586)
7. 포로시대(B.C. 586-420?)
1 분열왕국시대3 개요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을 닫고 자신이 다메섹에서 본따 만든 새로운 제단에서 예배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말년에 아람 왕에게 공격을 당하고 많은 무리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대하 28:5) 또한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십이만 명을 죽입니다.(대하 28:6) 아하스는 많은 뇌물을 바쳐 앗수르 왕에게 바쳐 아람과 이스라엘을 치게 만드십니다. 결국 아하스는 죽었음에도 왕실 묘실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 왕이 됩니다. 히스기야는 지금까지 그 어떤 왕보다 경건하고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많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했고, 여로보암의 길이 아닌 ‘다윗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죽을병에 걸려 기도함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히스기야 이후의 왕들은 멸망의 나락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들을 제공했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숭배자였고, 아몬과 역시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몬을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어 개혁을 일으켰지만 멸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요시야의 죽음 이후 유다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야긴은 무능하고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도 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남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넘기십니다.
2. 히스기야에서 요시야까지
히스기야(Hezekiah)와 앗수르
히스기야(Hezekiah)는 아하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처음 13년은 아하스와 함께한 섭정 시간이었고, 4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통치합니다. 히스기야는 열왕기 기자의 평가로는 그 어떤 왕보다 훌륭한 왕이라는 최고의 평가를 내립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5-6)
도덕적 측면에서도 다윗보다 더 훌륭합니다. 마지막 바벨론 사신들에게 국고의 기물과 보물들을 보여 준 것 외에는 흠이 거의 없습니다.
히스기야 4년(섭정 기간)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해 멸망시킵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히스기야 통치 14년이 되던 해 앗수르의 왕 산헤립(Sennacherib)이 서쪽으로 진군해 옵니다. 먼저 두로를 멸망시키고, 블레셋 지역인 아스글론과 그 주변을 순식간에 정복해 나갑니다. 지레 겁을 먹은 유다의 주변 나라들인 모암, 에돔, 암몬 등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항복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유다를 쳐들어 옵니다. 예루살렘을 남겨두고 주변부를 점령해 나갑니다.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 있을 때 신하를 보내 조공을 바치게 하고 항복하도록 권고합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빠져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국 곳간의 은금을 내어주고, 성전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 보냅니다.(왕하 18:13-16) 앗수르 왕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하를 보내 예루살렘을 치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줄 것을 듣게 됩니다.(왕하 19:6-7, 20-34)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의 군사 십판만 오천 명을 진멸시킵니다.(왕하 19:35) 전쟁에서 패한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가 그의 신 니스록(nisrok)에게 경배할 때 두 아들이 산헤립을 죽이고 도망합니다. 산헤립을 대신해 그의 아들 에살핫돈(Esarhasson)이 앗수르의 왕이 됩니다.
히스기야의 발병과 기도, 그리고 죽음
왕상 20:1-21, 대하 32:24-26, 사 38:1-8, 21-22
히스기야가 언제 병이 들었는지 시기적으로 모호합니다. 아마도 앗수르와의 전쟁 중이거나 직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히스기야는 뜻 밖의 행동을 취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라면 받아 들이거나 슬퍼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병이 낫기를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고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동안 더 늘려 줍니다. 히스기야는 증표를 구하고 이사야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합니다.(왕하 20:11)
그 때, 바벨론의 왕 브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고 함을 듣고 편지와 사자와 예물을 들고 갑니다. 들뜬 히스기야는 왕국과 나라와 보물들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찾아가 왕궁의 모든 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후손들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라고 예언합니다.(왕하 20:16-18) 히스기야는 십오 년을 채우고 조상들에게 돌아가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됩니다.
므낫세(Manasseh, B.C. 685)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됩니다. 므낫세는 믿음의 왕이었던 아버지 히스기야를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북이스라엘 아합 왕처럼 바알을 섬기며 아세라 상을 섬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기에 이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단을 쌓고 일월성신을 섬겼습니다. 므낫세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아몬(Amon, )
아몬은 22세에 왕이 되어 고작 2년간 통치합니다. 아몬은 아버지를 닮아서 므낫세처럼 온갖 악을 행합니다. 신들이 반역하여 궁에서 그를 죽입니다. 백성들이 반역자들을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왕하 21:19-26)
요시야(Josiah)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8세에 왕이 되어 30년 간 통치합니다. 왕이 된 열여덟 해에 서기관 사반을 성전에 보내 성전을 수리하도록 합니다. 대제자사장 힐기야가 사반에게 성전에서 율법을 책을 발견하여 건네 줍니다. 사반은 요시야에게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 줍니다. 왕이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듣고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왕하 22:8-13) 요시야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다는 것을 알고 백성들을 성전에 모으고 율법을 전하게 합니다.(왕하 23:1-3)
율법을 낭독을 마친 요시야는 온 백성들과 언약하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개혁을 단행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상, 일월성신을 위해 만든 모든 그릇들을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산당들을 폐합니다.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던 남창의 집을 허물고 우상의 제사장들이 있는 산당을 헙니다. 흰놈의 골짜기에 있던 도벳을 더럽게 하여 몰렉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유다의 여러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고, 태양수레를 불사릅니다.(왕하 23:11)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 안에서 머물지 않고 멸망한 이스라엘 땅까지 확대됩니다. 벧엘로 올라가 여로보암이 만들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한 제단과 산당을 허물고 아세라 목상을 빻아 불사릅니다. 산에 있던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와 제단을 더럽게 합니다. 이것은 전에 한 선지자가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만든 여로보암에게 내린 저주의 예언이었습니다.(왕상 13:2)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월절을 지킵니다. 요시야가 이러한 개혁을 온전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책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요시야의 힘으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동안 유다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았습니다.
요시야의 말년은 어처구니 없이 찾아옵니다. 애굽의 바로 느고가 앗수 왕을 치기 위해 유브라데 강으로 가는 길에 므깃도에서 요시야와 만납니다.(왕상 23:29) 바로 느고는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 지금은 앗수르를 치러 가니 나와 상관없으니 비켜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야가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치릅니다. 요시야는 결국 활에 맞아 중상을 입습니다. 전쟁을 그치고 예루살렘에 오지만 결국 숨을 거둡고 맙니다.(대하 35:20-24) 선지자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슬퍼합니다.
여호아하스(Jehoahaz)
왕하 36:1-4
요시야가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예루살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요시야 이후의 왕들은 어리석고 무능했습니다. 왕이 된지 석달 만에 바로 느고가 예루살렘에 와 그를 폐하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이라 부릅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데려갑니다.
여호야김(Jehoiakim)
왕하 36:5-8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됩니다. 그의 왕이 된 날짜는 고작 ‘십일 년’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석달에 비하면 많은 편입니다. 여호야김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여호야김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여호야긴(Jehoiachin)
왕하 36:9-10
고작 8세의 나이로 왕이 된 야호야긴은 실제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석달 열흘 동안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사람을 보내 보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 여호와 전의 귀한 그릇들도 함께 가져갑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시드기야(Zedekiah)왕하 36: 11-21, 렘 52:1-34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됩니다. 십일 년 동안 통치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속하여 충고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드기야를 마지막으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9년에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시드기야 11년이 되던 해까지 포위합니다. 기근이 일어나고 시드기야는 군사들과 함께 도망갑니다. 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히고 하맛 땅 리블라에 있던 느부갓네살 왕에게 끌려 갑니다. 그곳에서 시드기야는 심문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을 죽임을 당합니다.
성전을 허물고, 성벽을 부수며, 왕와 방백들이 소유한 모든 보물을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성전은 불태워져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렇게 칠십 년 동안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레스의 칙령이 내릴 때까지 바벨론에 머물게 됩니다.
[성경개론] 구약 역사 7. 포로․재건시대(B.C. 586-420?)
7. 포로․재건시대(B.C. 586-420?)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기원전 722년에 멸망을 당합니다. 앗수르는 신바벨론에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바벨론은 기세를 몰아 애굽을 평정하고 레반트 지역을 점령해 나갑니다. 결국 남유다도 기원전 586년 신흥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포로기의 시작은 정확하게 남유다가 멸망한 기전원 586년이 아닙니다. 포로기를 세 번에 결쳐 이루어지며 결국 최종적으로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면서 유다는 나라로서의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포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예루살렘 멸망 전후로부터 시작하여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했던 마지막 시간까지를 간략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586)
1) 분열왕국시대(B.C. 931-840)
2) 분열왕국시대(B.C. 840-722)
3) 분열왕국시대(B.C. 722-586)
7. 포로시대(B.C. 586-420?)
7.1. 포로․재건시대 개요
포로 재건 시기는 두 시대로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멸망이 기원전 586년에 이루어지기 했지만 포로의 시작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 멸망 시기키 전에 식민지로 삼고 포로들을 잡아갔습니다. 유다 멸망 이후에도 모든 사람들이 바벨론에 끌려 간 것이 아닙니다. 왕과 귀족, 관리들 중심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일반 백성들의 대부분은 그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후에 주변 나라들에게서 온 이방 민족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이방세력들이 예루살렘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포로 이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지낸 생활은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다니엘서와 에스더서를 통해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노예로 살거나, 다니엘과 같은 일부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터전을 잡고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바벨론이 메대-바사(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곧바로 포로들을 귀환시킵니다. 바벨론이 억압 정책을 폈다면 바사는 융합 정책을 통해 광대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포로 귀환은 자원자에 한하여 세 차례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을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해 일어납니다. 이방민족과 결혼한 사람들을 제사장의 자격에서 박탈시키는 등 개혁을 일으키지만 결국 유대는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말라기서를 끝으로 구약 속의 예언은 끊기고 제2성전기로 불리는 신구약 중간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말라기 선지자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7.2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끼어있는 이스라엘은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앗수르가 강하면 앗수르의 지배를 받아야했고, 애굽이 강하면 애굽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친앗수르파와 친애굽파가 항상 갈등을 낳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합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신흥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패배 당하고 새로운 열강의 패권(霸權)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앗수르가 바벨론으로 바뀔 뿐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벨론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포로 시기는 3차에 걸쳐 일어납니다.
1차 포로 시기(B.C. 605?)
렘 24:1 단 1:1-7
최초의 포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B.C. 605-562)에 의해 일어납니다. 43년이라는 짧지 않는 통치 기간 동안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을 세계 최대 최강의 나라로 만듭니다. 바벨론은 70년 정도의 극히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지만 성경 전반에 걸쳐 강력한 이미지를 심을 정도로 강하고 위대했습니다. 속속 발견되는 바벨론 왕국의 화려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으로도 눈부실 정도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이후 바벨론은 급속하게 위축되어 결국 메대-파사(성경의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605년 느부갓네살은 왕이 된 후 애굽 정벌에 나섭니다. 갈그미스 평야에서 애굽 군대와 맞붙어 싸웁니다. 이것을 2차 갈그미스 전쟁이라 부릅니다. 1차 갈그미스는 그의 선왕 나보폴라살이 갈그미스에서 애굽과 전쟁을 말합니다.(609) 애굽을 격파한 느부갓네살은 곧바로 바벨론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많은 포로들을 끌고 돌아갑니다. 이때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데리고 갑니다.(렘 24:1) 이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인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도 끌려 갑니다. 후에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개명합니다.(단 1:1-7
2차 포로시기(B.C. 597)
왕하 24:8-16, 대하 36:9-10
2차 포로는 여호야긴 왕 때 일어납니다. 고작 18세에 왕이 되었지만 석 달 동안만 통치하다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갑니다. 바벨론은 왕은 동일한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가져가고, 솔로몬이 만든 성전의 금 그릇을 파괴합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많은 사람과 지도자, 군사들과 장인들을 데리고 떠나랍니다. 2차 포로 시기는 유다의 생존의 위태로울 만큼 치명적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습니다. 맛다니야는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쳐 부릅니다. 2차 포로기에 여호야긴을 포함하여 에스겔서를 기록한 에스겔 선지자(제사장이었다)를 잡아 갑니다. 에스겔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징벌하기 위함이라고 예언합니다. 에스겔서의 초중반은 유다백성들의 수많은 죄악들을 열거합니다.
3차 포로시기(B.C. 586)
왕하 24:17-25:21, 대하 36:11-12, 렘 39:1-10
포로기를 70년으로 계산하는 것은 기원전 605년 바벨론의 1차 예루살렘 공격으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539년 바벨론이 멸망할 때가지는 정확하게 70년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66년 정도의 기간을 성경은 계속하여 70년을 이야기합니다. 구약의 저자들은 포로 기간을 성전이 파괴된 기원전 586년과 재건된 515년을 70년으로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엄밀하게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 고레스 왕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포로 기간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는 계속하여 바벨론-바사(페르시아)-헬라 제국에 의해 식민지로 남기 때문입니다.
7.3 바벨론에서의 생활
다니엘 에스겔 에스더
포로기의 상황을 그려낸 성경은 에스겔과 다니엘, 그리고 에스더가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회개에 대한 촉구와 환상으로 채워져 있어서 포로기의 정서는 담고 있으나 실제적인 상황은 모호합니다. 다니엘서는 귀족의 자녀들로 바벨론에 잡혀가 바벨론의 관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일반 평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포로 생활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바사(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차 포로였던 다니엘의 삶은 일반 포로들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귀족이었고, 바벨론에서 일반 평민이 아닌 관리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벨론의 특징들을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포로들이었지만 학대를 받거나 심각한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니엘서와 에스더서를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과 이후 바사에서도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에서도 어느 정도 참여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은 순수한 유대인은 아니지만 일정한 공간에서 자유를 가지고 마을을 형성하고 터전을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촌락이 형성되고, 마을의 장로들이 존재하고, 어느 정도의 치안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자기의 집도 소유했습니다. 관리뿐 아니라 상업도 가능했습니다. 즉 권력과 재산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후에 포로에서 돌아올 때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쉽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게 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많은 귀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이 터전을 닦은 바벨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헌신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7.4. 포로 귀환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라갸 말라기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포로 후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학개는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들려줍니다. 화려했던 바벨론은 순식간에 멸망합니다. 사치하고 게으른 왕은 결국 선조가 물려준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메사-파사 연합군에 의해 조금씩 금이 가던 바벨론은 결국 바사의 고레스에의해 완전히 무너집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평정한 후 곧바로 칙령을 내려 원하는 자신들은 고토(古土)로 돌아가도 된다고 허락합니다. 이렇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귀환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1차 귀환은 바사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로 그해(B.C. 438)에 이루어졌고, 2차는 80년 후인 B.C. 458년에 일어납니다. 3차 귀환은 2차 귀환 후 13년이 지난 아닥사스다 20년인 B.C. 444년에 일어납니다. 3차 귀환 후 얼마 가지 않아 구약 성경 속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아마다 말라기가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 놓인 것은 성전 건축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1차 포로 귀환(B.C. 438)
대하 36:22-23, 스 1:1-2:70, 6:3-5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는 포로로 끌려온 민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칙령을 내려 허락합니다. 유대민족뿐 아니라 다른 많은 민족들도 원하는 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족들은 돌아가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최소 1/3 정도는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관리로 있었던 다니엘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라 1:1-4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의 칙령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사항은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포로 ㅇ이후 이스라엘이란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이스라엘이란 명칭을 가져갔고, 유다 지파를 남왕국이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고 남유다만 남겨진 상태였기 때문에 포로기부터는 이스라엘이란 호칭보다는 유다 또는 유대라는 호칭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이 용어는 현재도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고레스칙령이 발표된 그해(B.C. 538)이거나 그 다음해 귀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자는 세스바살이었습니다.(스 5:14) 그레스를 그를 유다 총독을 세워 자원하는 자들과 함께 유대로 돌아가게 합니다. 함께 동행한 총수는 42,360명이며 7,337명의 노비도 함께 돌아갑니다.(스 2:64-65)
에스라 2:64-65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1차 귀환자들이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해야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 없는 율법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70년 동안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가 제사를 드리지 못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건축은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시작은 훌륭했습니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주축이 되어 터를 세우고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성전 건축이 힘들어 지자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고 당장 먹고 살아야할 집을 짓고 농사에 마음을 쏟기 시작합니다. 결국 성전 건축은 여러가지 이유로 중단되고 16년 동안 아무러 진척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리오 2년(B.C. 520, 학 1;1)이 되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성전건축이 재기 됩니다. 그러나 또 반대에 부딪혔지만 페르시아 왕궁이 고레스칙령을 확인 해 줌으로 공사가 재기되어 4년 후인 다리오 6년(B.C. 515)에 완공 됩니다.
*유다(Judea) 와 유대인(Judean) - 유대인(Jew)
원래 유다는 야곱의 아들 중 한 명입니다. 유다는 유다지파에서 왔으면 지파 이름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유다를 일컫는 지역 이름입니다. 즉 시기적으로 남왕국의 사람들을 유다인(Judahite, Judean)이라고 부릅니다. 유다지파가 대부분이었기에 유다지파 사람들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라는 단어는 바사(페르시아)가 통치할 때 갈릴리와 사마리아, 그리고 유대 지역을 분할 때 생겨납니다. 유대인(Judean)은 유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 민족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글에서는 구분하지 않지만 유대인(Jew)이란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Jew’는 로마사람들이 사용한 단어로 유대 지역뿐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처럼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유대인(Judean)은 유대지역에 사는 사람을 유대인(Jew)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문화적 의미가 강한 단어입니다.
2차 포로 귀환(B.C. 458)
에스라 7-10장, 아닥사스다 7년
성전이 완공 된 후 58년이 지나 2차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왜 58년이 지나야 했는지 의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에스라서에 의하면(9장) 성전이 완공 된 후 유대인들은 다시 이전처럼 우상숭배와 이방인들과의 결혼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는 의지도 열심도 대부분 사라진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바사에 사는 유대인들도 비슷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허락을 받고 자원하는 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이것이 2차 귀환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아바하 강 주변에 모이게 하여 함께 출발합니다. 숫자는 1차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어 고작 1500명 정도였습니다.(스 8)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방여인들과의 결혼을 취소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합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사역 만으로 턱없이 부족했고, 에스라를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갑니다.
3차 포로 귀환(B.C. 444)
느 1-13, 아닥사스다 20년
3차 귀환은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됩니다. 에스라가 귀환한지 약 13년 정도가 흐른 뒤였습니다. 느헤미야의 귀한 때는 함께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숫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군대장관과 마병’(느 2:0)을 보낼 정도라면 최소한 500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술관원장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행사를 관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니아가 예루살렘에 대한 비참한 소식을 들려주자 느헤미야는 슬픔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마침내 때가되자 왕에게 구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수 년전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음모로 보내진 편지를 읽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을 느헤미야가 왕에게 이야기한 것은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얼마나 아꼈는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을 돌아보고 곧바로 사람들을 모아 성벽 재건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많은 적들이 반대하고 모함합니다.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이 더욱 거세게 반대합니다. 산발랏은 자신의 딸을 예루살렘 대제사장 엘리아십 가문으로 시집을 보냈기 때문에 입김이 작지 않았습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와 합세하여 니헤미야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시작한 지 52일 만에 완공하여 적대자들을 꼼짝 못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뿐 아니라 에스라와 함께 율법을 가르치고, 이방인들과의 결혼을 무효화시켜 돌려보내는 일을 합니다.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훌륭하게 해냅니다. 물론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이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구약 성경은 침묵합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서는 느헤미야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도덕성과 부경건함, 십일조에 대한 경시들을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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