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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1장

샤마임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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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1장 공의의 하나님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개인적인 친밀함을 드러낸 서신입니다. 왜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급하게 빠져 나왔는지, 왜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지를 밝혔습니다. 비록 자신은 겨우 3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했음에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탁월한 믿음과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로인해 바울은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습니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무엇인지 권면하며 서신을 마무리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와 그렇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종말론적이고, 좀 더 영적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절을 합해도 47절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서신입니다. 바울은 작은 서신 안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1장은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1-2절 인사

2. 3-10절 공의 하나님

3. 11-12절 간구

1. 1-2절 인사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가 동일하게 문안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ἐν Θεῷ Πατρὶ ἡμῶν καὶ Κυρίῳ Ἰησοῦ Χριστῷ) ‘안에 있다’는 말은 ‘속해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Θεῷ Πατρὶ ἡμῶν)라는 사실을 애써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Πάτερ ἡμῶν ὁ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성도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안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하늘에 계십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가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아가지만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3-10절 공의 하나님

바울은 3-10절에서 이 땅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혜를 한 가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데살로니가2:14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들의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섬기는 제우스를 섬기지 않고, 유대인들도 싫어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경배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많은 문헌 속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핍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터툴리안이란 교부는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다 할 만큼 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ㄱ. 믿은 만큼 사랑하고

먼저 3-4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합니다. 첫 번째 칭찬은 그들의 믿음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3절 상)라고 말합니다. 3주라는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시간이 갈수록 믿음의 진보를 보였습니다. 두 번째, ‘너희가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3절 하) 때문입니다. 여기를 보면 믿음과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은 만큼 서로 사랑했습니다.

ㄴ. 환난 중에 인내하고

두 번째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환난 중에 인내는 소망을 전제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이 땅에서의 환난과 박해를 견디게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환난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지금 데살로니가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고난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난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내를 요구하고, 인내를 소망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폭풍을 통해 나무가 땅 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고난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소망 중에 복음이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ㄷ. 공의 하나님

바울은 이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합니다. 비록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은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되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7절에 의하면 환난 받은 이들에게 ‘안식으로 갚으십니다.’(7절) 7절후반부부터 9절에서 바울은 역사적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은 불합리와 부당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고통이 따르고, 악하고 간사한 자들은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고통이 따를 때 누구나 아파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시각을 돌려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라 권면합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자기 능력의 천사들과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실 것이다’(7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재림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먼저는 하늘로부터 타나하십니다. 7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하늘로부터’입니다. 즉 지금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귀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회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처럼 낮고 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위엄과 능력으로 나타나십니다. 두 번째는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가운데 임합니다. ‘불꽃’은 주님의 거룩성을 상징합니다. 모든 죄를 소멸하시고 모든 악을 태우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 그 어떤 존재도 주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재림을 통해 그동안 유보된 모든 심판이 일시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조리하고 모순이 가득 차 있는 듯하지만 잠시 그럴 뿐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주님께서 임하실 것이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3. 11-12절 간구

바울은 이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ㄱ.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도록

바울은 끊임없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생명을 얻었다면, 거룩한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ㄴ. 선과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그렇다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뭘까요? 그것은 11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선을 기뻐함은 우리 안에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안에서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성도는 성도가 아닌 성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그들이 결심이 선행을, 그들의 믿음이 행위를 낳을 때, 그들은 그분과 연합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들의 진정한 인간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성도다움은 다른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삶의 방식이고, 삶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고 또 닮는 것입니다.

ㄷ.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마지막은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은 종말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서’라고 말합니다.(12절) 즉 성도들 안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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