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3장 게으른 자들에게서 떠나라
[장별설교] 데살로니가후서 3장 게으른 자들에게서 떠나라
2장에서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준 다음 3장에서 마지막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3장은 기도부탁(1-5절)과 게으름에 대한 경계(6-15절), 마지막 축복(16-18절)으로 마무리합니다.
1. 1-5절 기도부탁
2. 6-15절 게으름에 대한 경계
3. 16-18절 마지막 축복
1. 1-5절 기도부탁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기도를 부탁합니다.(προσεύχεσθε) 살전 5:25에서 이미 기도를 부탁했지만 다시 기도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기도 부탁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대소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능력이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에 해박하고 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사도바울도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부탁하는 것은 부끄럽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며, 또한 겸손한 태도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고,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을 안다면 다른 지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기도 부탁은 단순히 기도를 부탁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의 사정을 나눔으로 교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된 지체들로서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 제목을 나눔으로 서로의 사정을 알고 도울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이 부탁한 기도의 제목을 살펴봅시다.
ㄱ. 주의 말씀이 퍼져나가 영광스럽게되고(1절)
첫 번째 기도제목은 주의 말씀이 퍼져 나감으로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라는 구절을 주목해 봅시다.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의 전도함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바울은 말씀 자체에 운동력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문장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the word of the Lord)이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서들 가운데 데살로니가전후서에만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과 같은 내용이다. 이 주의 말씀이 빠르게 달려서 즉 빠르게 전파되고 또한 사람들이 받아들여 영광을 받게 되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복음의 전도자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열심히 뛰지만, 말씀 자체가 운동력을 가지고 달리기를 기도하는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수고와 애씀도 중요한 일이나, 말씀 그 자체의 능력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이문장 『HOW주석 데살로니가전후서』 204)
히브리서 4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 활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개역개정]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공동번역]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퍼져(τρέχω)’라는 단어는 ‘달리다’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마 27:48, 막 5:6, 요 20:2 등에서 사용됨) 마치 마라톤 선수가 향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주의 말씀인 복음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 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ㄴ. 우리를 악한 자들에게 건지소서(2절)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복음 전도자들을 ‘부당하고 악한 자들에게서’(ῥυσθῶμεν ἀπὸ τῶν ἀτόπων καὶ πονηρῶν ἀνθρώπων)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주의 기도에 내용과 흡사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어둠의 영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살후 3:2에서는 정관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부당하다’(ἀτόπων)는 단어의 뜻이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또는 ‘비비꼬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을 볼 때, 3절 서두에 ‘주는 미쁘사’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의 부당함이 결코 신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바울은 인간의 불확실성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뒤엎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지 못하면서 사사건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방해했습니다. 바울은 말도 안 되는 유대인들의 모함에 빠져 복음이 왜곡되고 제한 될 것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는 말은 주님께서 행하신 대속 사역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제한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ㄷ. 기도에 대한 확신(3-5)
바울은 기도를 부탁하면 그 기도들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곳에서 바울은 두 가지를 확신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굳게 하’실 것을 믿으며, 두 번째는 ‘악한 자에게서 지키리시리라’고 확신합니다.
2. 6-15절 게으름에 대한 경계
마지막으로 게으름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명령은 무겁고 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표현을 통해 게으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야함을 말합니다. ‘게으르고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에서 바울은 이미 게으름을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여기서 ‘권계하다(νουθετέω)’는 ‘훈계’(행 20:31), ‘권면’(롬 15:14, 고전 4:14 등)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권고나 권면이 아닌 훈련과 경고의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게으름의 문제는 복음을 받지 않는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일하지 않고 호의호식(好衣好食)한 것으로 보입니다.
7절에 보니 ‘무질서하게’ 행동했고, 8절에서는 ‘음식을 값없이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0절에서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7절의 무질서하다는 표현은 고대 세계에서 ‘군사적 무질서나 탈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F.F. Bruce 『WBC 성경주석: 에베소서』, 333] 이들은 복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릇된 믿음에 빠져 자신을 책임지지도 않고, 게으름에 빠져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답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으름 자들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11절 후반부로 가면 일하지 않을뿐 아니라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F.F 부르스는 이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기어이 알아내려고 하는 종교적 광신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은 현대 교회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신경을 쓰면 다른 일에는 당연히 소홀해 지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몸을 부려 일하지 않는 이들은 그 에너지를 쏟을 뭔가를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좋은 일에 사용하면 천만 다행이지만 불행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엉뚱하고 해로운 곳에 에너지를 쏟고 관심을 기울입니다. 목회자들은 이러한 사람의 심성을 잘 이해하고, 선하고 바른 곳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게으르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이들에 대해 권고 합니다. 먼저 그들에게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권해야 합니다. 일단 일을 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건강이 있음에도 일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μὴ ἐνκακήσητε)고 권합니다. 아마도 게으른 사람들을 보며 낙심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14절에서 이러한 의도를 보강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말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일단 지목하여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사귀지 말라는 말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 주거나 동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들을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부끄럽게 해야 할까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노력하고, 더 수고하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3. 16-18절 마지막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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