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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예배-반전이 있는 인생

샤마임 201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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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는 인생

룻기 4:13-22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 시절만 없다면 나의 인생은 정말 완벽해! 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 뿐입니다. 재방송하지 않는 연극과 같습니다. 실수하지 않고 좋은 일만 가득한 인생을 만들고 싶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실패도 좌절과 낙망의 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는 없을 수 없고, 흠이 있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와 허물이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정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혹 이 부분만큼은 지우고 싶은 시절은 없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 그런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기쁨이란 뜻을 가진 '나오미'란 유대지파의 여인입니다.


실패한 인생 나오미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입니다.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입니다. 이름을 보니 엘리멜렉은 이름은 범상한(평범한)이름이 아닙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那时,以色列中没有王,各人任意而行


그런데 엘리멜렉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시다'. 얼마나 멋진 고백인지 모릅니다. 엘리멜렉은 가나안땅에 흉년이 찾아오자 근처에 있는 모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모압으로 가면 흉년을 벗어나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십년이 지난 다음, 자신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남는 것은 아내 나오미와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향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두 며느리를 불러 놓고, 너희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살림을 차리도록 말했습니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두 며느리는 돌아가지 않고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두 번째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며느리인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하고 고향인 모압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가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는 세 번째 룻에게 말했습니다. 1:15절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拿俄米说,看哪,你嫂子已经回她本国,和她所拜的神那里去了,你也跟着你嫂子回去吧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나를 가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두 여인이 유대 베들레험으로 귀향을 시작합니다. 두 여인을 상상해 보면 처량하기 그지 없어 보입니다. 터벅 터벅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처량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늘 실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실패를 통해 또 다른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이것이 살아가는 재미입니다.


보아스는 만나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한 사람을 예비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2:1에서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고 소개하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깁보르 하일'이며 '강한 용사' '권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누구인가?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이며, 나오미의 가문을 일으킬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그가 일하는 일터에 와서 하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인사했습니다. 12절에서 롯을 향해 하나님께서 네게 온전한 상을 주시기 원하다고 축복합니다. 보아스는 우리들에게 귀한 모범이 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우리도 보아스처럼 축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보아스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하인들이 일하는 곳에는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일꾼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먼 곳까지 왔습니다. 심지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인들이 자는 천막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이것을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보아스를 그렇게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룻과의 멋진 '스캔달'이 만들어졌습니다.


보아스는 책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자신의 가문을 의탁할 때 보아스는 손해가 나면서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친척은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되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룻이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했을 때 하나님은 보아스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나오미의 작전 / 하나님의 은혜


나오미는 보아스가 믿음의 사람이고 친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룻을 그에게 보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친족이 자녀가 없는 가족을 되살려 주는 고엘제도(制度)가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재산의 일부를 물려주어 그 가문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렇게 해줄 것을 확신(確信)했습니다. 그래서 룻에게 보아스가 자는 천막으로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알아보고 곡식을 채워 다시 돌려 보냈습니다. 이 일로 보아스는 나오미의 뜻을 알게 되었고, 그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오미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실수한 다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하여 실수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입니다. 나오미는 고엘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과제를 주었습니다. 마당에 큰 화분이 하나 있는데 이 화분을 들어서 거실에 좀 옮겨놓으라는 과제였습니다. 아들이 가서 아무리 끙끙대도 이 큰 화분을 들 수가 없습니다. “아빠, 내 힘으로는 못하겠어요. 안돼요.” 아빠가 또 묻습니다. “이 놈아, 최선을 다해봐라.” 그 말에 아들이 가서 다시 시도를 해 봅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도 도저히 못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왜 최선을 다하지 않니?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다. 아빠, 제 힘으로는 안돼요. 저 좀 도와주세요. 같이 좀 거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렴. 그게 바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맞습니다. 우리의 최선은 우리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나오미의 반전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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