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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3장 야곱과 에서의 만남

샤마임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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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3장 야곱과 에서의 만남


살아가다보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접 부닥쳐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대할 때 항상 일 자체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에서는 누구인가?


야곱이 드디어 에서는 만납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동안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에서가 야곱을 환대(歡待)대합니다. 에서가 왜 그렇게 했을까 우리는 몇 가지를 추즉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에서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야곱이 보내온 많은 선물을 보고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에서가 처음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 때는 그는 속물적 근성을 따라 지금 배고픔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고, 장자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에서입니다. 두 번째는 에서가 20년이 지나 마음이 누그러져서 야곱을 편하게 대할 수도 있습니다. 배신을 당했을 때는 당장 죽일 것 같이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원리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간 것입니다. 그것이 에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전부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에서는 어느 순간 돌변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서의 환한 모습은 바로 앞장인 32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신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과의 문제가 해결되자 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33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출애굽의 관점에서 33장을 읽는다면 에서는 가나안 족속이나 광야 등과 같은 예측할 수 없거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그러한 문제들에 과도하게 집중합니다. 이러한 야곱과 같은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찾아오셨고 새 이름을 주심으로 야곱을 복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선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야곱은 에서와 헤어진 후 숙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고 숙곳이라 불렀습니다. 숙곳은 ‘막들’이란 뜻입니다. 너무 황량한 들이라서 좋지 않았나 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야곱은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옮기고 그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물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장막을 친 밭을 사거 거주하게 됩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짓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새로 받은 이름이며,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입니다. 도대체 왜 제단을 쌓고 제단을 ‘하나님을 이긴 이스라엘’이란 묘한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야곱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바울은 선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경고했습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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