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
창세기 5장 강해
창세기 5장은 아담의 후손들의 족보입니다. 창세기 5장은 4장에서 가인의 살인과 저주, 그리고 그들의 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나가는 이야기와 6장에서 인류의 타락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4장에서 곧바로 6장으로 넘어가면 연대기적 흐름이 잘 맞습니다. 즉 5장의 족보는 인류가 극도로 타락하는 역사 속에서 셋의 후손을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곳에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은 단지 장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누가 장남이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곳에 기록된 이름들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간 사람들입니다. 기록된 이름 외에도 ‘자녀들을 낳았’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일한 믿음의 부모에게 태어나도 누군가는 믿음을 잇고, 누군가는 불신의 자리에 있습니다.
아담부터 셋까지(1-5절)
족보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양대로(히, 데무트)’(1)절 창조하셨습니다. 이 부은 창세기 1장에서 언급 사람 창조 부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참 1:26,27) 사람은 ‘남자와 여자’(2절)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합시다.
아담은 130세에 자의 모양(데무트)과 형상(첼렘)의 아들을 낳습니다.(창 1:28과 동일한 히브리어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들의 이름은 셋입니다. 여기서 가인과 아벨을 제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후손이 없어 죽었고, 가인은 믿음의 족보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삭제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창세기 5장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아담은 셋을 낳고 무려 800년을 더 살았고, 그동안 수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 세 만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은 낳았을 겁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가인의 아내를 아담의 딸로 보는 것이죠.
아담은 930세에 죽습니다. 결국 아담은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와의 이름을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그녀의 죽음은 왜 적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대부분의 구약의 족보는 남성이 가문의 대를 잇은 것이며, 세대가 남성을 통해 계승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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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담의 계보
계보는 족보 또는 세계를 뜻하는 히브리어 톨레돗입니다.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에 족보는 역사의 전체 흐름을 소개한다는 점을 같습니다.
2절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구약의 복은 단순히 성공과 부귀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마음에 두셨다는 뜻이다.
5절 죽었더라
5절은 아담의 죽음이지만 이후 아담을 따라 모든 후손들이 죽습니다. 유일하게 에녹만이 죽지 않습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녹을 통해 죽음을 뛰어 넘는 비밀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셋에서 라멕까지(6-27절)
셋부터 라멕까지는 동일한 구술방식을 따릅니다. ‘낳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세에 죽었더라.’
하지만 유일하게 이 공식이 패턴은 같지만 중간에 증보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에녹입니다. 24에서 창세기 기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죽었다’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빼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갔다’라는 표현도 죽음을 뜻한다고 보며 에녹의 죽음을 다르게 표현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통에 의하면 에녹은 죽지 않았으며, 산 채로 하늘로 올라간 엘리아와 같이 승천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과연 에녹은 승천했을까요? 죄를 지었으면 죽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실, 에녹의 승천은 신학적으로 굉장한 난제입니다.
동행(히, 할라크)은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모세 이후에 계명이 생겼다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계명이 없으면,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있다는 말은 계명에 불순종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의 승천은 죽음을 이기는 비밀이 계명에 대한 절대적 순종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인물은 노아지만, 노아 직전 라멕에서 단락을 끊는 것이 옳습니다. 라멕은 가인의 후손으로 악의 축입니다. 라멕의 검은 노래는 악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동일한 이름을 가졌지만 누구는 악의 축으로, 누군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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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자녀들을 낳았으며
우리가 5장을 읽을 때 극단적으로 셈의 후손들은 믿음의 사람들이고 함이나 야벳은 아니다는 식의 해석은 정말 위험하고 반성경적입니다. 아담고 그렇고, 7절에서 셋이 에노스를 낳고 팔백년을 지내며 더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몇명을 낳은 걸까요? 1년에 한 명을 낳아도 800명입니다. 그럼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에노스 후손만 계산해도 800년이 흐르면 수천만명을 될 것입니다.
왜 이 부분이 중요할까요? 6장부터 시작되는 노아의 홍수는 노아의 가족 8명 외에 아무도 살지 않고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즉 셈의 후손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고, 그들 또한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5장의 족보는 단지 빛의 족보와 어둠의 족보의 대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해석으로 신비로운 뭔가를 추구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4절 에녹이 하나님가 동행하더니
동행이란 히브리어 할라크는 그냥 함께 걷다는 뜻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 기자는 동행을 단순히 걷는 것 이상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행은 함께 걷는 것이라며, 목적지와 그리고 함께 걸을 때 서로의 의기투합 등 다양한 변수와 요건이 필요합니다. 결국 동행이란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일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 족보 안에 큰 의미는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방탕한 삶을 사는가를 말해 줍니다. 계명이 없는 시대?라는 오해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동행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까요?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계시하시고, 말씀하시며, 지도하십니다.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따르지 않습니다.
에녹은 사람이 임의대로 살아갈 때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살았던 사람입니다.
라멕에서 노아까지(28-32절)
마지막 단락은 라멕이 노아를 낳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출생과 연도를 계산해 보면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는 홍수 때 죽습니다. 학자마다 약간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홍수로 죽은 것인지, 홍수 직전에 죽은 것인지를 알 수 없지만 홍수 때 살아 있던 사람은 노아가 유일합니다. 라멕도 홍수 5년 전에 죽습니다.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고 붙입니다. 노아의 뜻은 ‘위로하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말이죠. 땅에 대한 저주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에게 준 저주입니다. 수고롭다는 표현은 수고한 대로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땅이라는 단어도 주목해야 합니다.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이 어떻게 저주를 받을까요? 땅은 원래 많은 열매를 맺는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땅은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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