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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분석심리학 이론을 세우다.

샤마임 201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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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분석 심리학을 만들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융은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젤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했다. 1907년 융 부부는 프로이트의 초청을 받고 만남을 갖게 된다. 당시 융은 프로이트와 1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대화를 하느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고 한다. 프로이트 융을 맘에 들어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불렀다. 그러나 융은 100%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다 1909년 융과 프로이트는 미국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면서  북독일 이탄지의 미라에 대한 대화 때문에 서로 갈라지게 된다. 이것에 관심이 많았던 융이 여행 중에 미라 이야기를 꺼내자 프로이트는 불쾌하게 여기면서 ‘그런 시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나의 죽음 부르는 증거’라고 일축했다. 프로이트는 내적 자아가 언어를 통해 암시된다는 의도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싫어했다. 그러나 융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그들은 만난 지 6년 만에 결별하고 말았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융과 결별을 선언한 후 <정신분석학>의 새 지평을, 그리고 칼 융은 <분석심리학>의 새 지평을 개척하였다.

융의 심리학은 ‘자기’self와 ‘자아’Ego라는 개념이 가장 크다. 자기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고, 자아는 의식과 분별의 세계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의식이 가능할까? 융은 자기와 자아가 만나는 곳을 ‘꿈’이라고 말한다. 자기는 꿈을 통해 계속하여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떤 등산가가 융을 찾아왔다. 등산가는 꿈 속에서 자신이 발을 헛 딛어 절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융은 ‘자기’가 자신의 미래의 일어날 일을 꿈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조심하도록 일렀다. 그러나 그 등산가는 융의 해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결국 절벽에서 떨어지고 만다. 프로이트는 꿈이 자신의 자아가 꿈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이 꿈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융은 꿈이 자신이 아닌 미래에 대한 예시로 해석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프로이트와 융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자아실현 

그럼 ‘자아실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융은 자아가 내면의 ‘자기’를 깊이 들여다 봄으로 ‘자기’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삶은 자아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융은 해석한다. 그 과정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콤플렉스complex

융의 업적 중의 하나는 콤플렉스의 개념이다. 인간은 어떤 일에 대해 매우 고집스런 반응을 보이곤 한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강한 감정이 바로 콤플렉스이다. 융은 콤플렉스가 자신의 무의식 즉 ‘자기’에게 존재하며 당사자의 태도, 행동, 증오와 질투, 혐오, 공포, 열등감, 죄책감 등이 감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 원인 중의 하나가 트라우마trauma다. 트라우마를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이라고 부르면, 심리학 용어로는 ‘정신적 외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자라보고 놀라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바로 트라우마이다. 과거에 크게 상처를 받은 일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감정이 크게 동요되면 예전의 두려움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콤플렉스 현상이다.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융이 생각한 마음 구조

융이 생각한 마음의 구조는 가장 저변에 깔린 것이 ‘자아’라는 의식이 세계이고, 그 위로는 개인적 무의식의 세계, 그 위로는 보편적 무의식, 가장 아래는 페르소나이다.

의식의 일부

개인적 무의식

의식에 억압된 개인적인 것

콤플렉스 등

보편적 무의식

인류 공통의 원시적 심성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노현자, 그레이스 마더

페르소나

사회적 역할

페르소나persona

페르소나persona는 인간이 외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학교의 교사라고 한다면 사회나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교사의 상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상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위장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사랑하는 모습,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 페르소나 아래에 자리잡고 잇는 것이 개인의 개인적인 그림자와 추악한 부분들이다. 겉으로 볼 때 선량하고 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악하고 공격적인 성경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융의 심리학은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학문적으로 들추어 주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반기독교적 이미지 보이는 <동시성>에 대한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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