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와 코스모스 / 채영삼 / 이레서원
코이노니아와 코스모스
채영삼 / 이레서원
세상을 이기는 교회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코로나가 발생한지 벌써 일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말이다.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목사와 신자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나름대로 방안도 세우고 계획도 세우지만 내심 코로나가 끝나기를 만을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일상에 대한 갈급함에 답답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문득 만약 코로나가 수년을 더 간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아니,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과 의혹이 동시에 일어난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기에 코로나 때문에 이리도 안절부절 못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기에. 질문을 다시 바꾸어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채영삼 교수의 책을 받아둔 순간 감전이 되는 듯했다. 지금까지 접해온 채영삼 교수의 저작들은 단 한 번도 실망 시킨 적이 없다. 특히 공동서신에 대한 저자의 집요함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지붕 없는 교회>부터 저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하도 특이해 에세이인줄 알았다. 야고보서의 특징을 '지붕 없음'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가장 독보적인 저서는 <공동서신의 신학>으로 공동서신의 전반적인 특징을 통합하는 동시에 각론으로 펼쳐냈다. 아직도 가끔씩 공동서신을 설교할 때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이 책을 집어 든다. 그리고 이 책 <코이노니아와 코스모스>를 통해 공동서신의 절정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년 전에 요한일서를 전반적으로 주해하고 강해서로 묶어낸 경험이 있다. 채영삼 교수는 어떻게 요한서신서를 풀어낼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제목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듯 저자는 요한일서를 ‘코이노니아’와 ‘코스모스’라는 두 기둥을 세우고 풀어 나간다. 베드로전서가 ‘세상 속의 교회’라면 베드로후서는 ‘교회 속의 세상’으로 정의한다. 요한일서는 ‘세상을 이기는 교회’이며, 요한이서는 ‘진리의 공동체’ 요한삼서는 ‘사랑의 공동체’로 풀이 한다. 저자는 유다서와 더불어 요한서신서를 공동서신의 결론으로 본다. 즉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 또는 방법은 다름 아닌 ‘코이노니아’이다.
“무엇보다, 요한서신이 제시하는 교회의 본질은 ‘코이노니아’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두 가지의 큰 신학적 축의 만남의 결과이다. 그 하나는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새 언약의 내용이 종말론적으로 성취된 결과로서 ‘코이노니아’이고, 다른 하나는 ‘묵시론적 이원론’을 배경으로 세상과 충돌하며 세상을 이기는 교회로서 ‘코이노니아’의 모습이다.”(14-15쪽)
에클레시아가 세상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공동체라면, 코이노니아는 ‘---에로’ 이르게 된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과 그 영광의 본질적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15쪽)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진리와 사랑의 코이노니아’(17쪽)인 것이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제한 코이노니아이다. 저자는 이러한 코이노니아를 강조하기 위해 요한이 삶과 영이 분리 되지 않는 총체적 신앙관을 제시한다고 믿는다. 요한일서에 등장하는 대적자들을 삶과 영을 분리하는 헬라적 이원론에 젖어든 자들로 본다. 코이노니아를 강조하는 요한일서의 주제는 불가피하게 기독론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명의 말씀의 ‘나타남’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죄와 죽음과 하나님 없는 허무에 갇혀 있는 타락한 세상과는 별개로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 ‘생명’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그 아들을 통해, ‘그 악한 자 아래 잠시 놓여 있는 세상’ 안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67쪽)
침투! 그렇다. 그리스도는 코스모스의 세상에 ‘침투’하셨다. 요한은 코스모스를 ‘악한 자의 코스모스’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악한 자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세상을 회복하시고 치유한다. 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통해 ‘죄가 있는 곳에서, 죽음에 있는 곳에서, 거짓과 증오가 있는 곳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씨름하고 이겨 낸다.’(303쪽)
세상을 이기는 길은 결국 ‘형제 사랑의 코이노니아’(491쪽)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답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교회란 무엇인가? 저자는 우리가 다시 재건해야할 교회는 ‘영적이고 내면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의 코이노니아가 드디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생명과 사랑의 증거들’(560쪽)이 나타는 교회이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다. 실천 없는 신앙이며, 코이노니아로 세상을 이기를 교회를 상실한 것이 문제다.
560쪽이나 되는 적지 않는 분량이 조금 긴 영화 한 편 보듯 흘러간다. 언제나 느끼지만 저자의 따듯한 마음과 본문에 대한 집요한 애정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요한일서를 설교하려는 목회자들은 필독해야할 책이다.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요한일서를 설교하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방향을 잃는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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