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200, 감옥에서 화투치기
파스칼은 내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남겨진 한 시간의 문제를 다른다. 나에게 한 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팡세 200
한 남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자기에게 선고가 내려졌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여유는 한 시간밖에 없다. 만약 선고가 내려진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한 시간 안에 충분히 선고를 취소 받을 수 있는 경우, 그 시간을 선고가 내려졌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지 않고 피케놀이(카드놀이의 일종)에 허비한다면 그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 자연에 어긋난 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신의 손(신의 벌)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을 구하는 사람들의 열정만이 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맹목도 또한 신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팡세 203
하찮은 것에 대한 매력
정욕에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흡사 1주일의 생명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자.
팡세 204 팡세 217 팡세 218
일주일의 생애를 헛되이 보낸다면 백 년간도 헛되이 보낼 것이다. 일주일을 포기해야 한다면 전생애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하루만 머물렀던 나그네의 추억"이다.(팡세 205) 한 시간은 한 시간의 기회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알고 있더라도 사용하지 않는다. 한 시간은 짧디 짧은 우리의 삶의 남겨진 시간이다. 쾌락을 추구하면 한 시간은 약간의 기쁨을 주는 화투놀이에 빠져 지낸다. 사람들은 자신과 쾌락을 함께 나눌 사람을 친구로 삼는다. 화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나 그들은 "우리처럼 비참하고 무능하여 결코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사람은 혼자 죽어가야 한다."(팡세 211)
어떤 상속인이 자기 집 재산증명서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는 "이것은 가짜 서류일 것이다."하고 확인하지도 않고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다. 반드시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다루는 신앙을 확인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다루는 그대는 누구인가?
감옥. 나는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이 불멸인가 아닌가에 대해 아는 것은 인간의 전생애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다.
영혼 불멸을 연구하지 않았던 철학자들은 "몽테뉴네 나타난 오류"이다. 그러니 파스칼의 내기는 일단 영생이 존재하는가 믿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무기를 사두라는 것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기를 되팔면 된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그 때는 늦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대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지금 화투치기에 빠져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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